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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위해 ‘악재는 선반영, 호재는 나중 공개’

등록 2021-06-08 04:59수정 2021-06-08 08:56

[이재용의 법정을 기록하다]③
이건희 쓰러진 뒤 바뀐 상장 계획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성사위해
주가 악재·호재 선택적 공개 의심
회계법인에 합병비율 적정성 검토
의뢰하며 결론 정해둔 듯한 발언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서는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18일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으로 들어서는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지배권) 불법승계 의혹 3회 공판이 열린 지난달 20일, 법정에서는 두 가지 문건이 공개됐다. 2014년 4월29일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이 작성한 ‘사업조정실적 및 향후 계획’ 보고서와 그로부터 17일 뒤인 5월16일 미전실이 만든 ‘사업조정 추진 일정안’이다. 두 보고서는 모두 삼성그룹의 사업조정 계획을 담았지만, 약 보름 사이에 보고서 내용이 크게 바뀌었다.

첫 번째 보고서에는 그해 하반기 삼성에버랜드에서 분할한 급식사업(삼성웰스토리) 상장 계획이 담겼는데, 17일 뒤 두번째 문건에선 같은 시기 급식사업이 아니라 삼성에버랜드를 상장하고(이후 제일모직으로 사명 변경) 이듬해인 2015년 하반기에는 제일모직-삼성물산을 합병한다는 계획이 새롭게 포함된 것이다.

그룹 사업 구조 개편 계획이 송두리째 뒤바뀐 17일 동안 삼성그룹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장 큰 변화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일(5월10일)이었다. 이에 이재용 부회장 등은 그룹 승계작업의 핵심인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시계를 앞당겼고, 이 과정에서 여러 불법행위가 벌어졌다는 게 이 부회장과 미전실 임원을 둘러싼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이다.

2015년 최치훈 당시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이티(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계약 안건 관련 임시 주주총회를 주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5년 최치훈 당시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가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이티(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계약 안건 관련 임시 주주총회를 주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주가 악재는 선반영, 호재는 나중에 공개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부장판사 박정제·박사랑·권성수)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 임원 10명의 부당승계 의혹 3회 공판에는 한아무개 전 삼성증권 아이비(IB)본부 기업금융팀장에 대한 검찰 주신문이 이어졌다. 삼성증권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이해상충관계에 있는 두 회사를 동시에 자문하면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쪽으로 합병이 이뤄지도록 도왔다는 의혹에 휩싸여있다. 한씨는 팀원들과 함께 미전실의 지시를 받아, 이 부회장의 그룹 승계작업에 전방위로 개입했다는 의심을 받는 인물이다.

이날 공판에서 제시된 증거를 종합하면, 삼성증권은 미전실의 요청으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한 각종 작업을 수행했다. 두 회사의 합병 일정 검토, 다른 기업들의 합병 기일 분석, 피합병법인 사명을 합병사 사명으로 사용한 사례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의사결정 라인’이 누구인지 등 삼성증권 직원들은 세세한 사항들을 분석해 미전실에 보고했다. 그런데 여러 업무 중에서도 이날 법정에서 검찰이 주요하게 신문한 건 삼성증권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두 회사의 ‘주가 관리’에 관여했는지 여부였다.

당시 두 회사 합병의 성패는 주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상장사 간 합병은 ‘양사 이사회의 합병 결의→합병 승인을 위한 주주총회 개최→합병 반대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거친 뒤에 합병이 완료된다. 주식매수청구권이란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자신의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회사에 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만약 이사회에서 합병을 발표한 뒤 이들 회사의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가격을 밑돌면, 주주들은 합병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며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회사가 반대 주주들의 주식을 되사줄 수 있는 주식매수대금에도 한도가 있기 때문에 사전에 설정한 한도를 초과해 주식매수청구가 발생하면 합병은 무산된다.

실제로 삼성은 2014년 11월 삼성엔지니어링-삼성중공업 합병을 추진했지만, 주가하락으로 합병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합병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합병안이 시장의 호응을 얻어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이상으로 형성되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삼성이 합병 당사자들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렸는지 여부다. 검찰은 양사의 주가가 신통치않자 삼성이 주가를 작위적으로 띄웠다고 의심하고 있다. 2015년 4월25일 미전실이 작성하고 법정에서 공개된 ‘엠(M·삼성물산을 의미)사 합병 추진안‘에는 삼성의 ”주가 관리“ 계획이 기재돼 있었다.

