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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취업 막혀 창업, 결과는 빚더미…“대출부담 줄여줬으면”

등록 2012-12-13 20:58수정 2012-12-13 21:42

3일 저녁 9시께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서 휴대폰 판매점을 운영하는 현민국(가명·32) 사장이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인근의 다른 휴대폰 대리점을 바라보고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3일 저녁 9시께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에서 휴대폰 판매점을 운영하는 현민국(가명·32) 사장이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인근의 다른 휴대폰 대리점을 바라보고 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을 발로 뛰며 바닥 민심을 듣는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의 아홉번째 목적지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의 상가 밀집지역이다. 11월 중순 사전 취재를 시작해 11월28일부터 12월7일까지 400여개의 상가가 모여있는 창동에서 자영업자 40여명을 만났다. 이중 20~30대 자영업자 30명을 따로 추려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후 전문가들에게 젊은 자영업자의 위기와 이를 해결할 방안에 대한 자문을 들었다.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은 주 1회 정도씩 연말까지 연재한다.

마산은 독재정권을 두 차례나 무너뜨린 민주화의 성지다. 1960년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던 마산상고 김주열군의 죽음이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1979년 10월 부마항쟁은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부른 신호탄이었다.

마산은 산업화의 첨병이기도 했다. 1970년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된 마산에는 수많은 기업이 터를 잡았다. 마산은 한때 전국 7대 도시이자 경남 제1의 도시였다. 그 절정이었던 1989년, 마산 인구는 50만5614명에 이르렀다.

민주화와 산업화의 뜨거움을 간직한 ‘마산시’는 이제 사라졌다. 90년대 들어 주요 기업들이 마산을 떠났다. 마산은 2010년 진해와 함께 창원시로 통합돼 마산합포구, 마산회원구로 그 흔적만 남았다. 창원시로 통합되기 전인 2009년 마산의 1인당 지역총생산은 1210만원이었다. 경상남북도 43개 시·군을 통틀어 최하위였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거리를 지배하는 것은 그 쓸쓸함이다. 옛 도심의 고색창연을 채워줄 신선한 생기가 없다. 창동은 한때 ‘마산의 명동’이라 불렸다. 창동을 남북으로 가르는 300m 거리에 영화관과 주점, 카페 등이 가득했다. 마산의 명동은 쇠락하는 마산과 운명을 함께했다. 유동인구가 줄면서 영화관 자리엔 교회가 들어섰고, 점포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창동 상권의 번영을 상징하던 고가의 점포 권리금도 반토막이 났다. 저렴한 권리금을 보고 이 거리에 새로 진입한 사람들이 있다. 20~30대의 ‘젊은 사장님’들이다. 젊은 사장들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고 창업 비용이 적게 드는 업종을 선택했다. 휴대전화 판매점이 대표적이다.

청년 창업비용 평균 2800만원
‘스펙’ 비용 4269만원보단 적어
비정규직 되기 싫어 사업했는데…
“안철수 ‘새 정치’ 기대했었죠”

■ “빚만 8000만원입니다” 창동 중심가 300m 거리에만 14개의 휴대전화 판매점이 모여 있다. 창동을 걷다 보면 20초에 한 번씩 휴대전화 판매점을 만날 수 있다. 서로 경쟁하느라 점포마다 천장을 형광등으로 가득 채웠다. 창동 거리에서 가장 밝은 불빛으로 반짝인다. 그 반짝이는 형광등 아래서 젊은 사장들은 신음하고 있다.

“빚만 8000만원입니다.” 현민국(가명·32) 사장은 그래서 난방기를 틀지 않는다. 전기세를 아껴야 한다. 그래도 매달 100만원이 넘는 적자가 난다. 적자는 빚으로 충당한다. 이미 6000만원을 빌린 은행에서는 더이상 대출이 안 된다. 대부업체에 진 빚만 벌써 2000만원이 넘는다. 이자와 원금 상환을 위해 매달 2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아무리 더하고 빼도 현 사장의 사업에는 출구가 없다.

그는 2007년 창동에 휴대전화 판매점을 차렸다. 그때만 해도 휴대전화 판매점은 3~4곳밖에 없었다. 2008년 창동에 2호점을 냈다. 매달 700만원이 넘는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그러나 젊은 현 사장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일거리를 찾지 못한 ‘예비 자영업자’들이다. 돈 버는 업종이라는 소문이 돌면 그들은 벌떼처럼 몰려들어 비슷한 가게를 차린다. 휴대전화 판매점도 마찬가지였다. 경쟁 점포들이 창동 거리 곳곳에 들어섰다. 2009년부터 손해보는 달이 생겼다.

