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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출판시장 물흐리는 ‘공룡’

등록 2005-12-08 16:27수정 2005-12-09 14:04

출판계도 예외가 아니다. 서점과 출판사 가운데 큰 것은 창성하고 작은 것은 고사 직전이다. 큰 것은 큰 것을 믿고 위세를 부리고, 큰 것끼리 알게 모르게 돕고 돕는다. 하여, 책은 잘 팔리는 것 위주로 만들어져 유통됨으로써 책에서 소외되는 출판사와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교보문고 본점의 ‘독서가 미래다’ 이벤트.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출판계도 예외가 아니다. 서점과 출판사 가운데 큰 것은 창성하고 작은 것은 고사 직전이다. 큰 것은 큰 것을 믿고 위세를 부리고, 큰 것끼리 알게 모르게 돕고 돕는다. 하여, 책은 잘 팔리는 것 위주로 만들어져 유통됨으로써 책에서 소외되는 출판사와 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교보문고 본점의 ‘독서가 미래다’ 이벤트.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대형서점 3765일 ‘경품 이벤트’ 대형출판사 자본력으로 매대 독점 잘팔리는 책 더 잘팔리게 ‘상부상조’ 납품가 후려치기 강압엔 큰 출판사 덤핑 출고 합세 이래저래 중소출판사만 죽어난다

커버스토리

지난 3일 교보문고 본점. ‘독서가 미래다’라는 이벤트를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12월 한달 동안 출판사 20여곳이 참여해 자사의 ‘양서’를 사는 사람한테 2천만원어치 경품을 준다는 내용이다. 중앙 통로 매대에는 해당 출판사 팻말과 책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끌었다. 물론 양서도 있고 며칠 안된 신간과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책도 끼어있 다. 베스트 순위에 든 8종이 포함돼 있는 게 특징. 이벤트는 이것뿐이 아니다. 게임기, 엠피3, 여행권 등을 각각 경품으로 내건 서너 출판사의 신간이 통로에 가깝게 단독으로 예쁘게 진열돼 있다.

길 건너 영풍문고도 마찬가지. 중앙 통로에 10곳 출판사 책을 진열해 놓고 이달 말까지 구입자 10명을 추첨해 스노보드 세트를 준다. 홈 씨어터, 성지순례, 가정용 홈 사우나를 각각 경품으로 내건 출판사의 매대가 경품의 크기에 비례하여 통로 가운데 또는 가까이 마련돼 있다. 정체불명의 책이 ‘이달의 추천도서’ 팻말을 이고 있고, 덤으로 책 한권 더 준다는 출판사의 책은 정문을 들어와 바로 눈이 멈추는 곳에 똬리 틀었다.

서점쪽에서는 이벤트와 관련해 독자 서비스 차원에서 365일 하고 있으며 신규 수요 창출과도 관련 있다고 말한다. 한 중견 출판사 관계자의 말은 다르다. “현재 OO곳이 참여하는데 조금 빈다, 참여해 달라”고 요구해 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신간도 깔아야 하고 베스트 순위를 유지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 경품은 오로지 출판사 부담이다. 초기에는 30만~40만원이었는데 요즘은 80만~100만원 수준. 교보, 영풍, 서울문고 등 세 군데 강북, 강남 쪽을 합치면 이벤트는 줄줄이 사탕. 내키지 않는 출판사한테는 적잖은 부담이다. 서점에서 매출을 올리는데 엄한 출판사에서 부담을 진다는 얘기다. 서점 쪽은 “참여를 제안하지만 강요한 적은 없다”면서 “참여사에 이익을 줄지언정 불참사에 불이익을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점 판촉에 출판사 비용 부담


이런 논란은 연합광고에도 고스란히 재연된다. 연합광고란 대형 소매점의 이름으로 출판사 10~20곳의 책을 함께 소개하는 광고. 5월 어린이달, 여름 겨울방학, 연말연시 등에 실시해 왔으나 요즘은 무가지에 수시로 실린다. “비용을 분담하므로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어 노출기회가 적은 출판사한테 좋은 기회”라고 서점 쪽은 밝혔다. 그러나 출판사 쪽은 “44만~88만원의 부담이 잦아지면 무시 못할 금액”이라면서 “솔직히 서점 개업 몇 주년, OO점 오픈 기념 등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매대와 연합광고를 둘러싼 시비를 두고 “매출은 대형 소매점이 올리고 그 부담은 출판사들이 지는 꼴”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출판사와 대형 소매점 사이에서 시비가 이는 데는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서점 하면 떠올리는 교보는 현재 본점을 포함해 10곳의 대형 매장을 거느리며 책의 유통을 좌우하는데 2010년까지 지점을 50곳으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영풍 또한 10곳 이상 지점을 늘릴 계획이다. 반면 중소형 서점들은 차츰 문을 닫아 1998년 전국 4897개던 서점이 지난해는 2205개로 6년만에 55%나 줄었다(한국서점조합연합회 자료). 또 출판계 역시 비슷하다. 자본의 크기를 바탕으로 점점 덩치를 키운 상위 몇개의 출판사가 전체시장을 과점하고 있다. 실제로 베스트 순위 50위권 책들을 살펴 보면 상위 대형 출판사들이 차지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말하자면 대형 출판사와 대형 소매점이 ‘상부상조’하게 되고 나아가 ‘짜고칠’ 여건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 틈에서 죽어나는 것은 중소형 출판사다.