당시 삼성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13.1%)을 비롯한 주요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가격보다 주가가 낮다’며 합병에 반대해 합병이 무산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에 미전실은 해당 문건에서 ”무엇보다 주총 의결권 행사 시점의 주가가 가장 중요“하다며 ”지금부터 주총 및 주식매수청구기간까지 주가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전실은 위 문건에서 ’주가 관리‘ 방안으로 ”악재는 합병 이사회 전에 선반영해 주가를 낮춘 후, 이사회 이후 양사 주가가 상승 추세를 형성하는 것이 의결권 확보 및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최소화에 유리“하다고 써놨다. 주가 호재 요인으로는 제일모직의 손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가능성 등을 예시로 들었다. 향후 주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들을 합병 이사회 전에 반영해놓고, 주가를 띄울 수 있는 사안들은 주총과 주식매수청구권 기간에 공개해 합병 찬성 표결을 끌어내고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이런 내용이 담긴 ‘엠사 합병추진안’ 문건에는 증인 한씨의 팀이 조사해 보고한 내용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검찰은 보고서에 나온 주가 관리 방안이 한씨의 아이디어냐고 물었다.

“보고서에 ‘악재는 합병 이사회 전 선반영, 이사회 후 양사 주가 상승 추세가 의결권 확보에 유리’하다고 기재된 내용은 증인이 미전실에 알려준 건가요?”(검찰)

“주가가 상승하도록 하는 모양새가 가장 좋다, 그래야 주식매수청구권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그런 부분을 설명한 것 같고요. ‘악재를 선반영하고 주가 낮춘 후’란 표현이 전반적으로 저런 트렌드를 가지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표현을 압축적으로 하다 보니 나온 것 같은데 어떻게 나온 워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공시위반하지 않는 한에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검토하고 모아보는 게 일반적으로 있는 경우여서요. 그런 경우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합니다.”(증인)

“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 있으면 그 사실관계가 일어난 시점에 공시하는 게 아니라, 모아놨다가 필요한 시점에 발표한다는 겁니까?”(검찰)

“공시 규정 안에서 허용되는 게 어떤 게 있는지 따져보고 혹시 영향 줄 수 있으면 그걸 고려해 보시라, 뭔가 조절해서 주가를 움직이자는 게 아니라 주가는 계속 상승하는 거로 나오는 게 자연스럽고 좋은데….”(증인)

“‘합병 이사회 전에 악재 선반영해 주가 낮춰라’ 이런 것까지 (자문사가) 조언하나요?”(검찰)

“표현을 굉장히 압축적으로 해서 마치 주가를 갖다가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관련법을 위반하는 워딩처럼 느껴지는데요, 저희가 자문 드릴 때 관련법을 지키는 건 전제가 되니까요. 그 안에서 주가가 자연스럽게 올라가는 형태가 될 수 있게 일정을 고려하자는 취지입니다.”(증인)

“이 보고서를 증인이 작성하지 않았다면, (악재를 선반영, 호재 사후반영) 저 문구는 미전실이 작성한 건가요?”(검찰)

“저희가 저렇게 워딩을 드렸는데, 저쪽에서 수정하신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증인)

■ 삼성바이오 자회사 상장 계획은 주가 부양 필요할 때마다 발표?

호재는 주가 부양이 필요한 시기에 발표해야 한다고 판단한 미전실과 삼성증권은 위 계획에 따라 바이오사업 상장발표 시기를 검토하며 언제 이 “재료”를 써야 주가를 “부스팅”(부양)할 수 있을지를 저울질한다.

2015년 6월 초 삼성증권이 미전실의 지시를 받아 작성한 ‘바이오 자회사 상장 계획 공표 방안’ 보고서는 바이오사업 상장 계획을 누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공개하는 게 두 회사의 주가 부양에 효과적인지를 분석한 문건이다. 당시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에피스를 각각 자회사와 손자회사로 두고 있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당초 삼성증권이 작성한 보고서 초안에는 ‘상장발표 시기는 주총 소집통지일인 2015년 7월2일, 공표하는 주체는 제일모직’으로 정리했지만, 미전실과 상의 뒤 증인 한씨는 팀원들에게 “(바이오사업 상장이라는) 재료가 주가를 오랫동안 부스팅하지 못할 리스크가 있으니까 너무 일찍 터뜨리는 것보다 의결권을 모으면서 의결권 취합 현황이랑 주가 추이를 보고 (발표) 시기를 결정하는 게 좋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다.

