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강원 춘천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이 마스크를 끼고 체육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는 9월1일부터 이달 3일까지 두 달에 걸쳐 ‘학교체육, 숨구멍이 필요해’라는 장기 시리즈를 통해 몸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제도·정책·문화에서 체육교육을 외면하는
한국 사회의 이중적 모습을 집중 조명했다. 신체활동의 유전자를 만들 기초움직임기술(FMS) 시기인 초등 1∼2학년에 독립된 체육교과는 없다. 체계적인 체육활동을 보장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코로나19 판데믹과 맞물려 ‘약골’, ‘저질체력’ ‘비만’ 등의 수렁에 빠졌다. 체육활동의 토대인 시설확충 노력은 부재하고, 교육부 학교체육 담당자가 두 명뿐인 현실은 실행력 없는 학교체육 행정의 허실을 상징한다.
<한겨레>는 학교체육 기획 시리즈를 현장 전문가들의 좌담을 통해 갈무리한다. 9일 온라인 화상회의로 열린 좌담회에는 조미혜 인하대 교수(체육교육), 김기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 임성철 운산고 교사, 차민철 월곡초 교사가 참여했고, 김창금 스포츠팀 선임기자가 사회를 봤다.
김창금=이번 기획 시리즈에 대한 평가를 부탁드린다.
조미혜= 현직 체육 선생님들의 사례부터 구조적인 어려움, 전문가 인터뷰까지 발로 뛰면서 취재한 덕에 학교체육 전반에 걸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짚어볼 계기가 됐다. 문제점은 많지만 하소연하고 한탄하다 끝나서는 안 된다. 더 전략적이고 기술적이고 정치적으로 파고들어서 미래 세대 아이들에게 좋은 체육활동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김기철=전문적이고 수준높은 현안들을 시의성 있게 잘 다뤘다. 우리가 늘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인식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학교 스포츠클럽 정책 이후 우리나라에서 체육 교육을 선도할 만한 획기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느낀다. 이번 기사를 계기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모색됐으면 한다.
임성철=현장에서 21년차 체육교사로 일하면서 답답하고 속상하고 숨막히는 일이 많았다. 기사에 나온 많은 내용들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 굉장히 의미있고 중요한 보도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변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매번 변화에 대한 희망과 변함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이 반복되는데, 근본적인 대전환이 필요하다.
<한겨레>의 ‘학교체육, 숨구명이 필요해’ 기획 마지막 회차를 맞아 현장 전문가들이 지난 9일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좌담회를 갖고 있다. 왼쪽 윗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기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원, 임성철 운산고 교사, 차민철 월곡초 교사, 조미혜 인하대 교수. 화상회의 화면 갈무리
김창금=초등 1~2학년 통합교과 체제로 체육의 공백이 있다. 본격적인 운동도 3∼4학년부터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유치원부터 신체활동을 하는데 연관 고리가 빠지는 셈이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은 어떤가.
차민철=현재 초등 1~2학년 통합교과는 넓은 의미에서 젓가락질이나 종이비행기 날리기도 신체활동으로 간주한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움직임이지만 건강 및 스포츠에 필요한 신체활동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데는 한계가 있다. 주제 중심으로 학습내용이 구성되다보니 놀이 주제와 관련된 적당한 이름을 붙여 활동이 편성되기도 한다. 주변의 교사들도 ‘즐거운 생활’ 주제에 맞춰 억지로 만들어진 활동이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 체육 교과를 두면서도 얼마든지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일괄적으로 통합하려니 문제가 된다.
임성철=저는 중학교에서 4년, 고등학교에서 17년을 가르쳤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유치원 때부터 체육활동이 굉장히 부족하다. 방과 후에 여유가 있는 아이들만 하고, 초등학교에서는 3학년부터 정식 체육 교육이 이뤄진다. 인생의 결정적 시기에 체육 활동을 안 하는 거다. 중학교 가면 다행히 시수도 늘고 학교 스포츠클럽 활동도 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다시 줄어든다. 일주일에 1∼2시간이다. 팬데믹 거치면서 학교 스포츠클럽은 거의 전멸 상태다.
김창금=학생들의 체육 능력도 떨어졌을 것 같다.
임성철=가슴을 칠 때가 많다. 고교 시절에 아이의 성장이 거의 완성되는데, 운동을 너무 못한다. 공을 던져도 투구 자세가 나오는 애들이 반에 몇 명 안 된다. 공을 제대로 차는 아이들도 별로 없다. 아주 기본적인 던지기, 차기, 받기 이런 동작들이 안 된다. 십수년 동안 현장에서 아이들의 체력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학생건강체력평가(PAPS·팝스)를 보면,
객관적인 데이터로 입증된다. 아이들이 점점 신체적으로 바보가 되고 있는데, 나라는 이걸 방치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정말 국민 개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국가가 맞나. 일부의 건강, 일부의 행복만 추구하는 국가인가.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김기철=결국 문제는 초등 1~2학년과 고교 시절 양 극단의 체육활동이 너무 결핍돼 있다는 거다. 달리 보면 초·중·고 학교 교육이 ‘체육 없이 시작해서 체육 없이 끝나는 것’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중학교 때 시수를 늘린 것은 좋지만, 이 시기에만 체육교육을 한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교육이 아니다.
김창금=국가가 팝스를 통해 초등 4학년부터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체력을 평가하고, 전학년을 대상으로 건강진단을 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의 체육활동과 건강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현장에서 아이들의 체육활동 숨구멍은 막혀있다.
