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무슨 테니스 유학이냐, 시집이나 갈 것이지….”
1981년 이덕희(65)가 유에스(US)오픈 테니스대회 여자 단식 16강에 진출할 때만 해도 비인기종목인 테니스 선수들에 대한 주위의 편견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24일(한국시각) 호주오픈에서 정현의 한국인 첫 메이저 4강 달성도 ‘위대한 개척자’ 이덕희의 도전에서 시작됐다.
이덕희는 유에스오픈 16강에 진출한 첫 아시아 선수다. 앞서 19살 때인 1972년 호주오픈에서 안방 선수 팸 휘트크로스에게 이겨 메이저대회 한국인 첫 승리를 기록했다. 그는 긴 머리에 헤어밴드를 질끈 묶어 ‘집시선수’로 불리기도 했다. 이어 1974년 테헤란부터 통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를 차지한 뒤 세계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1979년 미국으로 테니스 유학을 떠났다. 이듬해 프랑스오픈에 출전하면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4대 메이저대회에 모두 출전하는 기록을 세웠고, 당시 개인 두번째 메이저대회 승리도 따냈다. 이덕희는 1982년 독일오픈에서는 당시 세계순위 1위였던 빌리 진 킹을 꺾고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한때 세계순위 34위까지 올랐고, 메이저대회 16강을 최고 성적으로 30살에 은퇴했다.
한국 선수 가운데 단식으로 두번째 메이저대회 16강에 진출한 이는 이형택(42)이다. 그는 이덕희 이후 무려 19년 만인 2000년 유에스오픈에서 16강에 올랐다. 이어 7년 뒤에도 같은 대회에서 두번째 16강에 올랐고, 세계 순위를 36위까지 끌어올렸다. 1990년대 한국 여자 테니스의 간판으로 활약했던 박성희(43)가 호주오픈 등 메이저대회에서 복식으로만 세 차례 16강에 진출한 적이 있다.
이밖에 국내에서 최고 선수로 군림했던 윤용일, 조윤정 등이 2000년대 초반 또다른 메이저대회인 윔블던대회 단식 경기에 잇따라 도전했지만 3회전을 넘긴 적이 없다. 정현은 호주오픈에서 한국 선수로는 역대 네번째 16강에 진입한 뒤, 곧바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면서 이들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아시아 선수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호주오픈에서 4강에 진출한 것은 1932년 일본의 사토 지로 이후 86년 만에 처음이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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