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기획 격차사회를 넘어
밀려난 삶의 공간 ② 갈매마을 철거촌
밀려난 삶의 공간 ② 갈매마을 철거촌
15년전 철거촌서 내쫓겨온 함씨
막다른 삶의 터전, 또 헐릴 위기
“남 보금자리 위해 내 보금자리 뺏나”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해 12월18일, ‘대선 한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추운 겨울날 누런 황토밭의 갈매마을을 덥히고 있는 것은 일찌감치 지는 겨울 해뿐이었다. 마을 앞에 들어선 거대한 갈매역은 찰나의 온기마저 가로막는 듯했다. 갈매역은 갈매마을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누군가의 보금자리주택을 짓기 위해 다른 이의 보금자리를 빼앗고 있는 경기 구리시 갈매동. 마을에 들어서도 한동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비닐하우스에서 떨어져 나온 비닐들만 어지럽게 마을을 돌아다녔다. 이미 철거돼 폐허가 된 집들이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미 보상금을 챙겨 나간 빈집에 마련된 철거민대책위원회 사무실에는 주민 예닐곱명이 둘러앉아 불안한 대화를 속삭였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사무실은 싸늘한 냉기로 가득했다. “(다른 사람들) 보금자리를 만들자면서 우리 보금자리를 뺏는 게 말이 됩니까?” 이들의 하소연은 어둠이 깊숙이 내려앉을 때까지 이어졌다. 인근 남양주시 별내면에 살다 1998년 철거 굴착기를 피해 이 마을로 흘러들어온 함학주(56)씨는 또다시 내쫓길 처지가 됐다. 그는 얼마 전 “2월28일까지 집을 비우라”는 계고장을 받았다. 발신자인 엘에이치(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는 함씨가 머무는 무허가 주택과 창고를 합해 ‘28만원’을 보상비로 책정했다.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쥐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쫓으라고 하는데,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집으로 기자를 안내한 함씨의 거칠고 큰 주먹이 너덜너덜한 창고 문짝을 내리쳤다. 이곳에서의 15년 삶, 피와 땀이 밴 창고의 문짝이 ‘삐걱’ 하고 울었다.
함씨의 창고 안은 어두웠다. 그 흔한 전등조차 없다. 매캐한 먼지 냄새는 코를 찔렀다. “이놈은 내가 설비일 할 때 장만했던 절단기요. 이건 농사일하면서 샀던 손수레고.” 창고를 안내하면서 연장들을 설명하는 눈빛은 꼭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그것이었다. 삽, 노루발장도리, 해머, 절단기, 용접기…. 각종 연장들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농사용 도구는 물론이고 상하수도 수리나 보일러 시공 같은 ‘설비일’을 하기 위해 샀던 연장들까지 보관해두는 장소다. 15년 전 갈매동에 정착할 때 가족들과 함께 손수 지은 이 창고는 함씨에게 삶과 노동의 오랜 보금자리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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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역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16도까지 떨어지는 등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인 3일 오전, 함학주씨가 난방이 되지 않는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 집에서 전기장판에 의지해 이불을 뒤집어쓴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구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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