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식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신현진(47) 씨제이(CJ)제일제당 중부신선시스템 사장은 폐기 차량이 떠날 때 가장 안타깝다. 유통기한을 넘긴 식품들을 실어 보낼 때, 피땀 어린 돈은 쓰레기가 돼버린다.
“대리점은 소매점의 반품을 받아주지만, 본사는 대리점의 반품을 받아주지 않아요. 폐기가 많은 대리점은 한달에 10% 정도를 여전히 내다 버려요. 1년으로 치면 몇억원어치 되기도 하죠.” 지난 13일 신씨는 서울 평창동 대리점 사무실에서 <한겨레>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신씨의 문제제기에 응한 회사와의 협상에서도 ‘반품’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반품이 본사 탓일 때도 많다. 신씨는 “본사에는 나갈 물량이 정해져 있으니까 유통기한 날짜가 얼마 안 남은 물건을 대리점으로 보낼 때도 있다. 받고 싶지 않지만 회사로 돌려보낼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한겨레> 2013년 6월19일치 18면 참조)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던 지난해는 신씨에게 “2005년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 맞은 기회였다”고 한다. 그는 “그때는 (회사가) 우리 목소리를 많이 들어주고 했는데, 지금은 잊혀진 것 같다. 한 사원으로부터 ‘이제 약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이제 우리 얘기를 할 장소도 기회도 없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신씨는 지난해 7월30일 민주당 이학영·은수미 의원, 김태준 씨제이제일제당 식품사업부문 대표 등과 ‘상생·동반성장 협약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판매목표 압박과 더불어 판매실적에 따라 가격을 차별해 물건을 공급하던 관행은 사라졌다. 새로운 거래처가 생길 때 직거래를 할 수 있는 우선권도 대리점주들이 갖게 됐다.
신씨는 “판매목표 강요는 없어졌지만,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면서 ‘필수취급품목(SKU) 주문 증감 순위’가 담긴 전자우편을 보여줬다. 씨제이제일제당이 대리점들에 더 많이 구매하라고 제안한 품목을 실제로 얼마나 많이 주문했는지 대리점 순위를 매긴 표다. 판매목표와 목표달성률에 따라 주어지는 장려금 없이는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가 존재하는 한 신씨는 안녕할 수 없어 보였다. 전자우편은 ‘우리 영업점 순위가 많이 떨어졌네요’라는 본사 영업사원의 ‘평가’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신씨는 순위가 떨어지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에 비해 사정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빚이라도 내서 판매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리점에 주어진 거래처 직거래 우선권도 별 도움이 못 된다고 했다. 신씨는 “이미 알짜배기 거래처는 본사가 모두 갖고 있다. 거래처로서도 대리점을 통하는 것보다 본사와 직거래를 해야 훨씬 싸게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으니 대리점 거래를 싫어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려면 대리점 손해를 증명할 자료들이 필요하지만 대리점주들은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신씨는 “씨제이 주문 프로그램인 씨제이원(CJ ONE)에 있었던 그 자료들을 찾아보니, 2011년 이전 자료는 모두 삭제됐다”고 말했다. 자료가 있다고 해도 쉽지 않은 문제다. 함께 문제를 제기할 동료도 없다고 했다. “지난해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서 씨제이 대리점주들 사이에는 목소리를 솔직하게 대변해줄 기구는커녕 변변한 친목모임도 없어요. 이미 찍힌 몸이지만 또다른 불이익을 당할까봐 겁이 납니다.” 어려움을 털어놓는 신씨의 얼굴엔 그늘이 가득했다.
씨제이제일제당은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이 회사 관계자는 “반품을 돈으로 직접 보상해주지는 못하지만 보상 차원에서 매년 매출액의 4%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주문 프로그램의 기록을 삭제한 것은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다. 시스템 부하가 심해서 이전에도 3년에 한번씩 기록을 지워왔다”고 설명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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