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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치킨〉
[매거진 Esc] 박미향의 신기한 메뉴
과거가 없는 도시는 삭막하다. 높다란 빌딩도, 하늘보다 높은 불빛도 소용이 없다. 지난 시간을 곱씹는 정감이 현재를 훈훈하게 채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도 오롯이 소유하는 것은 추억이라고 하지 않던가! 사람들은 그 과거를 맛보기 위해 길을 나서기도 한다.
<반포치킨>은 1977년에 만들었다. 긴 시간이다. 서른 번의 여름과 겨울이 지났다. 70년대, 청년은 할아버지가 됐고, 아이는 어른이 되었다. 시간의 변화 속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반포치킨>의 독특한 ‘마늘치킨’이다. 흔한 마늘, 값싼 닭. 두 가지를 버무려서 도시의 ‘과거’를 만들었다. 주인 이정덕(62)씨는 “여자가 결혼하면 친정집에서 하룻밤 자잖아. 장모가 보양식으로 닭 잡아 마늘 듬뿍 넣어 사위 먹이지. 그거 생각하고 만들었어.”
‘마늘치킨’은 좋은 닭을 잡아 그 안에 마늘을 잔뜩 넣어 만든다. 그 닭은 전기구이로 익히고 다시 마늘소스를 온 몸뚱이에 바르고 묻힌다. 검은 듯 흰 마늘 뭉텅이가 잘근잘근 씹힌다. 소스는 으깬 마늘에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해서 매일 서너 시간씩 버무린단다.
쪽쪽 찢어지는 하얀 살결의 은근한 맛 위에 마늘의 희번덕거리는 매운맛이 끼얹어진다. 맵냐? 아니다. 우리 마늘의 끝 맛은 달다. 그 맛이 여운으로 남는다. 이 집에 과거는 30년 동안 그대로인 ‘안’의 풍경에 있다. 까만 벽돌과 아치형 작은 방 들머리, 낭만 바퀴벌레라도 나올 것 같은 오래된 느낌. 어둠을 핑계 삼아 기습 뽀뽀라도 감행하는 시퍼런 청년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런 낡은 곳은 요즘 20대들이 찾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곳곳에 숨어 닭다리를 뜯고 있다. 마치 호모사피엔스가 된 것처럼 닭 뼈가 수북하다. 김현, 이청준, 황지우 등 우리 문단에서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단골이었다. 카드가 없던 시절, 외상 장부 한 장, 이름 한 자, 휙 적고 책이 나오면 갚으러 오곤 했단다. 그들의 과거가 이곳에 숨어 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02)599-1636.
박미향 글·사진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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