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선수들이 지난 28일 GS칼텍스 전에서 공격에 성공한 뒤 기뻐하고 있다. 한국배구연맹 제공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스포츠 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문장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포수로 거론되는 뉴욕 양키스의 ‘전설’ 요기 베라의 말이다. 베라가 은퇴 뒤 뉴욕 메츠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았을 때, 팀의 저조한 성적을 지적하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이 말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언이 됐다. 실제 이 말이 베라의 입 밖으로 나온 1973년, 뉴욕 메츠는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꼴찌에서 1위로 올라서며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다. 정말로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었다.
베라의 명언을 되새김하면서, 현재 한국 스포츠계에서 가장 논란의 팀인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가 떠올랐다. 스포츠팀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사회면에 더 기사가 많이 나왔을 만큼, 흥국생명은 팀 창단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쌍둥이 자매 학교폭력 사태가 터진 지난달 10일 뒤 흥국생명은 5번의 경기에서 1승4패를 기록하며 처참하게 무너졌다. 주전 공격수 이재영과 주전 세터 이다영 ‘포차’가 없는 상태였으니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지난 28일은 ‘어차피 우승은 흥국’이라는 뜻의 ‘어우흥’ 신화가 무너진 날이었다. 맞수인 지에스(GS) 칼텍스에 1-3으로 지면서 승점은 같지만 세트 득실에서 밀려 2위로 내려앉았다. 이 패배로 리그가 시작한 뒤 개막 11연승을 달렸던 흥국생명의 독주 체제는 작별을 고했다.
이대로 흥국은 무너질까? 많은 배구계 인사들이 이날 경기 전만 해도 흥국생명이 예전 경기력을 찾기 힘들다고 봤다. 지에스전도 0-3으로 완패할 것이란 예측이 많았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셧아웃 패배에 몰렸던 3세트를 25-22로 이기면서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이날 외국인 공격수 브루나는 22점을 기록했는데, 최근 3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면서 감을 잡아가고 있다. 백업 세터 김다솔도 점점 공격수들과의 호흡이 좋아지는 중이다. 여기에 리그 공격 종합 1위인 김연경도 15득점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 경기 뒤 “전반적으로 리듬이 괜찮았다. 브루나와 김다솔의 타이밍도 좋았다”고 밝힐 정도로 절망적인 수준의 경기는 아니었다. 상대편 차상현 감독은 경기 전 브루나에 관해 묻는 질문에 “아직은 큰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다”라고 했지만 경기 뒤 인터뷰서 “흥국생명 경기력이 확실히 많이 올라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브루나를 중심으로 한 흥국생명의 경기력이 생각보다 빨리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스포츠를 번역한 단어가 재주를 겨룬다는 뜻의 ‘경기’이듯 그 속성은 경쟁이다. 혼자서 텅 빈 골대에 아무리 볼을 차 넣는다고 한들, 그것을 스포츠라 부르지 않는다. 흥국생명은 선수 사이의 갈등 논란과 도덕적 질타 이전에 리그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프로 스포츠팀이다.
오는 6일 열리는 한국도로공사와의 경기는 사실상 흥국생명의 1위 결정전이나 다름없다. 3위 싸움에 몰린 상황서 3일 KGC인삼공사에 덜미를 잡힌 도로공사도 사활을 걸 것으로 예상된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경쟁, 그 경쟁에서 본연의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흥국생명 팬에 대한 진정한 사죄이자 보답일 것이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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