최종적으로 수정된 보고서에선 상장발표를 당초 계획대로 7월2일로 하되, 바이오 자회사가 기자간담회를 하는 형식으로 발표 주체와 방식을 결정했다. 또한 주가 추이 등을 감안해 제일모직의 추가공표로 주가부양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실제로 2015년 6월30일 제일모직이 삼성에피스의 나스닥 상장 계획을 공시한 뒤, 7월2일 삼성바이오로직스·에피스의 상장 관련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런 노력에도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기간 동안 양사 주가가 모두 급락하자, 미전실은 재차 삼성에피스 상장을 부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이왕익 당시 미전실 전무는 2015년 7월25일 신아무개 당시 삼성증권 아이비(IB)본부장에게 “이번주 또는 다음주에 바이오 아르에프피(RFP·상장 주간사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를 날리면 주가에 어느정도 도움이 될까?”라고 메일을 보낸다. 아르에프피 발송으로 삼성에피스 상장 추진 계획이 재차 언론에 언급되도록 하면 양사 주가가 상승하겠냐고 물은 것이다.

미전실의 이런 질문에 삼성증권은 “아르에프피 발송 통해 큰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불확실성이 있다. 오히려 임상 발표 등이 주가 부양에 효과적이지 않을까 한다”는 내용으로 답변한다. 하지만 삼성에피스는 그로부터 이틀 뒤인 7월27일 골드만삭스 등에 아르에프피를 송부하고, 이 내용은 언론에 보도된다. 검찰은 이 또한 인위적인 주가 부양 작업이라고 보고 있다.

이 밖에도 검찰은 삼성이 급락한 주가를 방어하기 위해 자금 여유가 없는 제일모직이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법도 활용했다고 판단했다. 당시 삼성증권이 미전실의 지시를 받아 작성한 보고서에는 “(제일모직이) 실적이 좋지 않고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사주 매입을 통해 합병하려 한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 법인 차입비용 증대 및 재무구조 부담 (문제가 있다)”이라는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주식매수청구권 과다 발생 (방지) 이유보다는 양사 주가방어를 통한 주주가치 제고 목적”임을 대외적으로 내세우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로 제일모직은 2015년 7월23일 “주가안정을 통한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4400억원을 들여 자기주식 250만주를 취득한다고 공시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옥. 회사 누리집 갈무리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옥. 회사 누리집 갈무리

■“‘합병비율은 적정’ 결론 지어놓고 회계법인에 의뢰”

이날 주가 관리 의혹 못지않게 검찰이 증인에게 집중적으로 신문한 내용은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비율(1:0.35)을 산정하는 과정, 회계법인이 이와 관련해 독립적인 평가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 삼성이 부당하게 관여했다는 의혹이었다.

1:0.35라는 합병비율은 제일모직 주식 1주를 삼성물산 3주와 맞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상장사 간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상 이사회 합병 결의 하루 전, 일주일 전, 한달 전 주가를 가중평균한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제일모직의 주가는 고평가되어 있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저평가된 시기에 합병비율을 결정하면 제일모직 주주에게는 유리하지만 삼성물산 주주에게는 불리한 합병비율이 된다.

검찰은 제일모직 최대주주이면서 삼성물산 주식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던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한 시점, 즉 제일모직 주가는 삼성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고평가되어 있고, 삼성물산 주가는 기업가치 대비 저평가된 시기에 합병비율이 결정됐다고 의심한다.

이러한 ‘제일모직 고평가, 삼성물산 저평가’는 당시 시장의 시각과도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증권이 2015년 3월23일 미전실 지시로 작성한 ‘M(삼성물산), m(제일모직) 애널리스트·투자자 뷰’ 문건을 보면, 삼성증권은 “제일모직의 현 주가는 그룹 지배구조 관련 기대감이 반영된 상태”, “상대적으로 주가가 빠져있는 삼성물산과 오버밸류(고평가)된 제일모직이 합병 전까지 큰 변동성 없을 거라 예상돼 밸류에이션(가치평가) 이슈 가능성 있음”이라고 썼다. 합병비율을 둘러싼 삼성물산 주주의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 있음을 인지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증권은 합병 이사회 개최를 앞둔 그해 5월 초, ‘빅4’ 회계법인 중 두 곳에 합병비율 적정성 평가 용역을 맡긴다. 삼성물산은 딜로이트안진(이하 안진)과, 제일모직은 삼정케이피엠지(KPMG)와 용역 계약을 맺는데, 이날 법정에서 드러난 한씨의 메일에는 삼성증권이 이미 보고서 결론을 정해놓고 회계법인에 하달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대목들이 담겨있었다.

