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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런트 어드벤처〉(1989)
[매거진 Esc]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한국에 왔다가 영화사의 한심한 행태 때문에 괜한 덤터기를 쓴 키아누 리브스를 보면서 그를 옹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엑설런트 어드벤처>(1989)를 다시 봤다. 물론 이 말을 키아누 리브스가 듣는다면 그 무표정한 얼굴이 시뻘개지고 코에서 김이 슝슝 나오며 “이게 옹호일 리가 없잖아!”라고 외칠 게 뻔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가 사랑하는 키아누 리브스는 <엑설런트 어드벤처>의 록커 테드다.
<엑설런트 어드벤처>는 액션을 하건, 멜로를 하건, 악당을 하건, 경찰을 하건 입 주위 근육을 살짝 움직이는 것이 전부인 키아누 리브스 표정 연기 20년사를 합친 것보다 더 다채롭고 풍부한 표정을 볼 수 있는 영화다. 그가 연기하는 테드는 친구 빌과 함께 록밴드를 준비하는 고딩. 지금의 키아누 리브스에게서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부스스한 머리로 헤드 뱅잉을 하고, 잔다르크를 성경 속 노아의 부인이라고 믿는 테드는, 그렇다. 찌질이다. 그는 찌질한 남자 둘이 커플을 이뤄 누가누가 더 멍청할까를 겨루는 짝패 코미디의 초기 멤버이시며 <덤 앤 더머>의 짐 캐리, <쥬랜더> 또는 <스타스키와 허치>의 벤 스틸러, <내 차 봤냐>의 애쉬턴 커처보다 한참 형님뻘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키아누 리브스를 옹호하기 위해 이 영화를 보다가 문득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첫 구절이 생각났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허접한 코미디에 웬 루카치냐 싶겠지만 이 영화는 진정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었던 시대, 나침반도 내비게이션 시스템도 필요 없던 행복한 시대의 코미디였던 것이다. 쓰레기조차 깨끗할 만큼 살기 좋은 2688년의 미래에 한 사람이 700년 전 캘리포니아의 소도시로 날아온다. 미래를 구원할 빌과 테드의 음악이 탄생하기도 전에 사라질 위기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 위기란 두 찌질이가 역사 시험의 낙제를 눈앞에 두고 있고 낙제를 하면 테드는 군사학교에 끌려가야 한다. 인류 구원자의 역사 시험을 도와주기 위해 미래의 전령이 타임머신을 타고 온다니, 말 그대로 순수의 시대가 아니라면 상상도 하기 힘든 설정이 아닌가. 그 과정은 한술 더 뜬다.
빌과 테드는 전령이 주고 간 공중전화 부스형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시험에 나올 인물들을 데려온다. 현대로 온 베토벤은 쇼핑몰에서 신시사이저 연주에 미치고, 나폴레옹 장군은 동네 워털루 수영장의 미끄럼틀에 홀린다. 요즘 관객이라면 ‘저게 웃겨? 왠 쌍팔년도 유머야’하겠지만, 맞다. 쌍팔년도 유머다. 쌍팔년도(1988년)에 만들어진 이 순수하고 단순하며 무해한 유머에 사람들은 열광해서 2편까지 만들어졌다.
<엑설런트 어드벤처>의 해맑던 키아누 리브스는 <아이다호>를 찍은 뒤부터 영화에서 큰 소리로 웃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제 <엑설런트 어드벤처>의 순진무구한 유머에 웃지 않는다. 어쩐지 슬프다. 창공의 별이 우리를 안내하던 시대로 돌아가 순진무구한 유머에 마음껏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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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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