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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사장이 때리고 월급도 안줘” “포섭보단 포용정책 필요해”

등록 2012-12-03 20:17수정 2012-12-07 13:49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을 발로 뛰며 바닥 민심을 듣는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의 여덟번째 주인공은 전남 목포에서 만난 ‘이주 유권자’들이다. 11월 초 사전 취재를 시작해 11월12일부터 11월30일까지 다양한 계층·성별의 이주 유권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 대통령 후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들었다. 전문가들과 함께 이주 유권자의 열악한 참정권 실태를 개선할 방안도 모색했다.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은 주 1회 정도씩 연말까지 연재한다.
<대선만인보 기사 보기>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
⑧ 목포의 이주유권자 - 우리도 국민이다

유달산은 팔을 뻗치듯 산줄기를 내려 목포 앞 바다를 품고 있다. 높지 않게 솟은 산은 바라보기 푸근하다. 유달산에서 맞는 바닷바람을 리타(27·여)씨는 좋아한다. 그는 목포시민이다. 한국인이다.

리타씨의 고향은 캄보디아다. 봉재공장 미싱사로 일하며 여섯 가족을 먹여 살렸다. 2007년 5월, 케이나씨는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한국 남자와 결혼했다. 택시기사인 남편(45)은 다행히 성실했다. 이후 귀화심사를 거쳐 한국 국적을 얻었다. 젊은 한국인 부부 대부분이 그렇듯, 그도 맞벌이에 나섰다. 목포시 대성동 전남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3년째 통역사로 일하고 있다.

■ 궁핍보다 더한 고통 캄보디아에서 겪었던 궁핍은 면했지만, 한국에서 그는 새로운 고통을 대면했다. 차별이었다. 수많은 이주자들이 리타씨의 입을 빌어 한국인에게 당한 인권침해를 토로했다. “‘사장님이 때렸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한달에 10명은 돼요.”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이주자들이 사장에게 맞고 있는 것인지, 작은 도시에 사는 리타씨로선 짐작조차 어렵다.

“정부가 한국인 사장님들 교육해야 돼요. 이주노동자들 게으르지 않아요. 언어가 달라 말이 잘 안 통하는 것뿐이죠. 그럴 때도 때리지 말라고, 따뜻하게 말하면 된다고, 대통령이 사장님들한테 일러줘야 돼요.”

대다수 이주민이 한국 사회 최하층을 구성하고 있는 현실을 바꿀 사람도 대통령이라고 리타씨는 생각한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외국인 고용조사 결과를 보면, 외국 출신 취업자의 3분의 1은 주 60시간 이상 노동하고, 3분의 2는 월급 200만원도 받지 못한다.

리타씨는 12월19일 대통령 선거를 벼르고 있다. 이주민들이 차별받지 않으려면 좋은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국적을 취득해 귀화한 이주 유권자는 2012년 현재 12만명이다. 이번 대선에 참여하는 재외국민 22만명의 절반이 넘는다. 선관위 등은 재외동포 투표를 위해 적어도 21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주 유권자의 투표를 돕는 예산은 따로 없다.

캄보디아에선 투표용지에 후보 사진과 정당 상징 그림을 함께 표시해둔다. 글을 몰라도 투표할 수 있다. 못사는 나라니까 그렇다고 치부할 일은 아니다. 미국은 ‘연방투표권자권리법’에 따라, 영어를 못하는 유권자수가 해당 주에서 1만명을 넘거나 전체 유권자의 5% 이상일 때 외국어 투표용지를 제공한다. 한국의 투표용지엔 한글만 적혀 있다. 후보자 정보를 알려주는 선관위 공보물도 한글로만 적혀 있다. 지난 4월 총선 때, 리타씨는 후보의 한글 이름을 외워뒀다가 투표했다.

리타씨는 인종 구분 없이 모두를 국민으로 끌어안는 나라를 꿈꾼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쓰고, 한국인과 결혼하고, 한국 문화를 좋아해야만 한국인으로 대할 수 있다는 ‘민족문화주의’ 또는 ‘한국동화주의’ 정책을 바꾸고 싶다. “키 작고 가난하고 시커먼 피부 가진 사람들을 한국 사람들은 무시해요. 이런 문화 바꾸고 싶어요.” 그의 커다란 눈이 반짝였다.

대통령 후보들은 11월 말, 앞다퉈 재외동포 관련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또다른 한국인인 이주 유권자에 대한 공약을 구체적으로 밝힌 후보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캄보디아 케이나씨
“이주노동자 게으르지 않아
따뜻하게 말로 해 줬으면”

필리핀 마리아씨
“투표하러 갔다 그냥 돌아와
한국말 서투르니 도와줘요”

스리랑카 마하델게씨
“임금·퇴근 시간 차별받지만
사장 허락없인 직장 못 옮겨”

필리핀 돈후안씨
“한국 사람 김치 못 버리듯
이주민 문화 존중해주세요”

■ “우리는 슬퍼요” 리타씨가 둥지를 튼 전남에는 이주자가 많이 산다. 행정안전부의 올해 통계를 보면, 인구 10만명당 ‘다문화 가정 인구’ 비율이 1582명으로, 전국 광역시·도 가운데 가장 높다. 그중에서도 목포는 이주여성이 많이 사는 도시다. 2011년 12월 기준으로 822명의 이주여성이 살고 있다. 2008년 무렵부터 베트남·중국·필리핀 등에서 국제결혼을 통해 국적을 얻은 이들이 목포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착은 아직 불안하다.