조미혜=팝스를 처음 시작할 때 문화체육부 자문위원으로 관여했다. 신체 능력 중심의 체력장에서 벗어난 맞춤형 체력 처방이 목적이었다. 당시 학교당 500만원 이상의 당시로서는 엄청난 지원을 해 인바디 등 측정 장비를 구입하도록 했다. 정말 파격적인 정책이었다. 예산 때문에 주저하는 정부 담당자와 만나 ‘미래 학생들 건강을 위해서 학교당 500만원은 그리 큰 비용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국가는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 체육활동에 투자해야 한다.
임성철=팝스는 대부분 학교에서 자리가 잡혔다. 저는 3월∼5월 기간에 팝스 측정을 위한 체력 운동을 한다. 이렇게 한 뒤 팝스로 1차, 2차 평가를 해 아이들이 체육활동의 결과를 느끼도록 한다. 대부분 학교에서는 인바디 검사가 오픈되어 있다. 어플이랑 연계해서 운동과 생활 습관 형성까지 연계시키는 선생님들도 있다.
차민철=초등학교에서도 표면적으로 안착이 됐다. 다만 여전히 1∼2학년 체육이 빠져 있다 보니 4학년 때부터 측정해보면 편차가 크다. 가정환경이나 주변 시설 등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운동을 해보지 못하고 3학년 때 처음 체력 운동을 접하는 학생들이 생겨나고 격차가 드러난다. 체력 운동의 동기를 얻기 전에 좌절을 겪고,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신체활동을 피하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2023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지난 7일 서울 용산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창금=공교육이
결정적 시기에 체육 단절을 만드니 불평등 같은 악영향이 생긴다.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교육부 체육 담당 직원은 두 명이다. 말과 실천이 다른 것 아닌가?
김기철=교과목마다 시대별로 당위성과 정당성이 바뀐다. 요즘은 수학이 입시와 학업의 최정상에 있다. 체육은 역사가 오래된 과목이고 나름대로 정당성을 가지고 버텨왔다. 그런데 ‘이걸 왜 가르쳐야 할까’라는 당위성을 설득력있게 개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시대가 달라지면 경제나 성, 보건 등의 교육 분야가 부각되기도 한다. 그런데 체육은 항상 논리가 비슷하다. 우리 아이들의 신체 발달 정의를 넘어서는 설득력을 제시해야 한다.
조미혜=교육부의 정책 입안자들이 다른 나라 사례들을 보면서 체육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중학교에서는 주당 시수가 3시간을 넘고, 스포츠클럽 활동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에 체육시간이 없는 것은 큰 문제지만 한편으로는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충실하게 운영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떤 학교에서는 체육 교사가 열심히 하면, 학부모들이 학생들 힘들게 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문제다.
김창금=생애 주기로 보면 어린 시절 체육활동 경험이 평생 이어진다. 현장에서 나오는 불만과 개혁 요구는 분명하다. 그런데 왜 개선되지 않을까.
조미혜=80년대 중후반 통합교과가 굉장한 이슈였다. 선진국형 교육처럼 간주되어서 한번 정책 방향을 잡고 통합으로 가니 이제 문제점이 발견되어도 통합을 풀기가 어렵다. 이번에도 교육과정 개정의 분위기가 있었다. 저도 20년은 넘게 체육교과의 분리에 대해 말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더 문제의식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진짜 목소리도 전달돼야 한다. 초등 교사들과 인터뷰를 해보면 ‘체육 수업하는 게 어렵다’, ‘애들한테 미안하지만 체육 시간에 다른 수업 한다’라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교육부 설문조사에선 ‘잘 되고 있다’로 답변하고, 교육부는 ‘잘 되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라는 식으로 된다. 연구자들이 선생님들의 진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김기철=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다. 초등 1∼2학년 체육과 관련해, 현행 통합교과에서 체육을 분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많다. ‘즐거운 생활’에서 체육, 음악, 미술을 같이 붙여 놓은 것에 대한 논리적 근거도 희박하다. ‘슬기로운 생활’ 같은 다른 통합교과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09 교육과정 개정 초기 초등 1∼2학년 체육과 교육과정 작업이 갑자기 중지됐던 경험이 있다. 초등 체육과 성장 발달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최종 결정 단계에서 틀어진다. 아이들의 입장, 수요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좋겠다.
조미혜=학교 운동부의 학생선수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제도는 그동안 많이 개선됐다. 선수들은 대부분 착하고 코치 말이면 순응한다. 코치나 감독들이 선수의 장래를 위해 ‘공부하라’는 등의 말 한마디라도 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11월 대전 둔산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체육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창금=시설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세월호 이후 생존수영이 강조됐지만 현장에서 수영교육의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개선책은 없는가?
차민철=수영교육 강화 취지에는 공감하고, 필요하다. 또 아직은 과도기여서 문제가 있다. 교사 역량이 강화돼야 하는데 사설 시간 강사에 많이 의존하고, 프로그램도 부족하다. 인프라나 시설에서는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특정 시기에 학생들이 몰려 겨울에 하는 일도 있다. 교육청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김기철=시설 없이 체육활동은 없다. 수영 교육만 놓고 보더라도 절대적으로 수영장이 부족하다. 이런 시설을 갖추기에는 엄청난 재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아이들의 건강이 미래의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정책 당국에서 대규모로 투자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학교 기자재나 용품 등을 교체하는 것도 좋지만, 시설을 획기적으로 확충하는 게 필요하다. <끝>
정리/박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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