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함과 더러움>
몸을 씻는 청결 문화가 걸어온 길
<깨끗함과 더러움> 깨끗함을 위해 사적인 공간에서 몸에 물을 끼얹는 행위가 당연해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16·17세기 유럽인들이 마른 수건으로 ‘건조한’ 세수를 하고 화려한 옷에 향수만 뿌려댔던 까닭은 상·하수도 시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물을 몸에 끼얹는 것과 깨끗함은 별개였다. 16세기 이전까지 물은 유희와 쾌락의 매개체였다. 목욕탕은 놀이와 일탈의 장소였을 뿐 청결 유지와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16세기 들어 페스트가 유행하면서, 몸에 뚫린 구멍으로 물과 공기가 침투해 페스트가 들어오는 틈을 준다고 그들은 믿었다. 목욕탕은 ‘즐거움’의 공간에서 ‘두려움’의 공간으로 급반전돼 자취를 감췄다. 18세기부터 현대적 의미의 청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깨끗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사적 공간이 탄생했다. 세균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은 청결을 좀더 과학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세기 도시의 재정비는 비로소 내밀한 공간의 확보와 물의 공급에 맞춰졌다. 지은이는 “청결의 역사는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부터 가장 은밀한 부분으로 이동해왔으며, 개인의 내밀공간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왔다”며 “좀더 광범위하게 보면, 문화가 말초적 세계에 대해 점진적으로 영향력을 넓혀나가는 역사”라고 말한다. 조르주 비가렐로 지음·정재곤 옮김/돌베개·1만5000원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언론 바로세우기는 시민입법으로
<우리언론, 무엇으로 다시 살 것인가>
최근 정부가 기자실을 없애버리는 ‘취재선진화 지원’(!) 방안을 내놓자 모든 신문들이 거품을 물었다. 언론탄압이란다. 하지만 그 싸움을 바라보는 여론은 싸늘했다. 특히 인터넷 여론은 90% 이상이 어느새 기득권이 된 언론을 탓했다. 네이버의 한 네티즌은 “기자들이 언론탄압이라고 청와대까지 몰려가서 부르짖는 것은 국민들이나 네티즌에게는 개그콘서트 이상으로 실소하게 한다”고까지 했다. 기자들은 어떤가. 지난해 기자협회가 현직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보면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를 묻는 질문에 45%가 “없다”고 대답했다.
바야흐로 언론의 위기다. 인터넷 언론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사용자제작컨텐츠(UCC)가 맹위를 떨쳐도 진실한 목소리,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공론장에서 찾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에 새삼스레 언론개혁을 말하는 이유다.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현재 언론의 위기가 언론 자신이 진실과 공정이라는 기본 의무조차 소흘히 한 탓이라고 진단한다. 그리고 이런 보도행위가 자행되는 구조적인 원인을 언론자본이 공론장을 지배하고 있는 현상에서 찾았고, 이의 해체를 통해서만 지배체제와 대중이 소통할 수 있는 해방공론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방법으로 정쟁에 휘말릴 것이 틀림없는 정부 차원의 조처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입법운동을 제시한다. 손석춘 지음/시대의창·8900원
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생사 갈림길 순간의 12명
<일분 후의 삶> 폭발한 유조선이 화염에 휩싸인 채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이미 선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성 항해사의 꿈을 키우던 실항사 김학실씨는 이창무 선장, 다른 학교에서 실습 나온 여성 실기사(실습 기관사)와 함께 구명 튜브를 잡고 생사를 건 싸움을 시작했다. 추운 바닷물 속에서 15분 이상 지나면 저체온으로 실신해 죽기 십상이다. 전신이 얼어붙어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멀리 배가 보였다. ‘살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실항사, 얼마나 남았나?” 선장이 배까지의 거리를 물었다. “5마일 남았습니다.” 