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세상에 홀리다 〉
■ 인류와 함께한 시각적 경이로움
〈미술, 세상에 홀리다 〉
〈미술, 세상에 홀리다 〉는 본다는 것의 경이로움에 대한 기록이다. 자연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풀어낼 수 없었던 옛 사람들에게 본다는 행위 자체는 하나의 신비였다. 근대까지 신비로 남아 있던 소리는 천둥과 메아리뿐이었다. 하지만 시각이 주는 경이로움은 끝이 없었다. “빛나는 구름 꼭대기 하늘의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푸른 궁륭, 변화무쌍하고 신비스러운 달까지….” 현생 인류 이전 네안데르탈인에서부터 현대미술가까지, 그들이 시각적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체계적으로 살피고 있다. 기독교 순례자들은 왜 가리비 껍데기를 지녔을까. 태양 광선이 새벽하늘에서 퍼지는 모양이 가장 완벽하게 형상됐으며 미지의 세계인 깊은 바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에는 창문도 없고 사람의 손길이 닿았음을 암시할 만한 요건은 전혀 없다. ‘신의 작품’이 됨으로써 태양의 은혜로운 힘을 기리는 완벽한 이미지가 된 것이다. 중국 황제와 관련된 이미지에는 늘 구름이 따라 다닌다. 구름은 비를 가져오며, 비는 생명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종주의의 흉측한 신화가 강고하게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본다는 것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양한 시각물, 깔끔함 번역도 책을 빛나게 한다. 줄리언 스팰딩 지음·김병화 옮김/세미콜론·2만2000원.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 헤라클레스로 살펴보는 신화의 세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
유럽을 여행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한번쯤은 이름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이런 궁금증을 느꼈을 법도 하다. ‘저 근사한 조각상은 누구지?’ ‘신화 같기는 한데… 저 그림은 또 뭐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고 유럽문화를 접하는 것은 뜻 모르는 단어가 가득한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은 그 뜻, 수많은 조각상과 그림들의 뜻을 찾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헤라클레스’ 하나로 그 많은 신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 가운데서도 유난히 족보가 복잡하고 사연이 긴 ‘문제적 스타’다. 헤라클레스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 상당 부분을 압축적으로 맛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근육질 조각상들 중에서 헤라클레스는 누구? 올리브 방망이를 들고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다면 그건 열의 여덟아홉은 ‘네메아의 사자를 죽인 헤라클레스’다. ‘키타이론 사자를 죽인 헤라클레스’라고 한, 고대 신화 쓰기의 원조 아폴로도로스의 견해가 후세 신화 작가들의 대세에 묻히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한번 유포돼 굳어지면 쉽게 소멸하지 않는 신화의 속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또 저자 이윤기가 찾은 러시아 여름공원에서는 드물게 ‘사자를 죽인 삼손’ 조각상도 찾아볼 수 있는데, 헤브라이즘 문화였던 러시아가 헬레니즘 문화를 좇았던 역사와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이윤기 지음/웅진지식하우스·1만3500원.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 한국 교회를 향한 통렬한 외침
〈추락하는 한국교회〉
자본주의 한국에 어둠이 내리면 무덤처럼 붉은 십자가들이 하나 둘 솟는다. 대형교회가 넘쳐나는 그 저녁 나라에는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를 불러온 배타적인 선교가 있다. 십일조로 엄청난 헌금을 교회에 바치면서도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강제로 끌어낸 기독교인 기업가도 있다. “믿음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지하철 역 앞의 선교가 있고, 공공장소에서 스님에게 개종을 강요했다는 일화도 있다. 지은이는 ‘근본주의’ 신학을 한국교회의 문제점의 출발로 꼽는다. 성서가 한자 한자 신의 영감으로 쓰였다는 축자영감설은 동정녀 탄생설이나 창조론을 진실이라 주장해 비기독교인으로부터 조롱을 받는다. 친미 흡수통일을 부르짖는 극보수 교회, 노동자의 기본권 요구를 빨갱이 짓이라고 몰아붙이는 교회, 남녀차별이 심각한 교회, 돈과 권력에 목숨 거는 교회,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나쁜 관행을 거듭하는 교회. 저녁이면 솟는 붉은 십자가들은 무슨 의미일까. 한국 교회의 무덤을 미리 보여주고, 변화를 촉구하는 경고등일지 모른다. 민중신학과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배타주의를 벗어나라고, 교권 세습과 같은 불합리를 몰아내라고, 통일시대에 걸맞게 이념 편향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종교 간 대화에 나서라고 말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기독교 절대주의에 빠진 한국교회여, 상생의 종교로 탈바꿈하라!” 이상성 지음/인물과사상사·1만2000원.
