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 여성의 삶을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는 교육비다. 많은 여성들이 아이들 학원비를 벌러 일터에 나간다.
<한겨레>가 지난 2~13일 전북 전주의 돌봄서비스 분야에서 일하는 기혼 여성 115명에게 물어보니, 일해서 버는 돈의 주된 지출 내역으로 생활비(49%)에 이어 자녀 교육비(38%)를 꼽았다. 대부분 월 100만원 이하를 버는 가난한 비정규직 여성들이 소득의 상당 부분을 교육비로 쓰고 있는 것이다.
교육비 지출 부담은 이들을 다시 빈곤층에 머무르게 한다. 한국 여성 노동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비정규 돌봄노동자들은 이러한 ‘교육빈곤층’(에듀푸어)의 형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교육빈곤층은 가계 빚이 있고 소득에 비해 지출이 많은 적자 상태임에도 평균보다 많은 교육비 지출로 빈곤하게 사는 가구다.
현대경제연구원이 8월 발표한 ‘국내 가구의 교육비 지출구조 분석’ 보고서를 보면, 교육빈곤층의 실체가 나온다. 연구원 조사 결과, 지난해 기준으로 모두 82만4000가구가 교육빈곤층에 속했다. 자녀 교육비 지출이 있는 가구의 13%를 차지한다.
이들 교육빈곤층은 소비지출의 28.5%를 자녀 교육비에 쓴다. 자녀 교육비 지출이 있는 전체 가구 평균인 18%보다 월등히 높다.
부모 연령별로 보면,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40대의 교육빈곤층 비중이 17.1%로 가장 높았다. 여성들이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연령대와 겹친다.
학력별로는 고졸 부모 가구에서, 직종별로는 서비스·판매와 단순노무직에서 교육빈곤층의 비중이 더 높게 나타났다. 소득이 낮은 가구일수록 전체 지출 가운데 교육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그 결과 가계가 다시 불안해지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전주시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기준 전주시내 가계소비 가운데 교육비 비중은 26%다. 특히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전주시내 40대 부모는 소득의 절반 이상인 56%를 교육비에 쓴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유치원과 초등학생에 대한 교육비 지출도 높아 부모가 30대부터 교육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가구가 많다. 우리나라 공교육 지출 가운데 민간 부담 비율은 국내총생산의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0.9%)보다 3배 이상 높다”고 지적한다.
최형재 고려대 교수(경제학과)의 논문 ‘자녀 교육과 기혼 여성의 노동공급’(2008)을 보면, 미취학 자녀를 둔 기혼 여성의 소득활동 참가율은 43.5%인 데 비해, 막내 자녀의 연령이 초등학생(59.4%), 중학생(65.3%), 고등학생(66%)으로 올라갈수록 증가했다. 사교육비 부담이 늘어날수록 기혼 여성의 소득활동 참가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것이다.
그 양상을 더 들여다보면 계층별 차이가 있다. 월평균 60만원 미만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저소득층 가구의 경우 기혼 여성의 소득활동 참가율이 70.1%인 반면, 사교육비로 월평균 60만원 이상을 쓰는 중산층 이상 가구의 경우엔 기혼 여성 소득활동 참가율이 53.9%였다. 최형재 교수는 “사교육비가 증가하면 저소득층 여성들은 이를 마련하기 위해 노동시장에 남아 있으려는 성향이 있는 반면, 고소득층 여성들은 오히려 노동활동을 포기하고 집안에서 자녀교육을 지원·지도하는 성향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기혼 여성의 종사상 지위에서도 계층 격차가 드러난다. 사교육비 지출이 월평균 60만원 이상인 중산층 가구의 경우 임금근로자 비율은 34%였다. 반면 60만원 미만인 저소득층 가구는 임금근로자 비율이 45%로 훨씬 높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점에서 사교육비 경감이 교육빈곤층의 고통을 덜고, 저임·불안정 노동에 속박된 기혼 여성을 위하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사교육비 경감이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문제이지만, 특히 교육빈곤층 여성에게 더 절실하다는 것이다.