현 사장은 새 경영전략을 수립했다. 다른 업종에 진출했다. 2010년 휴대전화 액세서리 가게를 새로 열었다. 처음엔 장사가 잘됐다. 그러나 그 역시 소문이 돌아 경쟁 점포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투자금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현 사장은 지방대를 11년 만에 졸업했다.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했다. 그나마 지방대 졸업장은 취업엔 별 소용이 없었다. 2006년 대학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휴대전화 대리점이 생각났다. 현 사장이 휴대전화 판매점을 창업한 것은 ‘방어적 선택’이었다.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요즘 현 사장은 비슷한 또래의 두 사람과 제 인생을 비교해 본다. 친척 동생은 연봉 8000만원을 받으며 삼성전자에 다닌다. 친척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현 사장은 그 동생이 부럽지 않다. “제가 올려다볼 나무가 아니잖아요. 제 실력으로 대기업 취업이 가능이나 하겠어요?”

오히려 현 사장은 동갑내기 고등학교 친구가 부럽다. 친구는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달 80만원을 번다. 빚 걱정 없이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게 없다고 현 사장은 생각한다. 요즘 현 사장은 손님이 끊긴 매장에 앉아 취업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한다. 월급 200만원 정도의 회사를 찾고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 그 정도 돈을 줄 회사가 없더라고요.”

■ “장사밖에 못해요. 어딜 취업하겠어요?” 지난달 28일부터 7일까지 창동에서 만난 젊은 사장들 대부분이 현 사장이 거쳐온 일을 겪었다. 고등학교 또는 지방대를 졸업한 20대 시절, 그들은 마땅히 취업할 직장을 찾을 수 없었다. 각종 소규모 점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푼돈을 만진 것이 그들의 유일한 ‘경제활동’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최고의 성공’은 가게 사장님이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돈이 없는 그들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깨알같이 모으고, 이리저리 어렵게 돈을 융통해 투자금이 가장 낮은 업종을 골라 개업했다. 그리고 거대한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다. ‘저학력-아르바이트-창업-파산위기’로 이어지는 굴레에 올라탄 처지가 모두 같았다.

김형국(가명·27) 사장은 2년째 휴대전화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다. 고졸인 김 사장은 휴대전화 판매점에서 6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돈으로 지난해 창동 거리에 자신의 판매점을 열었다. 매달 100만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더 버틸 수 없어 가게를 내놨지만 한 달이 넘도록 인수하겠다는 이가 없다. “비정규직은 되기 싫어서 사업한 건데…. 폼나게 살고 싶었는데….”

강형태(가명·28) 사장도 고등학교 졸업 뒤, 휴대전화 판매사원으로 3년 동안 일했다. 지난 5월 창동에 휴대전화 판매점을 열었다. 매달 적자였다. 창업 5개월 만에 강 사장은 ‘사장님’ 소리 듣는 것을 포기했다. 판매점을 접고 창동을 떠나버렸다. “핸드폰 파는 애들은 대부분 고졸이죠. 장사밖에 못해요. 어딜 취업하겠어요?”

정수환(가명·28) 사장은 2년6개월 전 휴대전화 판매점을 열었다. ‘반짝 호황’도 누렸다. 월수입이 2000만원을 넘긴 적도 있다. 종업원을 6명까지 뒀다. 호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은 종업원을 1명만 남기고 점포를 근근이 유지한다. “한 대 팔아야 5만원 남는데 돈 된다는 소문에 경쟁만 심해져 판매량은 3분의 1로 줄었어요.”

