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미전실)이 2015년 4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앞두고 국민연금 등 주주들의 찬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인위적인 시세조종을 계획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룹 차원의 계획을 짜고 주가조작을 감행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27일 <한겨레>가 확보한 ‘엠(M)사 합병추진(안)’ 문건은 2015년 4월 별첨 자료 3쪽을 포함해 총 14쪽으로 구성됐다. 문건에는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 절차와 일정, 구체적인 합병 전략 등이 담겼다. 작성 주체는 적혀있지 않지만 과거 미전실 문건과 양식이나 표현 등이 동일해 미전실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추진 사실은 문건이 작성된 지 한달 뒤인 2015년 5월26일 이사회를 통해 공개됐고, 7월17일 주총을 통해 확정됐다. 당시 ‘1 대 0.35’(제일모직 대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을 두고, 제일모직 대주주인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고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삼성은 합병추진 문건에서 합병비율에 대한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주들의 문제제기를 예상하고, 이를 막기 위해 합병 결의 후 “주가 부양”에 나서야 한다고 명시했다. 삼성은 “(국민연금이) 제일모직 주가가 삼성물산 대비 상대적으로 고평가되었다고 합병비율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있다”며 “현 주가는 물산 총자산의 0.7배, 모직은 3.4배”라고 밝혔다. 삼성 스스로도 삼성물산이 총자산에 비해 주가가 과소평가되고, 제일모직은 과대평가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삼성은 “지금(2015년 4월)부터 주총 및 주식매수청구 기간까지 주가관리가 필요”하다며 “주가 악재요인은 1분기 실적에 반영 또는 합병 이사회 공시 전에 시장에 오픈해 주가에 선반영”하고 “주가 호재 요인은 합병 이사회 후 7~8월에 집중하여 주가(를) 부양”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민연금 등 삼성물산 주주들의 합병 찬성을 이끌어내고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합병 공개 직전 주가를 일부로 낮췄다 공개 후 주가를 띄우는 전략을 짠 것이다. 앞서 삼성은 2014년 11월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의 합병을 추진하다 국민연금이 주가하락을 이유로 주식매수청구권(합병에 반대하는 주주가 자신의 주식을 회사에 팔 수 있는 권리)을 행사해 합병이 무산된 바 있다.
삼성은 구체적으로 공개될 주가 호재요인으로 “삼성바이오에피스 나스닥 상장 가능성, (삼성물산) 건설 수주 발표 등”을 들었다. 합병 결의 앞뒤로 악재성 정보와 호재성 정보를 선택적으로 공개해 사실상 인위적인 ‘주가조작’을 계획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실제 5월26일 합병 결의 이전 삼성물산은 그해 상반기 주택경기가 활황이던 상황에서 아파트를 300여가구만 공급했다가, 합병 결정 뒤인 7월 이후 서울에 1만994가구의 아파트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합병 결의 이전 2조원 규모의 카타르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따놓고도 공개하지 않다가 합병 뒤인 2015년 7월말 공개했다. 제일모직은 7월1일 핵심 계열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 추진 사실을 공개했다.
법조계에서는 문건에 기재된 행위들이 자본시장법상 금지된 시세조종 행위(주가조작)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이 합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3조∼4조원의 이득과 그룹 지배력 강화라는 과실을 얻었고, 국민연금은 5천억∼6천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참여연대는 추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쪽은 “저희도 모르는 내용이라 별도로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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