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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한 만두
[매거진 Esc]박미향의 신기한 메뉴
남자와 여자에게 가장 에로틱한 장소는 어디일까? 침대, 공원, 여행지? 아니다. 해가 떨어진 어두운 거리를 달리는 택시 안이다. 뒷좌석의 둘은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있지만 어디론가 향한다는 목적은 같다. 도착점이 어디든 옆자리의 그가 묘하게 다가온다. 더구나 낯선 이가 앞에 있고 힐끔힐끔 감시하는 듯한 눈초리를 던지면 긴장감이 고조된다. 팽팽한 활시위 같은 감정 때문에 피부세포들이 바늘처럼 솟는다. 하지만 음지에서 헤매는 사랑은 불행하다. 어두운 택시에서 시작한 감정이라도 태양 아래 다시 등장해야 역사는 이루어진다.
서울에는 인왕산이 있다. 따스한 빛이 곳곳을 비출 때, 그에게 산자락 오르자고 조르자. 내려오면 인왕산 아래 부암동에서 빚는 만두 먹으러 가자고 옷깃을 당기자. 멋진 데이트 코스다. 부암동 ‘자하 손만두’ 집에는 ‘편수찬국’이 있다. 편수는 네모난 모양으로 빚은 만두다. 주로 여름에 많이 먹는다. ‘편수찬국’은 찬 육수에 편수를 띄워 먹는 것이다. 편수 안에 아삭아삭 씹히는 오이가 제법이다. 이곳 편수의 피는 다른 만두피보다 두껍지만 밀가루의 텁텁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만두 위로 그럴싸하게 앉은 고명도 예쁘다. 산 정상을 오르내린 땀과 그에게 향했던 긴장을 찬 만두 한 점으로 식힌다. 여름 먹을거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만두전골’에는 삼색 만두가 주인을 기다린다. 시금치, 당근, 비트 즙으로 색을 냈다. 삼색 만두는 피가 부서질 듯 얇다. 이 집에 진정한 독특한 메뉴는 이 두 가지와 함께 어울리는 커다란 창이다. 와이드 티브이처럼 양 벽면에 길게 뻗어 있다. 시원하다. 서로 의지해서 등산하고 눈을 마주치며 맛을 보는 이곳이 진정 에로틱하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02)379-2648.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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