대형 소매점의 ‘365 이벤트’나 ‘매대 판매’도 경품을 댈 여력이 없는 중소형 출판사한테는 그림의 떡. 서점 관계자는 “이벤트나 특별매대가 출판사의 요구로 만들어지는 게 많다”며 “우리는 자리를 제공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어린이책의 경우 웅진미디어, 비룡소, 시공주니어, 주니어랜덤, 주니어김영사 등 대형 출판사의 책들이 각종 이벤트를 벌이고 있으며 특별전시 코너를 폼나게 과점하고 있다. 글송이, 을파소, 삼성당i, 효리원, 다림, 꿈소담이, 깊은책속옹달샘, 문공사 등은 그런 틈에 끼어 구매자에게 2000원 도서교환권을 주는 행사를 하고 있다. “그 책이 그 책인 요즘 마케팅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 “다들 그렇게 하는데 그게 무슨 문제냐.” 서점 쪽의 말은 되레 당당하다.

이렇듯 ‘팔기 우선’ 방침에 따라 출판사와 서점은 독자들에게 양질의 서적을 권하기보다는 잘 팔리거나 마진이 높은 책들을 우선 출시하고 우대 전시하는 현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매주 베스트셀러 순위를 발표하고, 각종 이벤트에 베스트셀러 출판사를 참여시켜 잘 팔리는 것은 더욱 잘 팔리게 부추김으로써 대형끼리 돕고돕는 결과를 낳는다. 양질의 기획전시는 할 생각을 않거나 하더라도 찬밥신세다. 3일 현재 진행중인 영풍문고의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글 어떻게 쓸 것인가’ 기획전시는 양질임에도 이벤트 매대에 가려 한적하게 밀려나 있었다. 이에 따라 많이 팔리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책들이 독자들에게 노출될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일반 단행본의 경우 초판 3000부 발행은 옛말. 요즘은 1000~2000부에 그치고 심지어는 500부를 찍고 마는 사례까지 전해진다.

“팔자” 위주…양서는 뒷전

한편, 일부 대형 출판사들의 ‘옆집보다 싸게 팔기’와 대형 소매점과 인터넷서점들의 낮은 납품가 강요가 유통시장을 흐리고 있다.

단행본을 기준으로 할 때 통상 출판사에서는 도매 65%, 소매 70%, 매절은 60% 값에 공급한다. 도·소매는 위탁판매, 즉 외상으로 책을 대주고 판 만큼 나중에 돈을 정산한다. 으레 2~4개월짜리 어음이다. 전체 물량에서 10~20%을 차지하는 매절은 일정부수(소매 50부, 도매 100부)가 넘을 때 반품 없는 조건으로 맞돈을 받는다. 그러나 자본력이 좋은 출판사와 소매점에서 경쟁을 부추기면서 이러한 룰이 깨지고 있다.

대형 소매점의 경우 매절값, 그러니까 통상적인 공급률보다 10% 가량 낮은 값에 납품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물론 팔리지 않은 책은 반품하는 조건이다. 한 대형 서점은 신규 출판사에게는 일괄적으로 그런 조건을 제시하고 있으며 기존 출판사들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요구한다. 한 서점 관계자는 “기왕의 관행은 법이 아니다. 많은 물량을 사가면 도매가 아니냐”며 입고값은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벤트 때는 그보다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의 인터넷사이트에서는 상시 할인판매를 하며 매절값보다 더 낮은 값에 납품받고 있다. 온-오프가 한 물류센터에서 이뤄져 이들 서점은 사실상 인터넷서점 납품값으로 책을 받는 셈이다.

알라딘, 예스24, 인터파크 등 인터넷 서점들은 매절값에 납품받고 있다. 그리고 수시로 큰폭 할인행사를 벌여 납품값을 더 낮추는 실정이다. ‘굿바이 2005년 베스트셀러 총결산’ 행사를 여는 알라딘의 경우 100종의 책을 선정하여 할인과 마일리지를 포함해 25~45%를 내려 팔고 있다. 마일리지는 출판사에서 부담 또는 분담해 사실상 저가납품이 이뤄지는 셈이다. 경우에 따라 30% 안팎에 납품하기도 한다. 그래도 출판사한테는 바로 현금이 들어와 감지덕지다.

반값에 납품받고 반품은 당연

그 와중에 일부 대형 출판사의 덤핑출고가 뒷구멍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도매상인 ‘어린이책’의 부도 뒤처리 과정에서 일부 출판사에서 정가의 55~60%에 책을 공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덤핑을 일삼는 홈쇼핑에 책을 공급하는 출판사 가운데는 출판계 ‘원로’와 관련된 출판사조차 끼어 있다. 대형 출판사의 전횡은 도매상과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선수금 턱으로 미리 돈을 당겨감으로써 중소형 출판사한테 지불해야 할 결제금을 말린다는 것. 최근 한 대형 출판사는 도매상들에게 3천만원을 미리 내고 거래를 하든가 말든가 하라는 요구를 했다. 지난해 한 도매상 부도 뒤처리 과정에서 선수금을 챙긴 대형 출판사들은 재고도서를 회수해가면서 오히려 이득을 보았다는 눈총을 받았다. 그 손해는 물론 중소출판사가 덤터기썼다. 한 관계자는 이를 두고 ‘조폭’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유통관행의 피해자는 양심적인 중소 출판사와 독자. 양서를 내는 한 출판사 관계자는 “출판계 현실이 절망스럽다”면서 “원가절감으로 푸는 데는 한계가 있어 정가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독특하지만 시장성이 적은 책을 내는 한 출판사의 관계자는 “미수금이 50%에 이른다”고 하소연하고, “이런 식으로 출판사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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