최형재 교수는 “당장 급한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기혼 여성들이 열악한 일이라도 받아들이고 하향 취업하는 경향이 있다. 사교육비 부담이 줄면 기혼 여성들의 저임금·비정규직 취업 요인도 줄어들어 만연한 여성 비정규직 일자리의 질이 개선되는 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대선 후보들은 다양한 사교육비 경감책을 제시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사교육을 유발하는 선행학습을 금지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후보는 초등학생 사교육 금지법을 비롯해 특목고의 점진적 폐지 등 고교 서열화 해소를 통해 초중등생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 교수는 “저소득층 자녀의 교육과 그 어머니의 노동 여건을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교육정책이 나올 수 없다. 노동정책에도 기혼 여성의 자녀교육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 여성 노동시장 정책과 교육문제를 서로 보완적으로 설계하는 정책이 나와야 실효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미 최유빈 기자
kmlee@hani.co.kr
<한겨레>가 2~13일 전북 전주에서 만난 기혼여성들은 놀랍도록 직업이 비슷했다. 보육교사를 하다가 판매직을 하기도 하고, 판매직을 하다가 보육교사나 가사도우미를 하기도 하고, 직장을 쉬고 있을 때 간간이 하는 아르바이트는 식당이나 학교급식 등이었다. 자녀교육을 위해 일터로 뛰어드는 전주 기혼 여성들 앞에 선택지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꿈을 양보하고 자녀와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엄마들, 정부는 엄마들의 노동을 존중하지 않는다. 대선을 앞둔 전주 엄마들의 소망을 담는다.
△가사도우미 김지영(가명·38)씨
김씨는 전주에서 몇 안 되는 30대 가사도우미다. 올 초 아이를 낳은 뒤 9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전엔 화장품 방문판매를 했는데, 직장여성을 상대하다보니 퇴근시간도 늦어졌다. 애 키우는 데 걸림돌이 돼 오후 5~6시면 끝나는 가사도우미를 택했다. 20대엔 비료회사 사무직으로 일하다가 부모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근무했다. 장사가 잘 안 돼 레스토랑을 접고 옷가게를 차렸으나, 역시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한창 잘 나갈 땐 월 수입이 300~400만원이었으나 지금은 100만원도 안 된다.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려고 지금은 보육교사 자격증을 공부를 한다. “그동안 대선후보들이 말한 공약이 제대로 되는 걸 못 봤어요. 전주에 살면서 대통령 바뀐다고 제 삶이 달라진 건 못 느꼈어요. 누가 되든 큰 관심 없어요.”
△어린이집 원장 박은혜(가명·42)씨
유치원 교사였던 박씨는 결혼해 아이를 낳고 학습지 교사로 일했다. 둘째를 낳은 뒤엔 다시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했고, 지금은 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건 육아였다. 지금은 대학생인 큰애가 어릴 땐 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했다. 맡길 곳이 없어 친척이나 지인들 집에 한달씩 맡기고 일을 했다. 그래도 항상 저임금이었다. “남녀 임금 차별이 너무 커요. 아무래도 여자는 학벌이 좋지 않은 이상 벌 수 있는 수입이 정해져있더라고요. 일하는 시간은 많은데… , 임금격차가 해소되면 좋겠어요.”
△초등학교 급식조리사 송미경(47)씨
고등학교 졸업하고 전자제품 판매원으로 취직했다. 스물넷에 결혼해 아들 둘을 낳았다. 전업주부로 살다가 둘째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급식조리사로 취직했다. “이게 한창 붐이었어요. 이게 국가 자격증 생기고 공무원처럼 처우 좋아진다 이런 얘기 듣고 시작하게 됏어요. 당시 영양사랑 위생사가 있었는데 급식조리사도 몇 년하면 공무원 대우를 해준다해서 다 그런 꿈을 안고 발을 들여놨죠.” 그러나 14년차인 송씨의 월급은 100만원에서 오를 줄 모른다. 송씨 같은 학교비정규직 엄마들의 처지다. “아무래도 저희 처우를 개선해준다는 후보에게 관심이 가죠.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복지가 강화되면 좋겠어요.”
△옷가게 운영하는 홍영신(50)씨
충남 논산에서 18년간 세탁소를 운영했던 홍씨는 10년 전 남편과 헤어지고 고향인 전주로 왔다. 식당 아르바이트 등을 병행하면서 군산 서해대학 아동복지학과를 졸업했다.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따고 어린이집 교사 생활을 2년간 했다. 직접 어린이집을 운영해보려고 했으나 비용 부담으로 접었다. 혼자 두 아들 대학졸업까지 시킨 홍씨는 지난해부터 전주의 여성단체가 운영하는 옷가게 경영을 맡고 있다.
꿈도 많은 일 욕심도 많은 홍씨는 늙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면 좋겠어요. 아니, 제가 사업을 해서라도 여성 일자리를 만들고 싶어요.”
이경미 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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