베트남에서 건너와 목포시 산정동에 자리 잡은 쏨짜이(가명·33·여)씨의 집은 낡은 골목길 끝에 있다. 쏨짜이씨는 이 집을 월 25만원에 빌려 두 아이와 함께 산다. 허름한 문을 열자 내복을 입고 방을 뛰어다니던 아들 정민(3)이가 보였다. 형 정빈(7)이는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외손자들을 돌보려고 베트남에서 잠시 건너온 외할머니(74)는 식은 찌개에 밥을 얹어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커피 드릴까요.” 쏨짜이씨가 수줍게 손님을 맞았다.

그는 2년 전 남편(50)과 이혼했다.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2005년 만난 남편이 정신지체인이라는 걸, 결혼 뒤에야 알았다. 처음엔 서로 언어가 달라 말이 안 통하는 것으로만 여겼다. “애기 아빠가 정신이 좀 아니야. 머리가 좀 왔다갔다….” 남편을 떠올리던 그의 눈동자가 금세 붉게 변했다.

이혼은 했어도 다행히 한국 국적을 땄다. 남편의 잘못으로 이혼하게 되면, 외국인 배우자도 한국에 계속 머물며 귀화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이혼 뒤 근처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루종일 참치 가시를 발라내 한달 130만원을 번다. 한국에서 잘 살아보겠다던 꿈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혼자서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

“우리는 슬퍼요. 잘 모르니까, 한번 만나고 결혼하는데, 결혼상담소는 돈받고 무조건 결혼시키고…. 대통령이 이거 꼭 (해결)해줘야 해요.”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과거의 슬픔보다 장차에 대한 걱정이 더 커졌다. 아이들 걱정이다. “우리는 한국말 잘 못하잖아요. (아이들) 숙제 어떻게 도와줄지 모르잖아요. 받아쓰기나 이런 것. 그래서 걱정이에요.”

지난 4월 총선에서 쏨짜이씨는 이 문제를 잘 해결해줄 것 같은 국회의원을 뽑았다. 첫 선거 참여였다. 지난 8월 국회는 결혼중개업관리법을 개정했다. 결혼중개업자가 배우자의 병력과 직업을 속이고 결혼을 중개했다 적발되면 업체 등록을 취소하고, 3년간 다시 문을 열 수 없도록 했다. 그런 법 개정이 자신이 투표에 참여한 덕분인지 어떤지 쏨짜이씨는 잘 모른다. 다만 이번 대통령 선거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우리 같은 사람들, 도와줄 사람(대통령) 뽑고 싶어요.”

■ 불법체류자가 나오는 이유를 아는 후보 스리랑카 출신 하린수밋 마하델게(34)씨는 쏨짜이씨만큼 대선을 기다리진 않는다. 마하델게씨는 목포에 인접한 대불산업단지의 어느 조선소에서 강철을 절단하는 일을 한다.

불경기 속에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마하델게씨는 사장의 야근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다. 지난달 29일 목포·영암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를 찾은 그는 피곤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날도 마하델게씨는 12시간가량 일했다. “일하다가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꿀 수 있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직장 바꾸기 너무 어려워서 그냥 버텨야 해요.”

현행 ‘외국인근로자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법)은 3년 동안 최대 3차례의 사업장 이동을 허락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론 고용주의 승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이들은 말한다. 월급이 밀리거나 차별을 당하거나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도 사장이 허락하지 않으면 직장을 옮길 수 없다는 것이다. 무단으로 회사를 옮기면 곧바로 불법체류자가 된다.

마하델게씨는 이 제도를 바꾸고 싶다. 그런데 방법이 없다. 그는 2005년 12월 취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왔다가 2010년 한국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 한국 사람들이 곧잘 오해하는 것과 달리, 국적을 얻으려고 한국 여성을 꼬드긴 게 아니다. 버스 터미널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여성이 그에게 말을 걸었고, 이후 급속히 가까워졌다. 한국에 계속 살라는 하늘의 계시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 한국인이 아니다. 귀화의 문턱이 높은 한국에서 그는 한국인 배우자가 있어도 국적을 얻지 못했다. 그의 친구들은 영주권은커녕 한국 거주비자를 받는 것도 어렵다. “(영주권) 심사항목 중에 임금이 얼마나 높은가를 보는 게 있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월급 많이 안줘요.”

