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이 24일 호주 멜버른의 로드 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2018 호주오픈 남자단식 8강전에서 미국의 테니스 샌드그런을 맞아 리턴샷을 하고 있다. 멜버른/EPA 연합뉴스
호주오픈 누리집은 24일(한국시각) 정현(22)에게 ‘자이언트 킬러’라는 별명을 붙였다. 세계 테니스의 ‘거인’들을 잇따라 ‘해치운’ 정현은 이날 승리 뒤 카메라 모니터에 ‘불타오르고 있다’(Chung on fire)고 적어 자신감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지난 16강 경기에서 노박 조코비치(31·세르비아)를 상대로 완승을 거둔 뒤 ‘캡틴 보고 있나?’라는 글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약 ‘세계 테니스계 샛별’로 떠오른 정현은 이날 경기 뒤 인터뷰에서도 시종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승리를 앞둔 3세트 마지막 게임에서 처음에 40-0으로 앞서, (경기 도중 승리) 세리머니를 어떻게 할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그러다가 상대에게 브레이크 포인트까지 몰렸고, 이때부터 공을 상대 코트에 넘기려고 뛰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재치있는 대답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다음 경기 희망 상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더 당당했다. 정현은 이날 자신의 경기 뒤 치러진 로저 페더러(2위·스위스)와 토마시 베르디흐(20위·체코)의 8강전 승자와 결승 진출을 다투게 됐는데, 앞서 ‘누가 4강 상대였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50 대 50이다. 누가 이기고 올라오든 상관없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선수로 꼽히는 페더러를 피하고 싶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정작 정현은 누가 와도 자신있다는 태도였다.
그는 직전 경기에서 세계 정상급 선수인 노박 조코비치와의 대결을 끝낸 뒤라, 이번 경기가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8강 경기도 힘겹게 이겼다. 그러나 오늘 경기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고 겸손해했다. 대회가 2주차로 접어들었지만 체력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경기 뒤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꼬박꼬박 받고, 잘 먹고 잘 쉬고 있다”며 “튼튼한 허벅지를 유지하는 것도 특별한 하체 훈련 없이 겨울훈련을 열심히 하고 경기에 나서는 것으로 충분히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큰 대회에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비결로는 “어렸을 때부터 코트에 들어서면 속마음을 들키면 상대에게 기회를 주는 만큼 (얼굴에) 드러내면 안 된다고 배웠다”고 설명했다. 특히 심리적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경기 뒤 박성희 퍼포먼스심리연구소장(전 한국여자 테니스 대표)과 경기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는 최근 하루 300여개 축하 문자메시지를 받는다며 “꼬박꼬박 답을 해주는 성격이라 (대회 중에도)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며 웃었다. 앞서 그는 경기 뒤 ‘온코트 인터뷰’에서도 한국말로 소감을 말할 기회가 주어지자 “현지에서 응원해주신 분들, 고국에서 응원해주신 팬분들에게 모두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어 “아직 끝난 게 아니다. (4강전이 열리는) 금요일에 다시 만나자”며 “준비를 잘해 가는 데까지 가볼 것”이라고 다짐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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