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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합병비율 법으로 정해지니 무조건 찬성?…이사회 왜 있나”

등록 2022-05-16 11:14수정 2022-05-16 13:22

이재용의 법정을 기록하다⑫
삼성물산 합병 당시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
합병비율·시점 부정적 시각 있었으나 ‘찬성’ 결정
찬성 압박한 문형표·홍완선 유죄 확정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 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 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7월17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안이 통과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국민연금공단의 역할이 컸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한 헤지펀드 엘리엇이 두 회사의 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상황에서, 삼성물산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지분 전부(11.21%)에 대해 찬성표를 행사한 덕에 합병안이 주주총회를 통과한 것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배경에는 순수하게 수익성·공공성 등 기금운용지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삼성물산 1주에 대해 합병회사 주식 0.35주를 교부한다는 ‘1대0.35’란 합병비율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같은 제일모직 주주에게 유리하고, 반대로 삼성물산 주주인 국민연금에는 불리하다는 의견이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2015년 7월17일 열릴 삼성물산 합병 주주총회를 앞두고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합병안 찬반을 의결할 투자위원회로 하여금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력을 넣었다(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투자위 위원장인 홍완선 전 본부장은 투자위가 합병안에 찬성의결을 하도록 유도했고, 삼성물산 주주에게 손해인 이 같은 결정으로 인해 국민연금은 손해를 입었다(업무상 배임). 지난달 14일, 대법원은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의 이러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을 확정했다.

지난 3~4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 심리로 열린 이 부회장 및 전·현직 삼성 임직원 10명의 부당합병 의혹 공판에 당시 국민연금 책임투자팀 팀장 정아무개씨와 책임투자역 최아무개씨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책임투자팀은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분석하고 찬반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책임투자팀 관계자들은 당시 1대0.35 합병비율에 대해 삼성물산 이사회가 그 적정성을 검토한 게 맞는지 확인하고자 회사에 근거자료를 거듭 요청했고, 삼성으로부터 받은 자료들이 모두 사실일 거라 믿고 상부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이때 삼성물산 쪽이 국민연금 책임투자팀에 건넨 근거자료는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의 ‘합병비율 적정성 검토보고서’(이하 안진 보고서)가 대표적이었다고 한다.

■ ‘제3자 열람 금지’ 안진 보고서는 왜 국민연금에 전달됐나

안진 보고서는 안진이 삼성물산의 요청을 받아 1대0.35란 합병비율이 적합한지를 검토한 보고서다. 당시 안진은 ‘1대0.35 합병비율은 타당하다’ 결론의 보고서를 합병 이사회 전날인 2015년 5월25일 삼성물산에 최종 제출했는데, 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던 안진 회계사들은 당시 합병비율이 불합리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음에도 삼성 쪽의 압박에 못 이겨 이 같은 보고서를 만들어냈다고 증언했다. 대신 이렇게 내게 된 보고서에는 “보고서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으니 어떠한 경우에도 제3자의 열람 및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제약사항을 달았다. 이 같은 제약사항에 따라 보고서는 2015년 5월26일 합병안을 결의한 삼성물산 이사회에도 제공되지 않았다.

그런데 ‘신뢰성이 떨어지니 제3자의 열람을 금한다’는 안진 보고서를 2015년 7월1일 삼성물산은 국민연금 책임투자팀에 보내준다. 검찰은 삼성물산이 이 보고서를 보내준 이유에 대해, 마치 삼성물산 이사회가 합병비율 적정성을 논의한 것처럼 국민연금을 속이기 위해 보내줬다고 보고 있다. 즉 국민연금 책임투자팀이 삼성물산에 ‘이사회가 합병비율의 타당성을 검토한 게 맞는지, 그렇다면 그 근거자료는 있는지’ 등을 캐묻자, 책임투자팀이 합병에 부정적인 보고서를 낼까 봐 ‘이사회의 합병비율 검토 근거자료’로서 안진 보고서를 보내줬다는 것이다.

