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을들’ 지금 안녕하십니까
⑤ ‘사업 가로채기’ 당한 청년 창업자
⑤ ‘사업 가로채기’ 당한 청년 창업자
미 신발 ‘오츠’ 국내 판권 땄지만
이랜드가 회사 인수…계약 깨져
비싼 수임료·대기업과 싸움 회피…
소송도 쉽지 않아 법적 대응 포기
“한번 좌절했지만 꿈은 아직 유효” 위험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 집을 지을 때 폭우·폭설에 대비하고 내진 설계까지는 할 수 있어도 마을을 모두 휩쓸어버리는 용암이나 해일에는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그에게, 대기업은 용암이나 해일이었다. 2011년 국외 브랜드 수입·유통 회사를 만들어 사업을 준비하던 때만 해도 이아무개(34)씨는 대기업이 사업 영역을 통째로 침범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씨는 2011년 12월 미국 컴퍼트화 브랜드 ‘오츠’의 국내 독점 판권을 5년 동안 갖는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1년 반도 안 된 지난해 5월 오츠는 대기업 이랜드그룹에 인수됐다. 당시 이랜드그룹은 자회사를 통해 오츠 지분 90%가량을 약 100억원에 인수하면서 2016년까지 오츠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서 4000만달러(약 445억6500만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오츠는 “인수자가 한국 판권자와의 계약해지를 원한다”며 이씨에게 계약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한겨레> 2013년 8월6일치 9면 참조) 이씨는 대답 없는 벽과 싸웠다. 그는 “이랜드그룹에 국내 판매권 계약이 유효하다는 내용증명을 보내고 해명을 요구했지만 답이 없었다. 그때 이러다 사업이 고사되는 것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랜드는 지난해 <한겨레> 보도에 대해 “우리가 나서서 오츠에 계약을 해지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그들 간에 문제가 있어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고 해명해 왔지만 당사자인 이씨에겐 일언반구도 없었다. 법적 대응도 쉽지 않았다. 이씨는 “대형 로펌을 찾아가면 작은 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돈을 요구했고, 일부는 ‘이랜드가 고객사’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해외에 있는 회사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다른 변호사들도 적은 돈으로는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수임료가 비교적 저렴한 변호사를 고용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라” “이랜드 쪽에 사정을 잘 말해서 합의금을 받는 것은 어떠냐” 정도의 자문을 받은 게 전부였다. 심지어 다른 변호사를 소개해 주면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것을 도와줄 테니 착수금으로 2000만원을 주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께 그는 법적 대응도 포기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오츠 관련 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재고도 모두 처분하기로 했다. 그는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히 돈을 벌려고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기업에서 주인의식 없이 부속품처럼 일하는 데 회의를 느껴 사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청년들과 일하면서, 사업이 정착되면 협동조합으로 전환해 ‘자기주도형 회사’ 모델을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는 다시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걸음은 조금 늦어지게 됐지만 꿈은 유효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씨는 경제민주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고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대기업의 횡포를 막고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 걸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올해에는 사회적 부조리가 모두 ‘남의 일이 아닌 나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공정’이 중요한 가치라는 인식이 문화 전반에 뿌리내리길 바랍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이랜드가 회사 인수…계약 깨져
비싼 수임료·대기업과 싸움 회피…
소송도 쉽지 않아 법적 대응 포기
“한번 좌절했지만 꿈은 아직 유효” 위험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 집을 지을 때 폭우·폭설에 대비하고 내진 설계까지는 할 수 있어도 마을을 모두 휩쓸어버리는 용암이나 해일에는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그에게, 대기업은 용암이나 해일이었다. 2011년 국외 브랜드 수입·유통 회사를 만들어 사업을 준비하던 때만 해도 이아무개(34)씨는 대기업이 사업 영역을 통째로 침범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씨는 2011년 12월 미국 컴퍼트화 브랜드 ‘오츠’의 국내 독점 판권을 5년 동안 갖는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1년 반도 안 된 지난해 5월 오츠는 대기업 이랜드그룹에 인수됐다. 당시 이랜드그룹은 자회사를 통해 오츠 지분 90%가량을 약 100억원에 인수하면서 2016년까지 오츠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서 4000만달러(약 445억6500만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오츠는 “인수자가 한국 판권자와의 계약해지를 원한다”며 이씨에게 계약해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한겨레> 2013년 8월6일치 9면 참조) 이씨는 대답 없는 벽과 싸웠다. 그는 “이랜드그룹에 국내 판매권 계약이 유효하다는 내용증명을 보내고 해명을 요구했지만 답이 없었다. 그때 이러다 사업이 고사되는 것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랜드는 지난해 <한겨레> 보도에 대해 “우리가 나서서 오츠에 계약을 해지해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그들 간에 문제가 있어 계약을 해지한 것”이라고 해명해 왔지만 당사자인 이씨에겐 일언반구도 없었다. 법적 대응도 쉽지 않았다. 이씨는 “대형 로펌을 찾아가면 작은 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돈을 요구했고, 일부는 ‘이랜드가 고객사’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해외에 있는 회사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다른 변호사들도 적은 돈으로는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수임료가 비교적 저렴한 변호사를 고용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라” “이랜드 쪽에 사정을 잘 말해서 합의금을 받는 것은 어떠냐” 정도의 자문을 받은 게 전부였다. 심지어 다른 변호사를 소개해 주면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것을 도와줄 테니 착수금으로 2000만원을 주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께 그는 법적 대응도 포기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오츠 관련 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재고도 모두 처분하기로 했다. 그는 다른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단순히 돈을 벌려고 사업을 시작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기업에서 주인의식 없이 부속품처럼 일하는 데 회의를 느껴 사업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청년들과 일하면서, 사업이 정착되면 협동조합으로 전환해 ‘자기주도형 회사’ 모델을 만드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는 다시 새로운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걸음은 조금 늦어지게 됐지만 꿈은 유효하다”고 그는 말했다. 이씨는 경제민주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고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대기업의 횡포를 막고 경제민주화를 이루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경제민주화라는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 걸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올해에는 사회적 부조리가 모두 ‘남의 일이 아닌 나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공정’이 중요한 가치라는 인식이 문화 전반에 뿌리내리길 바랍니다.” 박승헌 기자 abc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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