〈미술, 세상에 홀리다 〉
〈미술, 세상에 홀리다 〉는 본다는 것의 경이로움에 대한 기록이다. 자연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풀어낼 수 없었던 옛 사람들에게 본다는 행위 자체는 하나의 신비였다. 근대까지 신비로 남아 있던 소리는 천둥과 메아리뿐이었다. 하지만 시각이 주는 경이로움은 끝이 없었다. “빛나는 구름 꼭대기 하늘의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푸른 궁륭, 변화무쌍하고 신비스러운 달까지….” 현생 인류 이전 네안데르탈인에서부터 현대미술가까지, 그들이 시각적 자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체계적으로 살피고 있다. 기독교 순례자들은 왜 가리비 껍데기를 지녔을까. 태양 광선이 새벽하늘에서 퍼지는 모양이 가장 완벽하게 형상됐으며 미지의 세계인 깊은 바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에는 창문도 없고 사람의 손길이 닿았음을 암시할 만한 요건은 전혀 없다. ‘신의 작품’이 됨으로써 태양의 은혜로운 힘을 기리는 완벽한 이미지가 된 것이다. 중국 황제와 관련된 이미지에는 늘 구름이 따라 다닌다. 구름은 비를 가져오며, 비는 생명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인종주의의 흉측한 신화가 강고하게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본다는 것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양한 시각물, 깔끔함 번역도 책을 빛나게 한다. 줄리언 스팰딩 지음·김병화 옮김/세미콜론·2만2000원.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
유럽을 여행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한번쯤은 이름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이런 궁금증을 느꼈을 법도 하다. ‘저 근사한 조각상은 누구지?’ ‘신화 같기는 한데… 저 그림은 또 뭐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고 유럽문화를 접하는 것은 뜻 모르는 단어가 가득한 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4-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은 그 뜻, 수많은 조각상과 그림들의 뜻을 찾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헤라클레스’ 하나로 그 많은 신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 가운데서도 유난히 족보가 복잡하고 사연이 긴 ‘문제적 스타’다. 헤라클레스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리스 신화의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 상당 부분을 압축적으로 맛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근육질 조각상들 중에서 헤라클레스는 누구? 올리브 방망이를 들고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다면 그건 열의 여덟아홉은 ‘네메아의 사자를 죽인 헤라클레스’다. ‘키타이론 사자를 죽인 헤라클레스’라고 한, 고대 신화 쓰기의 원조 아폴로도로스의 견해가 후세 신화 작가들의 대세에 묻히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한번 유포돼 굳어지면 쉽게 소멸하지 않는 신화의 속성이 드러나기도 한다. 또 저자 이윤기가 찾은 러시아 여름공원에서는 드물게 ‘사자를 죽인 삼손’ 조각상도 찾아볼 수 있는데, 헤브라이즘 문화였던 러시아가 헬레니즘 문화를 좇았던 역사와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이윤기 지음/웅진지식하우스·1만3500원.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추락하는 한국교회〉
〈추락하는 한국교회〉
자본주의 한국에 어둠이 내리면 무덤처럼 붉은 십자가들이 하나 둘 솟는다. 대형교회가 넘쳐나는 그 저녁 나라에는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를 불러온 배타적인 선교가 있다. 십일조로 엄청난 헌금을 교회에 바치면서도 비정규 여성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강제로 끌어낸 기독교인 기업가도 있다. “믿음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지하철 역 앞의 선교가 있고, 공공장소에서 스님에게 개종을 강요했다는 일화도 있다. 지은이는 ‘근본주의’ 신학을 한국교회의 문제점의 출발로 꼽는다. 성서가 한자 한자 신의 영감으로 쓰였다는 축자영감설은 동정녀 탄생설이나 창조론을 진실이라 주장해 비기독교인으로부터 조롱을 받는다. 친미 흡수통일을 부르짖는 극보수 교회, 노동자의 기본권 요구를 빨갱이 짓이라고 몰아붙이는 교회, 남녀차별이 심각한 교회, 돈과 권력에 목숨 거는 교회,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나쁜 관행을 거듭하는 교회. 저녁이면 솟는 붉은 십자가들은 무슨 의미일까. 한국 교회의 무덤을 미리 보여주고, 변화를 촉구하는 경고등일지 모른다. 민중신학과 자유주의 신학 그리고 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배타주의를 벗어나라고, 교권 세습과 같은 불합리를 몰아내라고, 통일시대에 걸맞게 이념 편향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종교 간 대화에 나서라고 말이다. 지은이는 말한다. “기독교 절대주의에 빠진 한국교회여, 상생의 종교로 탈바꿈하라!” 이상성 지음/인물과사상사·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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