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c] 문득 생각난…
단순한 인기가 아니라 광풍이었다. 소란스러운 여고생이 50명도 넘게 앉아 있던 1987년의 교실은 영화 <더티 댄싱>에 대한 이야기로 더 소란스러웠고, 영화를 보고 온 아이들의 설명에는 절절한 감탄사가 추임새처럼 붙었다.
교복 자율화 시대에 옷뿐 아니라 영화를 볼 때도 감독이나 배우 같은 ‘브랜드’에 집착했던 나는 극장에 가지 않았다. ‘퍽이나, 흥’이라는 왕따스러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얼마 뒤 늘 불법 복제 영화 테이프를 틀어줘서 ‘은하시네마’로 불리던 학교 앞 은하수분식에서 쫄면을 먹다가 <더티 댄싱>과 직면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광풍의 끝자락에 올라탔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난 <더티 댄싱>을 반복해 보기 위해 야간 자율학습 시간마다 무단 조퇴를 했고 일요일엔 교문 앞에서 학교 대신 은하시네마로 직행했다.
87년 6월 항쟁에는 아랑곳없이, 88년 올림픽 개최 열기와도 무관하게 <더티 댄싱>으로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적인 이벤트가 펼쳐진다. 서울의 마지막 단관 극장이라는 서대문구 드림시네마(구 화양극장)에서 23일 재개봉한다. 극장 간판도, 심지어 입장료도 그때 그대로란다. 커다란 스크린을 배경으로 쩌렁쩌렁 흘러나오는 주제가 ‘타임 오브 마이 라이프’를 들으며 신나게 ‘더티 댄싱’을 추고 싶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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