선장이 다시 물었고 김씨는 이번엔 ‘3마일 남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제 배는 오지 않고 있었다. 단지 바람일 뿐. 섭씨 7도의 차디찬 바닷물과 싸운 지 40분 만에 그들은 극적으로 구조됐다. <일분 후의 삶>은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생의 진정한 순간들을 겪은 열 두 사람의 이야기 열 두 개를 담았다. 전란 때 처형대에 올랐다가 마지막 소원으로 노래를 부르자 겨냥하던 총부리들이 내려갔다는 국악인 공옥진씨의 얘기에 자극받아 그들을 만나러 돌아다녔다. 극한에서 생사의 기로에 직면했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삶에 대한 짙은 희망. “캄캄하게 흘러가는 그 모진 시간 속에서도 생은 매순간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들은 언제나 혼자였다.권기태 글/랜덤하우스·9,800원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깨끗함과 더러움> 깨끗함을 위해 사적인 공간에서 몸에 물을 끼얹는 행위가 당연해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16·17세기 유럽인들이 마른 수건으로 ‘건조한’ 세수를 하고 화려한 옷에 향수만 뿌려댔던 까닭은 상·하수도 시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물을 몸에 끼얹는 것과 깨끗함은 별개였다. 16세기 이전까지 물은 유희와 쾌락의 매개체였다. 목욕탕은 놀이와 일탈의 장소였을 뿐 청결 유지와는 동떨어진 곳이었다. 16세기 들어 페스트가 유행하면서, 몸에 뚫린 구멍으로 물과 공기가 침투해 페스트가 들어오는 틈을 준다고 그들은 믿었다. 목욕탕은 ‘즐거움’의 공간에서 ‘두려움’의 공간으로 급반전돼 자취를 감췄다. 18세기부터 현대적 의미의 청결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깨끗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사적 공간이 탄생했다. 세균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은 청결을 좀더 과학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세기 도시의 재정비는 비로소 내밀한 공간의 확보와 물의 공급에 맞춰졌다. 지은이는 “청결의 역사는 눈에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부터 가장 은밀한 부분으로 이동해왔으며, 개인의 내밀공간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왔다”며 “좀더 광범위하게 보면, 문화가 말초적 세계에 대해 점진적으로 영향력을 넓혀나가는 역사”라고 말한다. 조르주 비가렐로 지음·정재곤 옮김/돌베개·1만5000원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언론 바로세우기는 시민입법으로
<우리언론, 무엇으로 다시 살 것인가>
<우리언론, 무엇으로 다시 살 것인가>
<일분 후의 삶> 폭발한 유조선이 화염에 휩싸인 채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이미 선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여성 항해사의 꿈을 키우던 실항사 김학실씨는 이창무 선장, 다른 학교에서 실습 나온 여성 실기사(실습 기관사)와 함께 구명 튜브를 잡고 생사를 건 싸움을 시작했다. 추운 바닷물 속에서 15분 이상 지나면 저체온으로 실신해 죽기 십상이다. 전신이 얼어붙어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멀리 배가 보였다. ‘살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실항사, 얼마나 남았나?” 선장이 배까지의 거리를 물었다. “5마일 남았습니다.” 선장이 다시 물었고 김씨는 이번엔 ‘3마일 남았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실제 배는 오지 않고 있었다. 단지 바람일 뿐. 섭씨 7도의 차디찬 바닷물과 싸운 지 40분 만에 그들은 극적으로 구조됐다. <일분 후의 삶>은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생의 진정한 순간들을 겪은 열 두 사람의 이야기 열 두 개를 담았다. 전란 때 처형대에 올랐다가 마지막 소원으로 노래를 부르자 겨냥하던 총부리들이 내려갔다는 국악인 공옥진씨의 얘기에 자극받아 그들을 만나러 돌아다녔다. 극한에서 생사의 기로에 직면했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삶에 대한 짙은 희망. “캄캄하게 흘러가는 그 모진 시간 속에서도 생은 매순간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들은 언제나 혼자였다.권기태 글/랜덤하우스·9,800원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