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새해가 밝았다. 시간은 언제나 무심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을 맞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박근혜 대통령을 염원했던 사람에게 새해는 희망의 설렘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정권교체를 열망했던 사람은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다. 12월19일 18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잘된 일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를 정리해 보았다.
첫째, 대한민국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아버지 덕을 크게 보긴 했지만 어쨌든 첫 여성 대통령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진화했다는 증거다. 이를 계기로 여성 정치인, 여성 시이오가 더 많아져야 한다. 그래야 모든 여성이 경제사회적 약자의 굴레에서 신속히 벗어날 수 있다.
둘째,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선거는 이기는 쪽과 지는 쪽이 있다. 이기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호텔 식당에 갔다가 정장을 차려입은 60~70대 노인들이 환하게 웃으며 무용담을 늘어놓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들은 “좌파의 패인은 이정희와 전교조”, “문재인을 찍은 48% 중 상당수는 종북좌파”, “우리나라는 역시 국운이 있다”고 했다. 수구 기득권층이다. 그러나 이들은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훨씬 더 많은 유권자들이 ‘문재인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박근혜를 찍었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적 변화를 원했다. 그런 사람들도 선거 결과에 흡족해하고 있을 것이다. 문재인이 당선됐다면 불안감에 떨고 있거나 무력감에 빠졌을 사람들이다.
셋째, ‘박정희 향수’를 어떻게든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199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대구·경북과 고연령층을 중심으로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생겨났다. 박정희의 신분이 ‘독재자’에서 ‘산업화의 영웅’으로 슬그머니 바뀌었다. 정치인 박근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이번 선거에서 박근혜가 패배했다면 박정희 향수는 신화로 격상됐을 것이다. 정치인 박근혜는 5년 뒤 그 신화의 부름을 받고 대선에 재도전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게 됐다. 이제 ‘박정희에 대한 감상’이 향수였는지 망상이었는지 박근혜 당선인이 가려주게 됐다. 박근혜가 성공하면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실패하면 박정희 향수는 사라진다.
박근혜 당선인이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그는 경제민주화, 중산층 70% 복원을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박정희의 유산인 재벌중심 성장주의와 관료주의 패러다임을 과감하게 혁파해야 한다.
이른바 ‘조중동’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선거 공약 아닌 국정 공약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국민을 설득하는 것도 중요한 통치”, “복지공약의 우선순위를 따져 접을 것은 접고”라고 주문했다. 약속을 지키지 말라는 얘기다. 조중동이 시키는 대로 하면 박근혜 당선인은 반드시 망한다.
걱정이 있다. 박근혜 당선인의 공주병이다. 이제 여왕병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몇 가지 증상은 이렇다. 첫째, 아버지와 유신의 그늘이 너무 짙다. 그는 31일 의원총회에서 “다시한번 ‘잘살아보세’ 기적을 이루자”고 당부했다. 새마을운동 시대가 아닌데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 무오류 집착이다. 그는 기자들이 질문을 하면 “제가 아까 다 얘기했잖아요”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두 번 묻지 말라는 얘기다. 정치인으로서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셋째, 주변에 제대로 된 참모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이 없는 ‘환관형 보좌진’에 둘러싸여 있다. 넷째, 의사결정 구조가 독선적이다. 특히 인사가 가장 큰 문제다. ‘윤창중 사례’는 반드시 재발할 것이다.
다 좋다. 결점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는 신년사에서 “앞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실천하여 서로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신뢰사회의 토대를 만들겠다”고 했다. 바로 그거다. 말 그대로 하면 성공한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연재성한용 칼럼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