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지구 온난화로 물에 잠겨 가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에 갔을 때다. 인구 9천명, 서울 면적 2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섬나라. 코디네이터였던 투발루인 친구가 슬쩍 운을 떼는 것이었다.
“심심하지 않아? 금요일 밤이면 이 조그만 섬나라도 미쳐 돌아간다고. 나이트클럽도 있어.”
나이트클럽은 세 곳이었다. 가장 물이 좋다는 마타기갈리 클럽은, 말하자면 1980년대 대천해수욕장의 노천 스탠드바 정도 됐다. 활주로 옆에 쇠그물을 얽어 담장을 둘러치고, 그 안의 시멘트 바닥이 ‘고고장’이었다. 입장료 2달러를 내고 그물을 통과한 뒤, 2달러짜리 병맥주를 시켜놓고 아무 데나 앉아서 시시덕거리는 게 여기서 노는 방식이었다. 여자들은 등이 깊게 팬 원피스를 입고 왔고, 남자들은 깔끔한 청바지와 폴로티 차림으로 나타났다.
“원 나이트 스탠드도 하는 사람은 다 알아서 한다고. 한 다리 건너면 친척이고 친구여서, 소문날까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문제는 호텔이 하나밖에 없다는 거야. 그럴 땐 덤불에 가서 하지. 킥킥킥.”
하늘이 클럽의 천장이었고, 바람은 춤추는 사람들의 에어컨이었다. 태평양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사이키 조명으로 흘렀고, 대양에서 불어 온 바닷바람은 끈적한 땀을 말렸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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