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22·한국체대)이 24일(한국시각) 멜버른파크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단식 8강전에서 테니스 샌드그런(27·미국)을 세트점수 3-0으로 완파한 뒤 담담한 표정으로 미소짓고 있다. 아시아 선수가 세계 4대 그랜드슬램대회의 하나인 호주오픈에서 4강에 오른 것은 1932년 사토 지로(일본) 이후 86년 만이다. 호주오픈 누리집
대한민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 4대 그랜드슬램대회 단식 4강 신화를 달성하는 순간, 22살의 청년은 코트 바닥에 누워버리지도, 라켓을 던지며 포효하지도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네트 반대쪽에 있는 상대를 잠시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곤 씩 웃었다. 관중석에서는 호주 남자 테니스의 ‘레전드’ 로드 레이버를 비롯해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아시아에서 온 청년을 환대했다. 관중석 한편에서 경기 내내 열렬히 응원을 한 부모(정석진, 김영미)와 역시 테니스 선수인 친형(정홍), 코치(네빌 고드윈, 손승리)들도 환호하며 기쁨을 나눴다.
경기 뒤 장내 방송을 맡은 전 미국 남자 테니스 스타 짐 쿠리어가 영어로 “마지막 게임에서 40-0으로 매치포인트를 잡고 흔들린 이유”를 묻자, 그는 “세리머니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고 답하며 경기 중에도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었음을 비치기도 했다.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은 “저 나이, 저 경험에 경기 뒤 코트에서 보여준 태도와 매너를 보면 참 대단하다. 스트로크는 세계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남자 테니스의 ‘기린아’ 정현(22·세계 58위·한국체대). 그가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파워 넘치는 스트로크와 폭발적인 리턴샷을 선보이며 한국 선수 사상 첫 그랜드슬램대회 단식 8강을 넘어 4강까지 오르는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24일 호주 멜버른파크 센터코트인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호주오픈 테니스 남자단식 8강전(5회전)에서다. 정현은 세계 97위인 미국의 복병 테니스 샌드그런(27)을 맞아 서브의 스피드와 폭발력에서는 다소 뒤졌지만, 포핸드와 양손 백스트로크 싸움에서 앞서며 세트점수 3-0(6:4/7:6<7:5>/6:3)으로 통쾌한 승리를 거뒀다(경기시간 2시간28분).
이틀 전 4회전에서 호주오픈 남자단식 통산 최다인 6회 우승에 빛나는 노박 조코비치(31·세계 14위·세르비아)를 세트점수 3-0(7:6<7:4>/7:5/7:6<7:3>)으로 누른 데 이은 또 한번의 쾌거다. 앞서 3회전(32강전)에서는 세계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21·독일)를 맞아 3시간23분 동안의 혈전 끝에 세트점수 3-2(5:7/7:6<7:3>/2:6/6:3/6:0)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16강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4강 진출로 상금도 88만호주달러(7억5600만원)를 확보했다. 아시아 선수가 호주오픈 4강에 오른 것은 1932년 사토 지로(일본) 이후 86년 만이다.
정현은 이미 지난해 11월 21살 세계 정상급 유망주 8명이 출전해 자웅을 겨룬 남자프로테니스(ATP) 넥스트 제너레이션스 파이널스에서 5전 전승으로 우승했는데, 불과 2개월 만에 세계 정상급 스타로 발돋움했다. 정현은 26일 4강전에서 지난해 챔피언 로저 페더러(37·세계 2위·스위스)와 결승 진출을 다툰다. 페더러는 8강전에서 토마시 베르디흐(33·세계 20위·체코)를 세트점수 3-0(7:6<7:1>/6:3:6:4)로 이겼다.
2000, 2007 유에스(US)오픈 남자단식에서 두차례 16강까지 올랐던 한국 테니스 전설 이형택(42)은 “페더러와 해볼 만하다. 정현도 압박을 느끼겠지만 반대로 페더러 역시 상승세의 정현이 부담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현이 이 기세로 4강을 넘어 결승까지 오르면 아시아 선수로는 일본의 니시코리 게이(29·세계 24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니시코리는 2014년 유에스오픈 남자단식 4강전에서 조코비치를 누르고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최초로 그랜드슬램대회 남자단식 결승에 올랐다. 여자단식에서는 중국의 리나가 두차례(2011 프랑스오픈, 2014 호주오픈) 우승한 바 있다.
김경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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