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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은 심드렁했다

등록 2008-03-12 21:04

〈다즐링 주식회사〉(2007)
〈다즐링 주식회사〉(2007)
[매거진 Esc]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대중 영화에서 마르지 않는 소재 가운데 하나는 가족이다. 나 역시 가족 영화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다. 웬만하면 가리지 않고 즐기는 액션이나 로맨스 영화와 달리 가족영화에 대한 취향은 나름의 엄격한 메뉴얼이 있다. 살부에 대한 의지로 불타지 않아야 하고 가족을 위해서 목숨 바치는 모골송연한 가족지상주의는 더 곤란하다. 또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 물론, 웃겨야 한다.

생각보다 이 자장 안에 있는 영화를 찾기 그리 쉬운 건 아닌데 맞춤으로 들어맞는 영화가 있다. 아니 작가가 있다. <로얄 테넌바움>을 만든 웨스 앤더슨 감독이다. 2002년 만든 <로얄 테넌바움>은 각자 금융과 문학, 테니스계의 신동이었으나 성인이 되면서 무슨 연유로 평범하다 못해 한심해진 삼남매와 무책임한 아버지, 그나마 온전한 어머니로 구성된 가족의 기이하면서도 어처구니없고 귀여운 화해담이다. 지난해 개봉한 <다즐링 주식회사>는 <로얄 테넌바움>을 잇는 웨스 앤더슨의 가족 2부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영화는 전작보다 더 싱거운 것 같으면서도 더 귀여운 구석이 있다. 바로 삼형제의 로드무비, 그것도 인도 여행기라는 점이다.

장성한 남자 형제 3명이 함께 여행을 떠난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피눈물 나는 우애 휘날리는 형제라면 모를까, 1년 동안 안부 한번 묻지 않고 지내던 성인 셋이 함께 낭만여행의 절정인 기차를 타고 영적순례를 떠난다니 생각만 해도 어색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쩌자고 이렇게 무모한 가족영화를 만들게 된 걸까. 감독은 이렇게 답한다. “인도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기차에 관한 영화도 만들고 싶었고, 또 삼형제에 관한 영화도 만들고 싶었다.” 아무튼 아버지가 죽고난 뒤 뿔뿔이 흩어졌던 삼형제는 ‘다즐링 주식회사’라는 이름의 기차를 같이 탄다.

큰 형은 뜬금없이, 시도때도 없이 두 동생들에게 “난 너희들을 사랑해”“우리는 이제 숨기는 게 없어야 해” “서로에 대한 믿음을 갖자”라고 말한다. 심드렁한 영화의 맥락에서 이 문장을 해석하자면 ‘너희들 따위에게는 별관심없다’‘이 여행을 떠난 진짜 이유는 알려줄 수 없지‘’이것들이 언제 도망칠 지 모르니 여권은 내가 압수해야겠군’되겠다. 셋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자면 대화같기는 하지만 결국 각자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셋이 공유하는 거라고는 아마도 술 대용으로 쓰는 듯한 기침약과 진통제가 전부다.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김은형의 웃기는 영화
셋째는 여기서 도망가고 싶어하고, 둘째는 메고 있던 허리띠를 자기 것이었다며 홀랑 뺏어가는 형에게 욕을 퍼붓지만 세 형제가 그렇다고 격렬하게 싸우지도 않는게 이들은 심신미약자라는 같은 유전자를 타고 났기 때문이다.

심신미약자 삼형제의 영적 순례는 강한 믿음도 없고, 혹독한 시련의 극복도 없고, 특별한 결속도 없다. 성격이 이 모양이다보니 서로를 미워하고 질투해도 가볍고 나른하며 각자 가진 나름의 고뇌는 미안하게도 보면서 자꾸 웃음만 나올 뿐이다. 세 사람은 긴 여행을 하면서 같은 추억을 찾아내고 은근한 형제애마저 확인한다. 진한 화해라기 보다는 악의없는 농담같은 화해다. 최고의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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