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있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거듭나는 학교도서관엔 학생과 교사를 위한 ‘지식·정보의 보물’이 숨어 있다. 사서교사들은 이런 보물 찾기를 기획하고 이끄는 조직자이자 협력자다. 사진은 지난달 25일 점심시간에 송곡여고 학교도서관에서 떡볶기 시식권과 콘서트 티켓 같은 상품을 걸고 열린 ‘보물 찾기’ 행사에서 이 학교 학생들이 보물 담긴 책들을 찾고 있는 모습.
사서 없는 도서관 97% 역사상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내년 사서교사 154명 임용 빗속 궐기로 ‘세자릿수 충원’ 쟁취
도서관 문화가 살아나면 출판 살고 학문 살고…
커버스토리 종이 울렸다. 점심시간-. 교실 다섯 칸 크기의 학교도서관으로 우르르 몰려오는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 지난 25일 점심시간의 서울 망우1동 송곡여고 도서관은 금세 1학년 학생들로 왁자지껄했다. 이게 무슨 영문인가. 책장에 몰려 책을 뒤지는 학생들이, 10분 정도 더 지나니, 열람실 한쪽에서 북새통을 이뤄 100여명으로 늘어났다. 이곳저곳에서 책장에 꽂힌 책을 뽑고 펼치고 넣고 인터넷에서 주제어 검색을 하고, “여기 있을 거야” “찾았다” 소리로 정신이 없다. 학교도서관에 ‘보물’이 있다 영락없이 무슨 숨겨둔 보물이라도 찾는 모습이다. “맞아요. 보물 찾기입니다. 신간·기증 도서들의 한쪽 면을 복사해 게시해두고 아이들이 그 면이 실린 책을 찾아오면 보물을 줍니다. 오늘은 1학년만 참여하는 날이죠.” 송곡여고 도서관에서 13년째 일하는 이덕주(38) 사서교수는 “더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을 찾아 책과 친해지도록 기획한 행사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그럼 보물은? “떡볶기 시식권, 동네서점 책 교환권, 그리고 2만원짜리 콘서트 티켓입니다. 콘서트 티켓 때문에 오늘 유난히 많이 몰리네요.” 1학년의 보물 찾기로 도서관이 떠들썩해도, 열람실 한쪽에 마련된 우아한 ‘온돌방’엔 다른 학생들이 눕거나 엎드려 쉬며 책을 읽고 있다.
이날 보물 찾기는 학생동아리인 도서관사랑봉사단(‘서랑’) 회원들이 준비했다. 30여명의 서랑 봉사단은 책장 정리, 대출·반납, 서가 청소 등 궂은 일을 도맡기도 하지만 독서토론, 영상뉴스 제작 같이 책과 도서관을 주제로 한 여러 문화활동을 펼친다. ‘서랑’ 이미현(16·1학년)양은 “우리 봉사단은 사서선생님의 ‘독선’을 견제하고 감시하기도 하지만(웃음), 선생님과 함께 우리 도서관을 누구나 찾을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게 보람스럽다”고 말했다. 콘서트 티켓은 아니라도, 학교도서관에는 확실히 ‘보물’이 있다. 서울 용동초등학교 도서관의 배지혜(31) 사서교사도 학생·학부모와 함께 도서관에 숨은 보물을 찾는 사람이다. 대학도서관에서 5년 일했고 이곳 학교도서관 ‘책꿈터’에서 계약직 사서교사로 일한 지 1년이지만 “책을 읽으며 달라지는 아이들 모습을 볼 수 있는 이곳에서 해볼만한 일이 훨씬 더 많다”고 했다. “사서교사가 서가 정리나 대출·반납 업무만 하는 게 아닙니다. 도서관을 살아 있는 곳으로 만드는 건 사서교사 하기 나름이죠.“ 그가 평소 하는 일을 보자. 그는 어린이책 출판사나 지은이와 협력해 교내 강연회를 기획한다. 또 학부모를 초청해 독서지도를 한다. 자주 도서관을 찾는 학부모들을 위해 독서통신문 보내기도 잊지 않는다. 담임교사들한테는 수업 때 활용할만한 어린이책 정보를 제공한다. 고학년, 저학년생한테 눈높이에 맞춘 독서지도를 매주 벌인다. 지난달엔 학부모, 학생, 출판사와 함께 인형극, 구연동화, 글짓기, 책 만들기 등 같은 ‘책잔치’를 열었다. 그러니까 “사서교사는 학생과 교사, 학부모, 그리고 출판사와 지은이, 게다가 지역 시민단체까지 서로 연결하고 소통하게 하는 중심이자, 적절하게 지식·정보를 재구성해 서비스하는 전문가“(이성희 인천 방축고 도서관 담당교사·35)다. 빗속 궐기로 쟁취한 ‘154의 사건’ 최근에 학교도서관에 ‘사건’이 하나 있었다. 신문에도 방송에도 잘 보도되지 않았데도 사서교사들과 학교도서관 살리기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역사적 사건“이라는 의미 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내용인즉슨, 내년에 전국 공립 초중고등학교의 학교도서관에 154명 사서교사가 새로 임용된다는 소식이다. 이달 초에 교육인적자원부가 214명의 사서교사 자리를 늘리겠다고 밝힌 데 이어 전국 시도교육청이 인원을 조정해 154명 임용을 최종 고시했다. 전국 교사가 38만6천명(2004년)이나 되는 나라에서 고작 154명 교사 증원이 이처럼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건 왜일까. 거기엔 학교도서관 살리기운동을 벌여온 사람들의 작지만 큰 싸움이 숨어 있다. “154, 정말 뜻깊은 세 자릿수입니다. 현재 전국 초중고교 열 곳 가운데 아홉 곳에 학교도서관이 있다고 합니다. 또 2003년부터 교육부가 나서 학교도서관의 시설을 개선하는 지원사업이 펼쳐치고 있지요. 도서관이 친근한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정규 사서교사가 운영하는 학교도서관은 3%도 되질 않아요.“ 이덕주 교사는 “보건소에 시설과 약은 있는데 의사·간호사는 없다고 생각해보세요, 지금 학교도서관이 그런 상황입니다”라고 말했다.
2004년 전체교사와 사서교사 인력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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