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들 조선 만들다
조선을 이끈 이들의 독서 편력기
〈책벌레들 조선 만들다〉
책은 말머리서 줄곧 하나의 의문을 던지며 독자와의 지적 여정을 재촉한다. 금속활자의 최초 발명이란 역사적 사실이 강조될 뿐, 금속활자가 찍어낸 책이 어떤 세력의 어떤 의도로 어떻게 보급되어 조선사회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그다지 알려진 바가 없다는 자문이다. 조선은 “독서하면 선비라 부르고, 정치를 하면 대부”이던 시대다. 독서가가 수뇌가 됐던 조선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앞선 의문을 푸는 게 필요하다. 시작은 정도전이다. “동방은 서적이 적어 배우는 사람들이 독서의 범위가 넓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긴다”며 출판시설 ‘서적포’를 설치하고자 하지만, 기저엔 고려을 뒤엎은 혁명의 완성에 대한 내밀한 열망이 숨어 있다. 집현전을 설치하고 문사를 선발해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군 세종. 스스로 “책 읽는 것이 유익한 것인 줄 더 알게 됐다, 날마다 총명해지고 잠이 아주 줄어들었다”다 했으니 개인적 취향이 이보다 더 가치있게 사회와 조응하긴 어려워 보인다. 반면 즉위하자마자 중국책 <사고전서>를 구하려고 사신을 파견했을 만큼 학문을 좋아하던 정조가 이후 천주교가 애면글면 퍼지던 시대를 만난 건 한편 불행이다. “문체와 사상의 오염이 중국 서적에 있다”며 서적 수입을 금하고 사상에 문체까지 검열했는데, 책에 대한 그의 태도가 ‘개혁군주’라는 여염의 인식과는 거리를 둔다.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란 제목마따나 독서로 조형되고 푼더분해진 조선을 살피면, 지금 책 읽지 않는 한국도 슬그머니 ‘오버랩’된다. 강명관 지음/푸른역사·1만5000원.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세상의 모든 ‘가신 이’를 기리며 〈그대 떠난 자리에 별이 뜨고〉
오비추어리 : 신문지상의 사망기사, 사망자 약력. <그대 떠난 자리에 별이 뜨고>는 <한겨레>에 ‘가신이의 발자취’라는 문패로 실렸던 오비추어리를 주로 모은 책이다. 한국신문에서 부고는 대개 몇줄로 끝난다. ○○씨 별세, 발인 ○○시…. 유명인만 예외다. 생전의 발자취를 더듬는 기사가 배정된다.
<한겨레> 부고란을 담당하는 사람면 데스크였던 이상기 기자는 이런 풍토가 불만이었다. 평범한 이웃들의 사망도 유명인처럼 따로 기사로 다뤘다. 영양사, 보험인, 남편을 일찍 잃고 자식들 뒷바라지에 평생을 바쳤던 할머니 등…. 평범한 이들의 특별했던 인생 이야기를 실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특별하므로.
기자들이 쓴 기사만 있진 않다. 생전에 고인과 친밀했던 이들의 글이 많다. 이종옥 전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 오비추어리는 전 보좌관 케네스 버나드가 썼다. 그는 “제 아내가 아팠을 때, 이 총장은 총장이 아닌 친구로서 24시간 동안 저와 제 아내곁을 지켜주었다”고 회상했다. 농민운동가 이주영씨 후배 이영재씨는 생전에 고인이 농민되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눈물 흘리던 모습을 떠올렸다. 기자들이 쓴 오비추어리보다 따뜻하고 애틋하다.
책 마지막 부분은 살아있는 이들에게 바치는 미리 읽는 추모사다.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이들의 인생을 중간에 살짝 들여다본다. 한승헌 안철수 엄홍길 이건희 등을 다뤘다.이상기/깊은강·9800원.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동양사 관심 유도한 읽기 쉬운 세계사 〈세계의 모든 역사-고대편1·2〉
수잔 와이즈 바우어는 역사학자라기보다 홈스쿨링의 대가로 유명하다. 제도권 밖에서 공부해 대학교수가 된 그는 1999년 어머니와 함께 홈스쿨링의 참고서로 여겨지는 <잘 훈련된 정신>을 썼다. 그런 그는 세계사를 집대성하는 데 나선 이유가 “미국인들이 서양뿐 아니라 동양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현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꼼꼼한 모범생임이 확실한 지은이가 수많은 지도와 연표에 생생한 설명을 곁들여 고대사를 ‘잘 읽히게’ 만들었다는 점은 이 책의 최대 장점이다. 전설적인 고대 수메르의 왕 길가메시를 “25살 이전에 항공사를 창업하거나 28살에 회사를 네 개나 세웠다가 팔아치우거나 30살 이전에 자서전을 쓰는 유형의 인물”이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과감하게 기존 교과서에 나온 인물들을 상당수 생략한 것이 눈에 띈다. 저자가 중요하다고 여긴 부분의 글자를 진하게 처리하는 등의 다소 파격적인 형식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읽기 좋을수도,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사책치고 인용문헌 등 참고 자료 부분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점은 아쉽다. 그러나 저자의 흥미진진한 서술 방식이 고대에서 중·근세로 올수록 어떤 식으로 발전할지는 주목된다. 지은이가 한국을 아는 보기드문 ‘지한파’ 지식인이라서 더욱 그렇다. 수잔 와이즈 바우어 지음·이광일 옮김/이론과 실천·1권 2만3000원 2권 2만9000원. 서수민 기자 wikka@hani.co.kr
세상의 모든 ‘가신 이’를 기리며 〈그대 떠난 자리에 별이 뜨고〉
그대 떠난 자리에 별이 뜨고
동양사 관심 유도한 읽기 쉬운 세계사 〈세계의 모든 역사-고대편1·2〉
세계의 모든 역사-고대편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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