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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국의 사람 ‘인’사이드] ‘흥벤저스: 시빌 워’…흥국생명의 위기는 내부에?

등록 2020-12-16 15:12수정 2021-01-07 21:10

13일 프로배구 브이(V)리그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서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 지시를 내리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13일 프로배구 브이(V)리그 흥국생명과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서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 지시를 내리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가 위기에 빠졌다. 개막 10연승을 달리던 중 ‘맞수’ 지에스(GS)칼텍스 킥스에 리버스 스위프패를 당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13일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에 0-3 셧아웃패를 당한 건 뼈아프다.

당시 기록을 보면 ‘완패’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김연경 홀로 21득점하며 분투했지만, 공격성공률, 리시브효율, 가로막기, 범실 등 모든 면에서 도로공사에 뒤처졌다. 이날 의외로 안정적인 볼 배급 능력을 선보인 신인 세터 박혜진(18)을 발굴한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물론 이 경기는 주전 세터인 이다영과 주포 이재영이 빠진 상태서 진행됐다. 이재영은 코로나19 검사를 이유로, 이다영은 쌍둥이 언니와 밀접 접촉자란 이유로 경기에서 빠졌다. 이재영의 경우 고열이 나는 등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이다영의 결장은 배구계 안팎에서 이유가 석연치 않다고 보고 있다.

이다영은 경기 며칠 전 자신의 에스엔에스(SNS) 계정에 ‘수상한’ 게시물을 연달아 올렸다. “갑질”, “나잇살 먹고”, “내가 다 터뜨릴 거야” 등 격앙된 어조로 채워진 게시물은 24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사라지는 ‘스토리 게시물’이어서 지금은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게시물이 올라오고 난 뒤 도로공사전에 결장했다. 지에스전 패배를 만회해야 하는 중요한 경기였음에도 주전 세터가 빠진 것이다.

이재영의 코로나19 검사에 따른 조처라고 구단은 해명하지만, 이다영은 검사조차 받지 않았다. 같은 버스를 타고, 함께 땀을 흘리며 훈련하는 다른 동료들도 검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다영만 밀접 접촉자로 분류돼 경기에 빠졌다는 해명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배구계 인사들은 조심스럽게 그 내막에 “흥국생명 선수끼리의 갈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배구계 인사는 “시즌 초부터 이다영이 한 선배 선수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돌았다. 생각보다 문제가 빨리 터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주목된 선수도 스타급 선수여서 둘 사이의 기싸움으로 번졌다는 얘기였다.

흥국생명 관계자도 이러한 의혹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팀의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개인적인 갈등은 있을 수 있다”며 “앞으로 문제가 커지지 않도록 신경을 쓰겠다. 현재 두 선수 모두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다.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스포츠에서 스타 플레이어들끼리의 신경전은 늘 존재한다. 미국 프로농구 시카고 불스의 마이클 조던은 팀 동료들과 늘 갈등 관계였다. 관건은 그것이 팀 경기력에 지장을 주느냐다. 흥국생명은 시즌 처음으로 연패를 당하며 경기력 저하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에서 ‘시빌 워’(내전)가 발생한 꼴이다.

선수끼리 갈등이 있다면 그것을 푸는 것은 결국 감독의 몫이다. 또 다른 배구계 인사는 “지금은 흥국생명의 위기가 맞다. 박미희 감독이 슬기롭게 잘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만한 능력이 있는 감독”이라고 했다.

흥국생명으로서는 18일 인천 안방구장에서 열리는 IBK기업은행전이 중요한 승부처다. 이다영·이재영 둘 다 복귀해 연패를 끊는다면 다시 회복할 수 있다. 세터 간 자존심 대결도 펼쳐진다. 하필 상대편의 세터가 이다영이 들어오면서 흥국생명에서 나간 조송화다.

흥국생명이 다시 흥벤저스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배구 팬들의 이목이 인천 계양체육관으로 향하고 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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