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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셰퍼드 파이
[매거진Esc] 박미향의 신기한 메뉴
부러 어두운 곳보다는 밝은 곳을 향할 때가 있다. 우는 아이보다는 웃는 아이를, 아픈 과거를 가진 이보다는 기쁜 일만 있는 이를 찾을 때가 있다. 인생의 기운도 전염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빛을 찾아 셔터를 누르는 사진가도 때가 되면 어두운 곳에서 한 컷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나이가 들고 삶을 겪을수록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연민이 있는 이가 좋아진다. 규범으로 사람을 단죄하지 않고 악인에게도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 줄 안다. 주변에 작은 어둠에도 정성을 기울인다.
화려한 이태원 거리를 조금 벗어나 녹사평역에서 후암동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에 있는 <인디오>(INDIO)가 바로 그런 곳이다.
2년 전, 주인 조연수(46)씨는 이태원 거리의 음식이 너무 비싸 그곳을 찾지 못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위해서 무작정 이 집을 열었다. 그는 요리도 잘 알지 못한다. 레시피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고, 인연이 닿았을 뿐 누군지 잘 모르는 영국인 요리사 블라다를 모셨다. 그래서 이곳은 세계 각국의 요리들이 즐비하다.
그중에서 ‘베제테리안 셰퍼드 파이’(Vegetarian Shepard's Pie)가 눈에 띈다. 셰퍼드 파이는 각종 고기와 야채를 삶아 펼치고 그 위에 으깬 감자와 치즈를 얹어 먹는 요리다. 조씨는 고기를 없애고 채식을 하는 이들을 위해 이 요리를 만들었다. 부드러운 감자가 생채기 난 위를 다독인다. 오직 소금으로만 간을 해서 채소 자체의 맛이 느껴진다.
든든한 고기 음식을 먹고 싶다면 ‘인디고 미트 파이’(indigo meat pie)도 맛있다. 밀가루를 반죽해 만든 도우 안에 쫄깃한 쇠고기가 있다. 쇠고기를 가는 대신 우리네 장조림처럼 길쭉하게 잘랐다. 독특한 향신료가 들어간 소스는 별스런 맛이다.
이곳은 부가세도 봉사료도 없다. 와인 값도 밥값도 착한 편이다. 낯선 땅에 도착해 버스 타는 것조차 모르는 이방인들에게 조씨는 친절을 베푼다. 그는 하얀 피부만큼 뽀얀 마음씨를 가졌다. 그의 손맛으로 만든 것은 좀 다르지 않을까! (02)749-0508.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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