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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배드〉(2007)
[매거진 Esc]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소년은 울지 않는다. 아무리 거절당하고 무시당하고 잘리고 밟혀도 소년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여자와 자는 꿈을. 섹스 코미디와 10대 소년들의 ‘건전한 만남’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10대 섹스 코미디의 고전이라고 할 만한 <그로잉업>에서 <포키스>와 <프라이빗 스쿨>, 최근의 <아메리칸 파이>까지 ‘소년이 섹스 코미디를 만났을 때’라는 소재는 코미디의 화수분이다. 한국에서도 같은 계보의 <몽정기>와 <색즉시공>이 대박을 쳤다.
섹스 코미디가 왜 섹스에 대한 경험도 있고 견해도 있을 20대 여성이나 40대 중장년층이 아니라 10대 소년들과 찰떡궁합을 이루는 걸까. 그 이유는 그들이 인간이기보다 침팬지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무례한 표현은 내 것이 아니다. 그 역시 침팬지 시절을 겪고 이제 당당한 어른으로 성장한 팀 후배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침팬지란 무슨 의미이며 영화 속에서 어떻게 표현될까. 하이틴 섹스 코미디의 ‘적자’임을 선포하며 지난해 할리우드 박스오피스의 돌풍을 일으킨 <슈퍼배드>(Superbad)의 두 친구를 보자.
단짝 친구 세스(조나 힐)와 에반(마이클 세라)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오랜 단짝 친구다. 세스는 눈 뜨면 음란사이트 순회부터 시작해 친구들 앞에서 입만 열면 앞으로 하고, 뒤로 하고, 위로 하고, 아래로 하고, 한 명하고 하고 세 명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하고를 외친다. 에반에게조차 늘씬한 에반의 엄마를 가리키며 “저 젖꼭지를 빨면서 자랐다니 부럽다”며 침을 질질 흘린다. 이런 세스가 곱슬머리의 대갈장군에 뚱땡이일 것이라는 것, 즉, 데이트 한번 못 해 봤을 것이라는 건 영화를 안 본 사람도 상상할 수 있다. 나름 준수한 외모를 자랑하며 명문 다트머스대학에 합격한 에반은 어떨까. 짝사랑하던 여자친구가 주말에 왜 파티에 안왔느냐고 묻자 초대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차마 못하고“어른들의 파티에 초대받아 어른들과 대화하다가 화려한 나이트클럽에 가서 좀 즐겼지”고 답하는 대사에, 찌질이 친구들과 포르노를 보며 술 퍼마시다가 동네 스트립 클럽에서 쫓겨나고 길바닥에서 셔츠에 구토 향연을 벌이는 장면이 나란히 연결된다. 이들은 이번 주말에도 파티는커녕 자기들끼리 맥주나 마시다 자위나 하는 섹스 라이프를 즐기게 될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하이틴 섹스 코미디는 어떤 장르의 영화보다도 공격적이면서 양순하다. 여자애가 안 볼 때는 온갖 음탕한 성적 표현을 하지만 정작 술 좀 사 오라는 여자애의 하찮은 ‘명령’에는 순한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대며 차에 치이는 고난까지 감수하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세스는 바로 이 시절, 침팬지 시절의 아이콘 같은 존재다. <아메리칸 파이>의 소년들은 우여곡절을 겪은 뒤 ‘목적’을 달성하지만 세스와 에반은 이마저 이루지 못한다. 대신 도망과 추격과 교통사고와 음주로 얼룩진 하룻밤을 보낸 뒤 이들은 침팬지의 허물을 반 정도 벗었다. 이처럼 동물 다큐멘터리가 인간의 드라마로 변신하는 순간 하이틴 섹스 코미디는 지저분한 농담에서 기특한 성장담으로 비약한다. 여전히 구질구질하고 냄새나지만 엉덩이를 툭툭 두드려주고 싶은 남동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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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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