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회계부정, 부당합병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재판장 박정제)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및 전·현직 삼성 임원 10명의 그룹 지배권 부당승계 의혹 29번째 공판에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이 부회장 변호인이 본격적인 증인신문에 앞서 증인에게 “검찰 조사 이후 검사에게 추가로 연락받은 적이 있는지” “증인 출석 전 사건 관련자들과 만난 적 있는지,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등을 캐물으며 증언의 ‘오염 가능성’을 확인하는 듯한 취지의 질문을 한 것이다. 이전에는 주로 검사가 증인에게 삼성 쪽 변호인과 접촉했는지를 물으며 증언이 사전에 조율됐을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이날은 반대였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이는 오아무개 전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이하 안진) 파트너 회계사였다. 오씨는 다른 안진 회계사들과 함께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비율(1:0.35) 타당성 검토를 맡은 인물이다. 검찰 조사 및 증인신문 과정에서 그는 “삼성의 압박으로 2015년 제일모직 가치는 부풀리고 삼성물산 가치는 축소한 보고서를 만들어냈다”며 삼성에 불리한 증언을 했다. 그동안 이 법정에 나온 증인들은 전·현직 삼성 직원이거나 삼성과 오랜 거래관계를 유지해온 비즈니스 파트너였는데, 그들이 했던 증언과 견줘보면 오씨의 증언은 ‘결’이 달랐다.
법정에 네 차례 증인으로 나온 오씨는 해당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겪은 어려움을 증언했다. 특히,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비율에 부합하는 보고서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쩔쩔매자, 삼성 쪽에서 보인 반응 등을 상세히 진술했다. 보고서를 만든 실무진인 김아무개 전 안진 회계사도 이후 세 차례 증인으로 나와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했다.
증권사 리포트 참조해 기업 가치평가…“이런 경우 못 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작업이 진행되던 2015년 5월초, 안진이 맡은 업무는 이들 두 회사를 둘러싼 ‘합병비율 타당성 검토’였다. 합병비율이란 합병으로 소멸하는 회사 주식 1주를 합병기업 주식 몇 주와 교환할 것인지를 나타내는 주식교환비율이다. 상장사 간 합병비율은 법상 일정 기간 두 회사의 주가 평균에 따라 결정되는데,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0.35였다. 소멸회사인 삼성물산 주식 1주를 가진 사람은 존속회사 제일모직(이른바 ‘통합 삼성물산’)의 신주 0.35주를 받는 합병비율이었다. 안진이 맡은 업무는 양사의 기업가치를 평가해, 주가에 따른 합병비율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하는지를 검토하는 일이었다. 당시 삼성물산은 안진에, 제일모직은 삼정케이피엠지(삼정)에 각각 합병비율 타당성 검토를 맡겼다.
그런데 법정에 나온 안진 회계사들은 삼성이 보안 등의 이유를 들어 평가작업에 필요한 자료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기업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사업부문별 사업계획서를 비롯해 내부자료를 검토하고, 실무자를 인터뷰해 자료가 현실성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삼성이 이런 작업에 난색을 보였다는 것이다. 안진 평가팀을 이끈 오 회계사는 법정에서 “통상적인 평가 기준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 요청 목록을 50~60개 정도 정리해서 (삼성물산에) 보냈다. 그런데 1~2일 후 삼성물산이 양사 사업계획을 제시하면서 ‘가급적 있는 자료대로 평가하고, 요청자료 목록을 안진 재무실사팀과 세무자문팀, 평가팀 다 합쳐 10개로 줄여달라’는 요청을 했다. 그래서 평가팀은 2개 자료를 요청했으나 그 자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무자인 김씨도 법정에서 “필요한 인터뷰가 있다고 해도 삼성물산에서 ‘인터뷰는 어렵다’고 얘기했다. 이번 합병처럼 인터뷰 자체를 막는 경우는 없어서 당황했던 게 사실”이라고 했다. 검찰은 ‘삼성이 자료제공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회계법인이 제일모직의 기업가치를 고평가하고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는 저평가하도록 결과를 유도해, 합병비율과 유사한 기업가치 평가를 받으려고 했기 때문’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당시 안진 평가팀은 삼성 쪽에서 자료를 충분히 받지 못하자,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리포트를 가지고 기업가치를 평가한다. 그런데 안진이 참고한 증권사 리포트들은 제일모직의 바이오 사업 지분가치를 최소 2.6조∼최대 7조원으로 제각각 평가하고 있었고, 제일모직의 유휴토지에 관한 리포트도 ‘대부분의 토지가 개발제한구역에 묶여있다’는 실상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작성된 것들이었다. 증인 김씨는 법정에서 “증권사 리포트를 (가치평가 작업에) 활용하는 경우는 못 봤다”고 말했다.
