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 진정한 자존심에 대한 성찰
〈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넌 자존심도 없냐.” 이런 말을 듣는다면 얼굴 화끈 달아오를 확률 99.9%. 쪽팔림만은 절대 참을 수 없다며 ‘폼생폼사’를 좌우명으로 삼는 이도 많다. 다른 한편에서는 “남자가 밥벌이를 위해서라면 자존심 따위 내팽개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진정한 자존심이다”라는 말도 들린다. 진짜 자존심이 뭘까. 헷갈린다. 〈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은 주간지 〈한겨레21〉이 올해 봄 개최한 ‘인터뷰 특강’을 모은 책이다. 우리 시대 논객들이 내놓은 해답을 볼 수 있다. 미학자 진중권씨는 “자존심은 자신에 대한 배려”라고 답한다. 타인에게 권력을 휘두르는 일 따위는 진짜 자존심이 아니라는 게다. 과학자 정재승씨는 “인간의 자존심은 진실을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설사 인간이 유전자의 숙주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 진실과 마주 대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에프티에이 저격수’ 정태인씨는 ‘한-미 에프티에이’가 우리의 자존(自尊)을 넘어 자존(自存)마저 위협한다고 경고한다. 박노자씨는 자존심은 권력관계에서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밖에도 여성학자 정희진씨와 노동연구가 하종강씨 등의 특강에도 여러 고민이 담겨 있다. 진중권 외 지음/한겨레출판·1만2000원.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 ‘인생 동반자’로서의 편안한 독서기
〈침대와 책 〉
정혜윤 〈기독교방송〉 피디의 ‘독서일기’다. 하지만 무지막지한 독서량을 자랑하며 읽는 이에게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 불편한 독서 편력기와는 거리가 멀다. 되레 왜 책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로맨틱한 고백에 가깝다. 그에게 책은 삶의 지혜다. 예를 들어 옆의 남자들이 매력 없고 한심해 보일 땐, 남자들이 죽도록 예뻐 보이는 책을 뒤적인다. 이를테면 〈장미의 이름〉을 펼쳐 한번의 ‘경험’으로 인류를 사랑해버린 아드소를 흐뭇하게 바라본 뒤, 실눈을 뜨고 내 옆의 남자를 요모조모 뜯어본다. 사랑에 미쳐 뛰어다녔을 수도 있는 그의 애송이 시절을 떠올리면 조금은 귀여워진다. 책과 침대는 그 자체가 훌륭한 여행법이기도 하다. 그는 빵집서 흘러나온 바흐의 음악에서 다치바나 다카시 〈사색기행〉의 스페인 수도원을 떠올리고, 곧장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 〈스페인사〉를 펼친다. 책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일, 나보다 먼저 겪었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잘 쓴 여행가이드이고, 침대는 ‘알라딘의 양탄자’ 부럽지 않은 교통 수단이다. 이렇듯 책은 “현실에서 즉각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전세대, 전지역의 현자가 수만 가지 스토리를 동원해 윙크해가며, 인생의 힌트를 주는” 반려자다. 침대에 누운 채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손가락에 침 묻혀 책장을 넘길 때 인생의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속삭임이 들리는 듯하다. 정혜윤 지음/웅진지식하우스·1만1000원.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 ‘타인과 관계맺기’ 속의 철학
〈남경태의 스토리철학 18〉
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자연·우주 같은 ‘세계’를 해명하려는 데서 출발해, 데카르트에 이르러 ‘생각하는 나’라는 ‘주체’를 정립했다. 근대 철학은 주체와 세계의 관계 맺기인 ‘인식’의 문제에 집중한다. 이어 현대 철학은 주체,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존재가 세계의 일부이면서도 책상이나 연필 같은 사물과 달리 세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이해에 이른다. 이처럼 인식과 존재를 해명해가는 근·현대 철학에서, ‘타인의 존재’란 속을 썩이는 문제였다. 내 관점에서 타인은 사물처럼 인식(소유)의 대상이지만, 타인은 나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인식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의 관계 맺기는 복잡다단하다. 사랑은 특히 대상을 소유하려는 힘과 대상화되지 않으려 저항하는 힘의 대결로 자칫 변질해버린다. 지은이의 ‘사랑’에 대한 철학적 해제는 이러하다. 하지만 지은이는 철학사를 종횡무진 엮어가기에 앞서 ‘스토리’를 택했다. ‘스테디셀러’ 〈개념어 사전〉을 펴내기도 했던 지은이는 대중적 저술가답게 주체·타자·인식·사랑 등 18가지 철학적 주제에 대한 해제를 뒤편으로 돌렸다.
사랑에 대한 철학적 해제의 앞에는 편지가 한 통 나온다. 타인이란 존재와 관계 맺기에 실패한 ‘분열증 걸린 바보’가 연인과의 이별 일 년 만에 다시 쓰는 사랑 고백 편지다. 남경태 지음/들녘·1만3000원.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침대와 책〉
〈남경태의 스토리철학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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