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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오늘도 빈곤 쳇바퀴…공공부조·보편복지 결합이 출구다

등록 2013-03-04 20:57수정 2013-03-05 09:40

지난해 12월2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소재 고물상 ‘한길자원’에서 한 노인이 실어온 고물을 내리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해 12월27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소재 고물상 ‘한길자원’에서 한 노인이 실어온 고물을 내리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월3일,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 보금자리주택지구 안에 있는 철거민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을 한 철거민이 지나가고 있다. 
 구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1월3일, 경기도 구리시 갈매동 보금자리주택지구 안에 있는 철거민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을 한 철거민이 지나가고 있다. 구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3기획 격차사회를 넘어] 밀려난 삶의 공간 ⑧취재를 마치며

고물상·철거촌·사내하청 업체 등
양극화 현장 돌며 가슴 답답했다
취약한 공공부조탓 생계 위협받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데
약자에게 노동3권은 ‘먼나라 얘기’

정치권엔 복지 부문별 대변자 없고
제구실 못하는 노동조합도 큰 문제
결국 해결책은 우리사회 모두의 몫
사회안전망 확충에 다함께 나서야
‘희망의 새시대’는 과연 언제 올까

오건호(이하 오) 7회에 걸친 기획 시리즈를 읽는 동안 너무 가슴이 메었다. 기존의 르포 방식을 넘어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심층적으로 다루다 보니 입체적으로 조감한 듯하다. 임금 소득이 얼마라는 등의 수치로 보여주는 삶이 아니라, 공간 즉 구조를 이해하다 보니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그 좌절감을 간접체험할 수 있었다. 아쉬움도 있다. 기사는 날것 그대로의 생생함이 느껴진 반면, 전문가의 진단이 너무 당위적인데다 구체적이지 못했다. 문제는 심각한데 제도 개선안을 내기 어렵다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꼭지별로 다시 한번 짚어보자.

전종휘(이하 전) 첫회에서 고물상을 다뤘다. 현장의 폐지수집 노인들을 보면, 실제 벌이가 없어도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돈을 벌게 되면 기초생활수급비가 중단되거나 깎인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듬지 못하는 딱딱한 복지 시스템이다. 대부분의 고물상 노인은 “노느니 일한다”고 하지만, 고물일을 하지 않고는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어르신에게도 노동이 필요하지만, 취약한 공공부조 때문에 강제적으로 극한 생계로 몰린다는 게 문제다. 이들에게 적정한 기본생활이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예산 확보는 자연증가분 정도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 어르신들 대부분 질병을 앓고 있다. 취약한 의료보장제도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노년층은 그들을 대변하는 집단이나 사람들도 없는 소수자 주변 집단이다.

이정국(이하 이) 두번째로 찾아간 곳은 경기 구리의 갈매마을 철거촌이다. 기사가 나간 1월8일 다시 철거용역이 들이닥쳤고 주민 4명이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왜 이런 문제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가.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주거에 대한 근본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엘에이치공사)가 적극 나서야 한다. 소유주나 세입자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정책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는 것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다. 현장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잘 알고 있을 거다. 철거문제 해결을 위해선 공공주체가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현대차 아반떼 생산라인 하청노동자 편도 흥미롭게 읽었다. 정규직 조합원의 항의는 없었나?

김선식(이하 김) 정규직 노조의 항의 전화를 여러차례 받았다. ‘<한겨레>가 노동자를 분열시킨다’는 항의도 들어왔다. 그런 쪽으로 읽힐 수는 있으나, 기사의 본질은 그게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기본적으로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현대차 회사 쪽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 크다.

예상보다 정규직 노조의 항의가 셌다는 건가?

그렇다. 기사를 쓰면서 기대한 것은 ‘소수라도 이런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겠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문제의 핵심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마주보고 얘기하면 풀 수도 있을 텐데 안타깝다. 이번 기획 시리즈 가운데 현대차 하청노동자 편이 아픔을 가장 절실하게 표현한 것 같다. 생생하게 다가왔다.