최치훈 당시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가 2015년 7월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에이티(AT)센터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계약 안건 관련 임시 주주총회를 주재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부족한 자료를 바탕으로 합병비율 타당성 검토를 해본 안진 평가팀은 보고서 제출 마감 시한인 5월21일까지 1:0.35가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지 못한다. 결국 안진은 이날 ‘시가총액과 기업가치 평가액 간 괴리를 설명할 수 없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해 삼성물산 쪽에 건넸다. 해당 보고서는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14.3조원, 제일모직의 가치를 16.8조원으로 평가했다. 합병비율에 부합하기 위한 제일모직 가치(31.5조원)에 한참 모자라는 수치였다. 안진은 보고서에서 “제일모직의 바이오 지분가치를 시장의 기대치보다 높게 평가해도 시가총액에 미달하는 수준”, “삼성물산은 시가총액이 낮게 형성돼있는 반면, 제일모직은 상당히 높게 형성돼 삼성물산의 평가금액을 기준으로 합병비율에 부합하는 가치를 도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시총과 기업가치 간 괴리를 해소할 방안으로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추기 위해 우발부채 추가 계상 △삼성물산 기준시가 10% 할증 방안 등을 덧붙여 놓았다. 그런데 이런 보고서를 받은 삼성물산 쪽 우아무개 부장은 ‘역정’을 냈다고 한다.
<2022.01.13 증인 오씨 검찰 주신문>
“증인은 2015년 5월21일 오후 우아무개 부장과 미팅하면서 보고서 내용을 다 설명했지요?”
(검사)
“네.”
(증인)
“우 부장의 반응은 어땠나요?”
(검사)
“갑자기 언성을 높이면서 ‘시장에서 거래되는 합리적인 시총이 있는데 (합병비율에 맞추지 못한) 이 보고서는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삼성물산 할증에 대해서는 ‘회계법인이 시키지도 않은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질책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증인)
<2022.02.16 증인 김씨 검찰 주신문>
“보고서를 받고 우 부장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검사)
“신경질적으로 말씀하시면서, ‘못 맞출 거면 하지 마라, 안 해도 된다’라고 했습니다.”
(증인)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는 걸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요.”
(검사)
“제 입장에선 화를 내는 것 같았습니다. 5월22일이 합병 이사회인데 전날까지 결정을 못 해서 화가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증인)
“반대로 해석해보면, ‘주가 기준 합병비율을 설명할 수 있는 보고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가져오면 어떡하냐’는 취지였나요?”
(검사)
“당시 저희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증인)
며칠 만에 뒤집힌 보고서…‘외부인에 공개 말라’ 했지만
그러나 이렇게 끝난 줄 알았던 가치평가 업무는 당초 그해 5월22일로 예정됐던 합병 이사회가 5월26일로 미뤄지면서 연장된다. 증인 오씨는 보고서 문제로 삼성 쪽의 질책을 받은 뒤, 안진 정아무개 부대표가 ‘일방적으로 보고서를 내지 않으면 삼성과 문제가 생길 것 같다’라고 해, 결국 합병비율이 적정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안진은 합병 이사회 전날인 5월25일 밤 작성한 최종 보고서에서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는 9.4조원, 제일모직은 21.3조원으로 평가했고, 이런 평가결과에 따라 기준주가에 의한 합병비율은 타당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삼성물산에 제출한다. 5월21일 평가한 내용(삼성물산 14.3조원, 제일모직 16.8조원)과 견줘보면 나흘 만에 삼성물산 기업가치는 4.9조원이 줄고, 제일모직 기업가치는 4.5조가 늘어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안진은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영업가치를 2.9조, 상사부문 0.4조 등으로 평가했고, 현금성 자산 1.3조를 제외하는 방식으로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췄다. 제일모직의 경우 유휴토지 상당 부분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였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 사실을 알기 전 평가한 수치인 1.8조원을 그대로 반영했다. 별다른 평가근거가 없는 제일모직 신수종 사업은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동일한 2.9조로 평가하고, 삼성물산 건설부문(2.9조)에 견줘 매출이 1/10 수준인 제일모직 건설사업의 영업가치는 1.47조원이라고 봤다.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제일모직의 바이오시밀러 사업 지분가치는 당시 매출이 50배는 더 높았던 셀트리온보다 값비싼 6조원으로 평가했다.