법정에 나온 책임투자팀 관계자들은 안진 보고서가 이사회 검토자료인 줄 알았고, 안진 보고서가 삼성 압박으로 꾸며낸 허위의 보고서인지도 몰랐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법정 증언을 종합하면, 2015년 6월11일 책임투자팀과 삼성물산 임직원 미팅 자리에서 책임투자팀은 양사 합병 시너지, 최적 합병 시기 논의 여부 자료 등을 요청하면서 “이사회가 합병비율을 충분히 검토했는지 근거자료를 달라”고 했다. 이에 6월24일 삼성물산은 ‘물산 이사회 논의사항 자료’를 보내줬다. 그런데 여기에 이사회가 합병비율의 적정성을 검토했다는 내용이 충분히 담겨있지 않아 책임투자팀은 재차 검토자료를 요청했고, 7월1일 삼성물산이 보내준 자료가 바로 안진 보고서였다고 했다. 책임투자팀 증인들은 ‘당시 안진 보고서를 이사회 검토자료라고 인식했으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2022.03.31. 최아무개 당시 책임투자팀 책임투자역 증인신문>

“(2015년 7월1일) 안진 합병비율 검토보고서를 제시하면서 삼성물산은 뭐라고 설명했습니까?” (검사)

“삼성물산 이사회에서 참고했다며 근거자료로 제시했습니다.” (증인)

“만약 안진 보고서가 이사회에서 논의자료로 안 쓰였다는 걸 알았다면 어떤 영향이 있었을까요?” (검사)

“투자위에 그 사실을 보고했을 겁니다. 이사회에서 이런 자료를 보지 않았다거나 참고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보고했겠지요.” (증인)

<2022.04.07. 정아무개 당시 책임투자팀 팀장 증인신문>

“증인이 검찰에서 한 진술을 보면, 삼성물산으로부터 불충분한 자료를 받아서 계속 추가 자료를 요청했고, 삼성물산으로부터 안진의 합병비율 평가보고서를 2015년 7월1일에 수령했다고 했는데 기억나나요?” (검사)

“그 전에는 이사회 소집안내라든지 간략한 안건자료 정도를 받아서, 그것 말고 좀 더 심도 있게 (이사회가) 검토한 내용이 어떤 것인지 물었고 그 자료를 7월1일에 받았습니다.” (증인)

“삼성물산 이사회가 회계법인으로부터 기업가치 평가자료를 받아서 합병비율 적정성 검토를 했으므로 (이사회가) 최소한의 선관주의 의무(일반적으로 요구되는 정도의 주의를 다 하는 의무) 다 했다고 봅니까?” (검사)

“형식적 요건은 갖췄다고 봅니다.” (증인)

“삼성물산 이사회가 밸류에이션(가치평가) 작업도 안 했다면 최소한의 작업도 안 한 거로 볼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검사)

“삼성물산 합병처럼 (두 회사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건에 대해서는 이사회에서 최소한 어느 정도의 검토는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증인)

이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 등의 변호인은 삼성물산이 ‘이사회에서 검토한 자료’라며 안진 보고서를 건넨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증인인 최아무개 책임투자역과 삼성물산 관계자 통화 녹취 등을 봐도 삼성물산 쪽에서 ‘이사회에서 안진 보고서를 검토했다’라고 뚜렷하게 언급한 내용이 없고, 최씨가 먼저 “안진 자료를 받을 수 있겠느냐”며 자료요청을 했다는 것이다. 다만 증인들은 ‘계속 이사회 검토자료를 요청했는데, 안진 보고서를 보내주니 당시 이사회 검토자료라고 인식했다’는 취지를 거듭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윗줄 오른쪽)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윗줄 오른쪽)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합병비율 법으로 정해진다고 찬성? 그럴 거면 이사회 왜 있나”

당시 책임투자팀 증인들은 1대0.35 합병비율에 대해 삼성물산이 저평가된 합병비율이라고 판단했으며, 삼성이 합병을 단행한 시기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2015년 7월7일 이재용 부회장과 최지성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미전실 전략1팀장(사장), 이왕익 미전실 전략1팀 자금파트 책임자(전무)와 미팅을 갖기 전날, 삼성물산 저평가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합병비율 변경, 중간배당, 합병가액 할인·할증” 등 저평가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들을 정리했다. 저평가 논란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합병에 찬성하기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튿날 삼성은 미팅 자리에서 국민연금의 이 같은 저평가 논란 해소 요구를 거절했다고 한다.

