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매혈기
느낌과 감동을 파는 영화평론가의 성찰기
평론가 매혈기
중국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이 소설에서 허삼관은 인생의 고비마다 피를 팔아 연명한다. 영화 평론가 김영진은 〈평론가 매혈기〉에서 자신의 평론 활동을 ‘매혈’에 빗댄다. 허삼관은 실제 피를 팔았지만 자신은 영화에 대한 느낌과 감동을 글로 팔아 먹고 산다는 것이다. 〈평론가 매혈기〉는 영화평론가 김영진이라는 개인과 ‘매혈’의 재료가 되는 영화, ‘준엄한 밥벌이’인 평론의 사적 관계를 1인칭으로 풀어낸다. ‘나’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성인·무협영화를 섭렵하던 ‘시네키드’였다. 외국문화원에 출근 도장을 찍으며 예술영화를 섭렵하던 ‘시네필’이기도 했다. 이런 ‘나’의 모습 속에서 영화와 연애에 빠진 한 인간의 순수한 열정이 비친다. ‘나’는 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트뤼포·오슨 웰스·코폴라·고다르 등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않았는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곧 ‘불멸의 고전’에 대한 친밀한 평론이 된다. 이창동·장률·기타노 다케시·허우샤오시엔 등 감독들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는 “작품에 숨은 비밀을 염탐하고 싶어 마음 설레는” 평론가의 욕망도 드러난다. 또 박찬욱 감독 등 ‘나’와 오랜 인연을 간직한 감독들에 대한 소회를 읽노라면, 짧은 평론 속에서 미처 다 독해하기 힘들었던 행간이 엿보이기도 한다. 김영진 지음/마음산책·1만1000원.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어두운 시대가 낳은 웃기는 일들
한승헌 변호사의 유머기행: 산민객담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과 감사원장을 지내고, 민청학련 사건에서 대통령 탄핵까지 굵직굵직한 정치적 사건의 변호를 도맡아왔던 한승헌 변호사가 유머집을 펴냈다. 금테 안경을 걸친 깡마른 얼굴에서부터 딱 ‘강직한 변호사’로만 보이는 그가 변론집도 아닌 유머집을 펴내다니! 다소 어리둥절해하는 독자도 있겠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남산 지하실에서 조사를 받을 당시 “한국(韓)의 유신헌법(憲)을 이기겠다(勝)는 말이냐”며 이름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얘기나, 수감 시절 둘째 아들의 장학금 신청에 “변호사 아들이 무슨 장학금 신청이냐”고 했다는 한 교수의 말에 “고대사 전공이라 그랬나보다” 응수했다는 일화 등, 전적으로 체험에 기반한 그의 유머집은 생생함이나 독창성, 진정성 면에서 단연 돗보인다. 그런가 하면, 대학 근처에 싸고 맛좋은 분식점이 많이 생겼다고 얘기한 일본 유학생이 ‘대한민국의 식량 사정에 관한 국가기밀을 누설했다’고 구속된 사연이나, 계량화 중심의 심사분석이 유행하던 5·16 당시 교도소 사망자수가 예상보다 늘자, ‘초과달성’이라는 표현을 썼던 일화를 전하며 웃음으로 시대를 비판하기도 한다. 한 쪽 한 쪽, 어두운 시절을 긍정으로 견뎌온 그의 모습이 읽혀 잔잔한 웃음 끝에 숙연함마저 느끼게 된다. 한승헌 지음/ 범우사·1만원.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오지랖 넓게 포착한 ‘한국인의 자화상’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
김갑수씨의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는 시사평론집이다. 〈한겨레〉 정치칼럼 ‘세상읽기’에 썼던 글들이 모태다. 자기고백류 에세이로만 이해한다면 실망할 확률이 높다. 제목의 ‘나’는 ‘우리’의 대표단수로 읽어야 한단다. ‘우리’는 다시 한국인으로 해독해도 본뜻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으리라. 한국인의 자화상을 되짚어보자는 것이 큰 그림이다.
문화평론가·방송인·음악칼럼니스트·시인…. 그의 이름 아래 붙는 여러 타이틀만큼이나 글 소재는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디 워〉 논란’을 보며 개체로 퇴행한 개인이 다시 집단적 자아로 뭉치는 현상을 짚고, ‘유승준 국적포기 소동’에서 우리 사회 지나친 도덕주의를 읽는다. 미국에 대한 성토 하나로 내부의 문제를 감춰버리려는 비겁함도 질타한다. 좌와 우 어느 쪽에도 똥침 한방씩 날려준다. 한국인이라는 딱지에도 얽매이지 않는다. 국적 따위는 상관없는 사회를 꿈꾸기 때문이다. 그는 “변방 오지의 엽전들이 살았다던 전설을 뒤로 하고 이제 번쩍번쩍한 때깔을 자랑하게 되었는데 우리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신을 까발리는 부분을 읽는 재미는 덤이다. 10년 가까이 연애를 했으나 끝내 연인과 헤어졌던 이야기 등 개인사를 밝히는 데도 주저함이 없다. 김갑수 지음/프로네시스·1만2000원.
조기원 기자 grden@hani.co.kr
산민객담
오지랖 넓게 포착한 ‘한국인의 자화상’
나는 왜 나여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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