안진 쪽은 신빙성 있는 근거자료가 부족한 상태에서 기업가치를 평가한 이 보고서를 ‘신뢰성을 담보할 수가 없으니 어떠한 경우에도 제3자의 열람 및 사용을 금지한다’는 제약사항을 달아 삼성물산에 송부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로서 합병 성사의 열쇠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에 제공됐다. 오씨는 그해 7월께 삼성물산을 통해 국민연금으로부터 ‘보고서에 관해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서야 외부에서 보고서를 열람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역정’은 답답하고 당황한 마음의 표출이었을까
이에 대해 이 부회장 쪽 변호인은 삼성이 합병비율에 부합하는 보고서를 만들어내라고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증인 오씨와 김씨는 ‘삼성 관계자가 직접 합병비율에 부합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요구를 한 적은 없다고 거듭 말했다. 다만 5월21일 합병비율에 부합하는 보고서를 내지 못하자 삼성물산 쪽에서 화를 낸 것은 삼성이 원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가져오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변호인이 ‘합병 이사회가 코앞인 상황에서 안진이 갑자기 우발부채 차감 등 다른 얘기를 꺼내니 실무자 입장에서 당황한 반응 아니겠냐’고 했지만, 증인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2022.02.24. 증인 김씨 변호인 반대신문>
“(상사인) 오씨가 삼성물산 우발부채 계상을 얘기한 2015년 5월21일은 5월26일 이사회를 목전에 둔 시점이었지요? 5월23일은 토요일, 5월25일은 석가탄신일이라 현실적으로 이사회 전에 (삼성물산이) 우발부채 유무를 확인하고 근거자료를 준비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거 같은데 어떤가요?”
(변호인)
“일단 근거자료까지 검증하긴 어렵지만, 회사에서 조사해둔 게 있으면 그걸 반영하려고 했습니다.”
(증인)
“(우발부채 계상, 할인할증 등) 대안을 넣자는 건 오씨 생각이었지요? 실무자에게 이를 결정하라고 하면 답답할 수 있는 상황 아닌가요?”
(변호인)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전에도 요청한 자료를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실무진을 괴롭히기 위해 촉박한 시간에 추가자료를 달라고 한 게 아닙니다.”
(증인)
“(삼성물산) 우 부장이 ‘이렇게 할 거면 보고서 안 내도 된다,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장주가에 부합하는 보고서를 만들어내라’는 차원이라기보단, ‘전문가라는 분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일하면 어떡하냐, 이사회가 목전이고 저는 실무자인데 저한테 결론을 주지 않고 우발부채 계상이나 할증처럼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내용을 말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라는 취지로 질책한 것 아닌가요?”
(변호인)
“저희는 당시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 부장 말의 의도가 ‘(합병비율에) 맞춰서 가져오지도 못하냐’는 질책으로 들렸습니다.”
(증인)
“가치평가 전문가가 아닌 우 부장 입장에선 평가금액이 실제 시장가격과 유사한 수준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변호인)
“우 부장이 평가와 관련해 어떤 경험을 했는지 모르지만, 저희는 시가를 합리적으로 맞추려고 노력했고 그게 어렵다는 건 우 부장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제 입장에서 충분히 전달했고, 5월21일까지 맞추지 못한 상태에서 보고를 드렸습니다. 저희도 그 당시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보고서를 (삼성물산이) 채택하지 않아도 별수 없지 않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증인)
이 사건 공판을 목요일마다 진행해왔던 재판부는 오는 18일부터 3주 간격으로 금요일에도 재판을 연다. 목요일에는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관련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재판이고, 금요일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회계부정 관련 혐의(외부감사법 위반) 재판이 진행된다. 금요일에는 2015년 삼성바이오 회계감사를 맡아 회계부정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삼정과 삼정 회계사 2명의 재판을 병합해 진행한다. 자본시장법 위반 관련 다음 공판부터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안에 찬성했던 국민연금 관계자들이 증인으로 나올 예정이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