한씨는 그해 4월28일 팀원들이 보고한 ‘자문사별 아르앤아르(R&R·합병 자문사들의 업무 범위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재한 것)’ 문건에서 ‘합병가액이 평가범위 내에 있다는 (회계법인의) 약식평가보고서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언급하며 문건 수정을 요청하고, 이에 팀원이 수정한 아르앤아르 문건에는 회계법인의 역할로 “약식평가 보고서-현 합병비율이 평가범위 내에 있다는 보고서 작성”이란 대목이 추가된다. 팀장이 ‘합병비율은 적정하다’는 회계법인의 보고서가 필요하다고 언급하자, 부하직원이 팀장의 요청에 따라 해당 보고서가 필요하다고 업무분장표에 명시해 놓은 것이다.

당시 삼성물산으로부터 용역을 수임한 안진 소속 회계사들은 검찰 조사에서 ‘삼성의 요구에 따라 1:0.35란 합병비율은 적정하다는 보고서를 만들어냈다’는 내용을 진술했다고 한다. 이날 법정에서 공개된 메일에도, 안진과 접촉한 삼성증권 이아무개 부장이 한씨에게 ‘안진이 (합병가액이 평가범위 내에 있다는) 평가 내길 어려워한다’는 취지로 보고한 대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도 안진은 이사회 결의 전날 ‘합병비율은 적정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하고 해당 보고서에 ‘대외적 신뢰성을 담보할 수가 없어 어떠한 경우에도 제3자의 열람 및 사용을 금지한다’는 단서를 달았다고 한다. 이에 대한 검찰의 질문에 한씨는 ‘오해다’, ‘평가는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생각한다’고 답하면서 양쪽은 긴 시간 입씨름을 벌였다.

“‘합병가액이 평가범위 내에 있다는 약식평가 보고서’는 왜 필요한가요?”(검찰)

“법률적으로 주가로 정해지는 합병비율이 회계법인의 약식평가 범위 안에 있다는 평가보고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아르앤아르 초안을 받았는데 그런 내용이 없어서 그랬는지, 좀 더 명확하게 설명을 넣어달라고 한 것인지, 그런 취지로 넣어달라고 한 것 같습니다.”(증인)

(중략)

“회계법인이 평가에 착수하기 전부터 어떤 목적과 성격의 보고서가 필요한지 회계법인의 역할로 주는 건, 결과를 정해놓고 업무를 의뢰하는 게 돼서 회계법인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요?”(검찰)

“정확하게 썼으면 오해가 없을 텐데 (합병가액이) 평가범위 내에 있다는 것으로 회계법인에 넘겨주라고 한다는 게….”(증인)

(중략)

“증인의 진의는 모르지만, 이메일은 ‘합병가액이 평가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내용이 삼성물산 티에프 파견 팀원에게 전달됐고, 증인은 그 팀원으로부터 ‘안진이 평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합병가액이 평가범위 내에 있다고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증인은 증인의 지시와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나요?”(검찰)

“네 맞습니다.”(증인)

“우연이다?”(검찰)

“첫 번째, 제가 그런 보고서를 의도한 게 아니라 이런 목적의 보고서를 만들어보자는 것이었고 그건 어떤 업무를 하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다음에 보고서가 이렇게 나온 거에 대해선, (삼성물산 티에프에 파견된) 직원이 안진과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보고서는 안진 내부에서 생각한 거든, 외부 자료를 가지고 분석을 하든, 내부 프로세스를 거쳐 나온 보고서일 테니 안진 내부 판단에 의해 나왔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증인)

이날 공판에서 삼성의 주가 부양 계획, 회계법인 보고서 작성 개입 등을 신문하는 데 주력한 검찰은 지난 3일 있었던 4차 공판에선 한씨에게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해 윤용암 당시 삼성증권 사장부터 삼성증권 리테일본부까지 발로 뛰어야 했던 상황 등에 대해 신문하고 검찰 주신문을 마무리했다. 두 회사 합병에 반대한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등장과, 찬성 의결권 확보를 위해 삼성증권을 동원한 피고인들의 부당한 의결권 확보 관련 혐의는 다음 기사에서 이어진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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