직접 공장에 가보니 1990년대 후반에 공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당시 ‘사내하청’이란 단어조차 생소했다고 하더라. 10여년 사이에 비정규직 문제가 일상화돼버린 것이다.

지난달 19일 오후 오건호(오른쪽에서 둘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과 <한겨레> 신년기획 ‘격차사회-밀려난 삶들의 공간’을 취재한 기자들이 이번 기획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달 19일 오후 오건호(오른쪽에서 둘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과 <한겨레> 신년기획 ‘격차사회-밀려난 삶들의 공간’을 취재한 기자들이 이번 기획기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관계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넓게 보면 대한민국, 작게는 비정규직 문제를 의제로 삼는 정당·시민사회 등의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4회에서는 아동복지를 다뤘다.

아이들이 버려지는 건 대부분 가난이라는 경제적 문제 때문이다. 경기북부 일시아동보호소에 있는 아이들 40여명 가운데 한두명 빼고는 대부분 경제적 최하층에 속했다. 더 큰 문제는 버려지고 난 이후다. 한번 밀려나면 원상회복이 힘들다. 당시 포털의 메인화면에 기사가 노출돼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 이른바 ‘선플’이었다.

결국 부모의 문제다. 부모의 질병을 돌보고 일자리 제공을 하지 못하는, 두텁지 못한 사회안전망이 원인이다. 고물상 어르신들이 극심한 생계형 노동으로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사에 등장했던 혜진(가명)이의 경우도 이런 상황이다. 결국은 부모가 부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복지의 손길이 제대로 미쳤더라면 혜진이의 두번째 버려짐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10년부터 ‘보편적 복지’ 논쟁이 인 뒤 모든 사회복지 이슈가 보편적 복지에 쏠리다 보니 공공부조 쪽이 방치되고 있다. 정치권에 각 복지 당사자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골고루 배치돼 있지 못하다 보니 정치적인 목소리를 못 낸다. 취약계층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격차사회 기획을 진행하면서 생각한 전반적인 기조는 크게 두 가지다. 경제사회적 위치에 상관없이 공정한 출발을 할 수 있는 사회, 또 한번 넘어져도 패자부활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라는 두 가지 상이다. 5회에서는 패자부활이 막힌 사회를 택시라는 공간을 통해 보려고 했다. 사회구조도 문제이지만 제구실 못하는 노조도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구조다. 답답했다.

불안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풀기는 어렵다. 사회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시민들이 공유해야 한다. 택시를 줄여야 한다면 그 비용은 사회가 부담하는 게 옳다. 택시 노조 역시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청년 실업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서울 노량진 고시촌의 피시방에도 갔다. 대부분 불안정한 상황이다. 인터뷰한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은 ‘계획을 세우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불안정한 상황을 빨리 탈출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엿보였다.

노동시장이 대단히 불안한 탓에 생기는 문제다. 좁은 문틈으로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도태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피시방에 취업준비생 등이 몰리는 건 노동시장 진입 구멍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풀기 위한 방책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대기업의 불공정 관행에 시달리는 하청업체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찾아간 곳은 서울 성수동 제화업체다. 상품권 강매와 어음 지급 관행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개 업체라도 단결을 해서 저항하고 정당한 요구를 하는 등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협상력을 내는 조직이 없다. 제화 노동자들도 노동자성을 확보해 4대 보험 가입, 산재 인정 등을 받아야 하는데, 노동자들도 많이 파편화된 상태다.