삼성물산 주주총회를 일주일 앞두고 국민연금이 작성한 2015년 7월10일 보고서에도 합병비율과 시점에 대한 의구심이 담겨있다. 합병 찬반 양쪽의 의견을 모두 담은 이 보고서에는 “삼성물산이 자산·매출액·영업이익 등에서 모두 제일모직보다 높다”며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는 시각을 담았고, “제일모직 물류센터 대규모 화재, 합병 발표 이후 삼성물산의 대규모 수주 발표 등을 보면 합병시점이 최적인지 논란”이라고 썼다. 합병이 ‘제일모직 고평가, 삼성물산 저평가’시기에 단행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두 회사의 합병 이사회 하루 전인 2015년 5월25일 경기 김포시 제일모직 대형 물류창고에서 큰불이 나 자산가치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이튿날 이사회가 예정대로 열렸으며 합병을 의결한 점, 삼성물산이 2015년 5월13일 주가 호재인 카타르 화력발전소 제한착수 지시서(LNTP)를 받아 합병비율을 보다 유리하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합병 이사회 및 주총 이후인 2015년 7월28일에서야 공시한 점을 지목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이 부회장 등의 변호인은 △물류센터 화재가 있었어도 보험으로 자산가치 하락을 상쇄할 수 있었고 △5월13일 카타르 화력발전소 제한착수 지시서는 일부 공사를 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다는 내용으로 수주가 확정되지 않은 단계였으며, 7월28일에 낙찰통지서(LOA)를 받았기 때문에 그때 공시를 한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변호인단은 한국법상 상장사 간 합병비율은 일정 기간의 주가 평균에 따라 기계적으로 정해지다시피 하고, 이사회에서 합병안을 의결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합병비율 타당성 검토보다 합병 이후 회사가 얼마나 더 나아질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란 취지로 반박했다. 그러나 증인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2022.04.07. 정아무개 당시 책임투자팀 팀장 증인신문>

“합병할 때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 합병이 회사에 도움이 될지 측면 아닌가요? 합병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에 도움이 될지, 합병 후 회사가 합병 전보다 나아질지에 대한 고려가 합병 결정에 있어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나요?” (변호인)

“합병은 파이 싸움입니다. 파이 크기가 적정한지 판단이 중요합니다.” (증인)

“그건 두 회사 사이 이해관계 문제이고, (이사회는) 합병하는 게 도움이 될지 판단하는 게 우선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변호인)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같이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두 회사가 합병을 통해 1+1=3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회사가 1.9를 가져가고 나머지 회사가 1.1을 가져간다고 하면, 1.1을 가져가는 회사 입장에선 1보단 많으니 합병을 찬성해야 할 수도 있고, 상대방이 1.9를 가져가니 적정하지 않다면서 다른 회사와 합병을 할 수도 있고 시기를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1+1이 3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회사가 1.1로 조금 플러스 된다는 이유만으로 합병해야 한다는 건 적정하지 않습니다.” (증인)

“합병비율을 어떻게 정할지는 나라마다 제도가 다르고 규제가 다르지 않나요? 우리나라 법령에선 법으로 (합병 이사회 전) 1개월, 1주일, 전일 주가를 적절히 평균해 합병비율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입법적 결단이고, 가장 논란의 소지가 적고 합리적인 제도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변호인)

“합병비율에 대한 자본시장법 규정은 시장이 효율적이란 가정하에 주가가 그 기업의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걸 전제하고 있고, (합병할 때) 이사회 결의를 거치게 한 건 이사회가 현 주가가 회사 가치를 잘 반영하고 있는지 판단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두 개가 맞아떨어졌을 때, 즉 주가가 정확히 현 회사의 가치를 반영하고 있고 이사회도 그게 맞는다고 판단하면 합병하는 거지, 무조건 법에 정해진 기준이 있다고 합병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사회는 필요 없겠지요.” (증인)

이 부회장 등의 공판은 지난 12일 기준으로 45회차를 맞았다. 크게 △자본시장법 위반(삼성물산 합병 관련) 혐의 △외부감사법 위반(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관련) 혐의로 나뉘는 이 사건 재판에는 매주 목요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관련 증인, 3주에 한번 금요일에는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 관련 증인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2018년 삼성바이오로직스를 회계부정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을 당시 이 사건 실무조사를 맡은 금융감독원 관계자의 증언 내용은 다음 기사에서 이어진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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