■ “떠밀려 자영업을 선택하는 젊은이들” 청년유니온이 2012년 5월 대학졸업자 35명의 이력서 기입 사항에 들어간 비용을 분석한 결과, 취업 준비를 위한 ‘스펙’에 드는 투자비용은 평균 4269만원이었다. <한겨레>가 지난달 28일부터 7일까지 창동에서 일하는 20~30대 자영업자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평균 창업비용은 2800만원이었다. 비용만 따지면 창업의 문턱보다 취업의 문턱이 훨씬 높은 셈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10월 고용동향을 보면, 20~30대 실업률은 전 세대를 통틀어 최고 수준이다. 20대는 6.9%, 30대는 2.7%로 40대 1.8%, 50대 1.9%, 60대 이상 1.5%보다 높다. 일자리가 절실하지만 일을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진입 문턱이 낮은 자영업에 손을 뻗는다.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신설법인 동향분석 결과’를 보면, 2012년 10월 새로 만들어진 법인은 5639개로 20개월 연속 상승하고 있다. 젊은 자영업자들은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10월을 비교해보면, 15~29살 창업자는 17.5%, 30~39살 창업자는 16.3% 늘었다.

“한국에선 대기업에 취업을 하지 못하면 갈 직장이 마땅치 않다. 영세기업은 미래가 불투명하고 고용안정도 힘들다. 결국 젊은층이 떠밀려 자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경험·자금·인맥이 부족해 성공이 쉽지 않다. 취업에서 나이 장벽이 높아 자영업을 몇 년 한 뒤 노동시장으로 복귀하는 것도 대단히 어렵다.” 금재호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창동의 젊은 사장들은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휴대폰 장사 이제 다 망할 거예요.” 짧은 머리에 동그란 얼굴의 박수만(가명·26) 사장이 말했다. “가게 접어도 취직은 못해요. 고졸이니, 배운 게 있어야 취직하죠.” 창동 거리를 채운 14개의 휴대전화 판매점 가운데 5곳은 가게를 내놓은 상태였다.

정치 관심 별로 없다면서
후보들 채무정책 줄줄이 꿰
문 ‘이자율 25%’ 부작용 우려
박 ‘18조 행복기금’ 현실성 걱정

■ “대출부담 줄여주는 후보 찍고 싶어요” 망해가는 가게를 지키고 있는 젊은 사장들에게도 ‘역할모델’이 있다. “안철수는 아이티(IT)로 자수성가했잖아요.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요.” 2년 전 휴대전화 판매점을 연 고수찬(가명·33) 사장은 안철수 전 대선 후보에게 자신의 희망을 투사하고 있었다. “안철수로 단일화됐으면 찍으려고 했죠.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독재정권을 두번이나 무너뜨린 ‘야도’ 마산의 흔적은 이들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10대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용돈을 벌었고, 20대 들어 하루하루 이문을 따지며 장사하느라 바빴던 젊은 사장들의 정치 의식은 정교하지 않았다. 다만 자기들처럼 작은 사업체를 운영해 자수성가한 안철수 전 후보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특히 이들은 ‘새 정치’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안철수가 좋아요. 뭔가 바뀔 것 같아서. 새 정치를 한다잖아요.” 김형국 사장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다. 온갖 추문이 돌았지만 대선 때마다 나오는 흑색선전이라 믿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추문은 현실이 됐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모두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정치를 가장 짧게 한 사람이 가장 믿음직스러워요.” 김 사장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안 전 후보의 사퇴를 전후로 창동 20~30대 자영업자들에게 지지 후보를 물었다. 사퇴 전 기준으로 30명 가운데 11명이 안 전 후보를 지지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각각 10명과 4명이 지지했다. 지지 후보가 없다고 대답한 사람은 5명이었다. 안 전 후보 사퇴 이후 안 전 후보 지지자 11명 가운데 2명은 박근혜 후보, 5명은 문재인 후보로 지지 후보를 바꿨다. 4명은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답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번듯한 일자리가 없어 영세 자영업으로 밀려난 젊은층들은 변화에 대한 열망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자영업자들의 쇠락은 그 열망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현민국 사장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다면서도 각 대선 후보의 채무정책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문재인 후보는 대부업체 최대 이자율을 39%에서 25%로 줄인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대부업체들이 망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대부업체도 아닌 제도권 밖의 사채를 써야 되지 않을까 걱정돼요. 박근혜 후보는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채무자를 돕는다고 하는데, 무슨 수로 그 많은 돈을 만들겠어요. 현실성이 있을까요?”

현 사장은 카드빚을 막지 못해 사채까지 알아봤다. “대출부담 줄여주는 후보가 있다면 어떻게든 찍고 싶어요.” 현 사장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창원/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매일 가게를 열어도 적자만 남는 젊은 사장들의 이야기 ‘창원 마산합포구 창동의 젊은 자영업자 약전’을 인터넷 한겨레(hani.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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