7개 현장을 요약하자면, 탈출구 없는 구덩이 속에 빠져서 좌절과 분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출구를 넓혀주고 사다리를 놓아주어야 하는데, 한계상황 속에서 고통이 점점 세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불안과 파탄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권에선 생애주기 복지를 얘기하지만 아동·청년·노동자·어르신까지 모든 계층의 생애주기 파탄 상태가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본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당사자들이 나서는 것이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연명하는 당사자들이 해결에 나서기에는 문제가 너무 구조적이고 누적돼 있다. 해결책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다. 공공부조와 보편복지가 결합해 최소한의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는 것이다. 이에 따른 제도개혁과 재정확충을 계속 논의해야 한다. 비정규직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순간 계약해지의 공포가 기다리고 있다. 최소한의 생활권이 보장돼야 노동권과 그에 따른 조직권을 주창할 수 있다. 노동의 권리를 온전히 주창하기 위해서도 복지가 필요하다. 이것이 노동과 복지의 결합이다.

두터운 복지로 사회 약자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헌법에 노동3권이 보장돼 있지만, 그걸 행사했을 때 오는 경제적 불이익이 없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있어야 한다. 강한 복지가 강한 노동을 만든다. 노동시장에서 심각한 차별을 없애면 새롭게 진입하는 청년들이 좁은 하나의 산으로만 올라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대학입시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노동시장의 안정화와 격차 해소가 매우 중요한 이유다. 경제민주화도 다시 논의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의 실질적 결정권자는 기업이다. 기업을 규제할 수 있는 핵심 권력인 시장을 정치의 힘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치의 힘을 빌려 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 경제민주화다. 나락에 빠진 사람들이 정치적 주체로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출구를 만들어 나가는 해법이다.

시장의 판단으로만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길 기다리는 건 힘든 상황이다.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시장의 폐허 속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복지로 메우려고만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 슬로건을 ‘희망의 새 시대’로 정했지만, 복지공약 수정을 봐도 두터운 복지와 거리가 있을 것 같다. 일자리 안정과 경제민주화 부분은 처음 공약부터 미흡했다. 조각 명단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프로그램을 봐도 성장을 기본 축으로 하는 기존 정책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 우려가 크다. 결국 세력의 문제라면, 격차사회 기획에서 다뤘던 주체들이 전부 나 자신과 이웃의 문제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서로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

밀려난 사람들의 정치적 보수화도 되짚어 봤으면 한다. 피시방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어떻게 하든 노동시장에 진입하려 발버둥치는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이들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인 경우가 많았다. 기사의 주인공인 37살의 자칭 ‘고시폐인’은 좋아하는 정치인이 노회찬과 박근혜였다. 현실을 깨부수고 싶은 열망은 있는데 선택은 양극단이었다.

고물상 기사에서 한 등장인물은 ‘민주화운동은 보상하는데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다 다친 나 같은 사람은 왜 아무런 보상 안 해주냐’는 불만을 제기했다. 피시방에서 만난 젊은이들도 ‘지금 기성세대들이 너무한다’는 반감이 많았다. 현실에 대한 불만이 진보로 연결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리가 필요하다. 진보든 개혁이든 하나의 사회를 바꾸는 설계가 보여야 한다. 이 설계도가 신뢰를 보이지 않게 되면 그들은 자신의 반감 속에 머무르거나 포퓰리즘적 정치인에게 기대게 된다.

문제의 당사자들을 조직해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조직화된 것은 정당·노조·엔지오·대책위원회 4개뿐이다. 시민사회는 너무 일반적이고 노동조합은 사실상 기업 안에 존재한다. 기존 조직화 방식은 매력이 떨어진다. 지역성과 함께 공유되는 의제를 가진 주체적 세력화가 필요하다. 유니언 형태를 주목해야 한다. 청년유니온이 대표적인 예다. 마을공동체나 협동조합의 경우도 보면, 지역적 동질성이 여러 주체들을 하나로 엮을 수 있다고 본다. 지역조합·유니언 등의 세력화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기획은 밑바닥 현장을 들여다보는 탁월한 르포였다. 다음번에는 밀려난 사람들을 불러와서 직접 목소리를 내게 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어떨까. <끝>

전종휘 이정국 김선식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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