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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양도 질도 형편없는 학교체육, 고교학점제 땐 더 밀려난다

등록 2022-10-13 06:00수정 2022-11-11 07:31

[학교체육, 숨구멍이 필요해]
⑤ 체육 안 하는 학교, 할 수 없는 학교
고대 그리스 도기에 그려진 트로이 전쟁의 한 장면. 당시 그리스 시민은 짐나지움에서 체육활동을 통해 심신의 균형과 조화를 꾀했고, 짐나지움은 지금도 중등교육이나 체육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고대 그리스 도기에 그려진 트로이 전쟁의 한 장면. 당시 그리스 시민은 짐나지움에서 체육활동을 통해 심신의 균형과 조화를 꾀했고, 짐나지움은 지금도 중등교육이나 체육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체육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교육의 기초였다. 당시 초등 교육기관으로 팔레스트라(Palestra), 중등 교육기관으로 짐나지움(Gymnasium)이 있었고, 이곳에서 다양한 체육 활동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졌다고 한다. 요즈음에도 독일 등에서 중등 교육기관을, 미국에서는 체육관을 짐나지움으로 부르고 있다. 이는 서구 사회의 학교 교육에서 차지하는 체육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한국의 학교에서 체육의 위상은 낮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은 “학교에서 체육 안 해요. 준비운동하다 끝나요”라고 말하고, 고교 체육교사는 “입시에도 없는 ‘기타 과목’ 신세”라고 비판한다.

2025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고교학점제가 고교 체육 현장에서 민감한 이슈로 떠오른 것도 이런 배경과 관련이 있다. 고교 학점제는 일정 과정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는 제도로, 국·영·수와 체육 등의 필수과목에 더해 이들 과목을 좀 더 세분화한 심화 형태의 선택과목을 두도록 한 것이다. 교육 당국에서는 학생의 선택권이 강화됐다고 말한다.

문제는 총 이수학점(단위)이 축소되면서 현재 필수인 고교 체육시간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대신 학점제의 취지에 따라 개설되는 선택과목에 체육시간이 보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임성철 경기 운산고 체육교사는 “우리 학교는 체육을 1~3학년 합계 12단위(매 학기 주당 2시간)에서 10단위로 축소하는 대신 선택과목에 2단위를 배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학교마다 사정은 다르기 때문에 제도 변화 과정에서 체육이 희생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실제 지난 7월 중·고교 체육교사 1400여명은 ‘고교 청소년의 체육 수업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한 체육교사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고교 학생들의 체력과 건강을 위해 주당 최소 2시간의 체육 수업이 이뤄져야 하며, 체육 분야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의 체육 과목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목소리에는 고교학점제 변화 과정에서 입시 주요 과목의 영향력 때문에 선택과목 리스트에서 체육이 배제될 수 있다는 걱정이 깔려 있다. 체육 관련 분야의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선택과목에서 입시 실기 등 필요한 기능과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공교육의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김택천 대한체육회 학교체육위원장은 더 근본적으로 나간다. 그는 “그동안 교육부는 일주일에 5일, 하루 60분간 강도 높은 신체활동을 권장하는 7560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현재 주당 1~2시간 체육시간에 이를 하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체육은 때를 놓치면 안 된다. 국가 차원에서 체육시간의 증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육을 경시하는 풍토는 학교 체육이 수단화할 때 더 잘 드러난다. 정부는 2012년 학교폭력 등이 사회문제화하자 이를 예방하고 인성교육을 강화한다는 차원에서 중학교 체육시수를 주당 2.7시간에서 4시간으로 대폭 확대했다. 하지만 체육시간을 늘리지 않고,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을 끼워 넣은 식이었다.

이런 까닭에 학생들의 높은 호응과 별개로 기존의 창의적 체험활동의 4개 영역의 정체성을 흔든다는 반론이 나오고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에서 스포츠 활동을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수업시수가 적은 교사가 맡게 되는 난점도 있다. 김기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연구위원은 “중학교 학교스포츠클럽 활동 시간을 체육시간으로 전환해 전문 지도능력을 갖춘 체육교사가 체육 수업과 동일한 환경을 구성해 지도하는 게 궁극적으로 교육의 질적 수준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학생들이 체육 수업을 하고 있다. 영어로 짐나지움으로 불리는 체육관은 ‘웃통 벗고’ 신체활동에 참여한다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기원한다. 연합뉴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학생들이 체육 수업을 하고 있다. 영어로 짐나지움으로 불리는 체육관은 ‘웃통 벗고’ 신체활동에 참여한다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기원한다. 연합뉴스

학교체육이 충분한 스포츠 활동 환경을 조성하지 못하면서 학부모들이 ‘시장’에서 출구를 찾고 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스포츠 클럽에서 축구에 푹 빠진 초등학생 1학년 어린이는 “학교에서는 책에 있는 것도 안 한다. 정말 재미없다”고 밝혔다. 거침없는 말 속에는 그동안 말 못해온 답답함도 엿보였다. 이 클럽의 장지혜 팀장은 “학교가 해주지 못하는 체육의 즐거움을 여기서 느끼는 것 같다. 운동하면서 아이들이 팀 워크나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초등 1~2학년 통합교과 체제로 체육이 실종된 상태에서, 부모의 열성이나 경제력에 따라 신체활동의 기회가 달라진다면 불평등의 문제로도 연결될 수 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이나 어정쩡한 상황은 학교체육이 늘 맞닥뜨리는 문제다. 예를 들어 입시를 앞둔 고3 학생이 체육시간을 국·영·수 주요 과목 공부 뒤 ‘휴식 시간’으로 생각해, “체육시간에 좀 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얘기할 때도 있다. 시설 문제로 생존수영을 물에서 하지 않고 이론으로만 한다면? 체육 교사의 열정에 의존하는 학교스포츠클럽 운영은 또 어떤가?

류태호 고려대 교수는 “교실의 풍경은 4차 산업시대로 접어들면서 환경이 달라졌고 신체활동은 위축되고 있지만, 체육의 장은 여전히 예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교체육에서 시수를 확보하는 것 못지않게 ‘체육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책 당국뿐 아니라 사회문화 차원에서도 체육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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