이대로라면 그 역시 불법체류자 신세가 될 수 있다. 한국을 떠나야 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일을 배워 숙련 노동자가 되면, 한국 경제 잘 되도록 우리가 일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그냥 내보내려고만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는 뉴스에 등장하는 대선 후보를 살펴보고 있다. 아직 귀화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으니 투표권은 없다. “그래도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많이 나오는 이유를 아는 후보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있어요.” 마하델게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 자신을 드러내는 이주민들 이들 앞에 버티고 선 것은 한국 정부의 ‘동화주의’ 정책이다. 한국어를 쓰고, 한국인과 결혼하고, 한국 문화를 좋아해야만 한국인으로 대할 수 있다는 민족문화주의에 입각해 이주민을 대한다.

에밀리 돈후안(46·여)씨는 그런 한국 땅에서 많이 울었다. 필리핀 출신인 그는 1992년 한국 남성과 결혼한 뒤 한국 국적을 얻었다. 필리핀에서 교육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여성을 한국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방인’ 취급했다. “눈물 참 많이 흘렸어요. 한국 사람들은 피부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요.”

그는 악착같이 한국말을 배웠다. ‘한국말로 나를 자세히 설명하면 편견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먼저 가서 친절하게 말을 붙였어요. 차츰 사람들 태도가 달라졌어요.” 에밀리가 또박또박 한국어로 말했다. 그는 이제 영어, 한국어, 타갈로그어에 모두 능하다.

한국인의 시선에 주눅들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한 결과, 에밀리씨는 목포에서 제법 유명인사가 됐다. 한국인 강사를 고용한 보습학원을 직접 운영하면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틈틈이 자원봉사도 한다. 지역방송에 출연해 이주자들의 삶에 대해 설명하는 일도 있었다. 이제 그는 더 많은 한국인에게 먼저 다가가 자신을 설명하고 싶다.

“한국의 이주민 정책은 ‘포섭정책’에서 ‘포용정책’으로 변해야 돼요. 이주민에게 한국 문화를 주입시키려만 하고 이주민의 문화에 대해선 배우려 하질 않아요. 한국 사람들이 미국 가서 김치 못 버리고 사는 것처럼 이주민 문화도 존중해주는 게 진정한 다문화 사회잖아요.” 이주여성들이 많이 사는 목포부터 그런 사회로 바꿔 보겠다고 에밀리씨는 생각한다. 그는 다음 지방선거에서 지방의회 의원으로 출마할 생각이다.

지난 총선 때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이자스민 의원(새누리당)에 대해선 쓴소리도 했다. “한국 온 지 20년이 된 저도 아직 한국 정치를 잘 몰라요.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이 된 건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요. 지방자치의회부터 시작했어야 하는데…” 에밀리씨는 이주자의 이익을 진정으로 대변하는 풀뿌리 정치인이 되려 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달 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동화주의가 국민으로의 합류를 허용하는 대가로 문화적 정체성 포기를 요구하는 반면, 문화다원주의는 다양한 집단의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한다. 현행 동화주의 정책을 사회통합에 역점을 두는 문화다원주의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인들이 그토록 동경하는 미국 사회의 번영은 문화다원주의 위에서 가능했다. 유색인종이자 이주민의 아들인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연임에 성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캄보디아에서 미싱사로 일하다 이제 한국인이 된 목포시민 케이나씨에겐 한살짜리 아들이 있다. 한국인이자 이주민의 아들인 그가 장차 ‘한국의 오바마’가 되기를 바란다. 대통령까진 아니어도 한국을 위해 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지난달 13일 저녁 7시, 케이나씨는 목포시 대성동 전남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퇴근을 준비했다. 그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웠다. 엄마를 닮아 눈이 큰 아이는 쌔근쌔근 잠들었다.

목포/ 허재현, 박아름 기자catalunia@hani.co.kr


한국인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이주민들의 이야기 ‘목포 이주 유권자 약전’

전남은 다문화 가정의 고장이다. 절대적 숫자로는 다문화 가정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 경기도(12만명)이지만 10만명당 인구비율로는 전남이 1,582명으로 가장 많다.(한국 국적을 가진 다문화 가정 인구수로 한정.행안부 통계.2012) 그중에서도 전남 목포시는 이주여성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다. 2011년 12월 기준 822명의 이주여성이 살고 있다. 베트남,중국,필리핀 등에서 찾아온 이들이 2008년 이후 본격적으로 이곳에 정착해 한국 가정을 꾸리고 있다.

이곳의 이주민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 크고 작은 기대를 품고 있었다. 여기저기 발로 채이며 잡초 취급 받았던 이들의 삶은 새로운 대통령과 함께 바뀔 수 있을까.

△나이지라(가명·30·여·키르기스탄)

나이지라는 지난 29일 목포시 인근 영암군의 한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에 밤늦게 찾아왔다. 그녀는 요즘 우울하다. 특정활동 전문인력비자(E7)로 자신의 비자(E9·취업방문비자)를 바꾸고 싶은데 어려울 것 같아서다. 나이지라는 4년5개월 전 한국에 취업비자로 들어왔다. 대불산업단지의 한 조선소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비자로는 최장 4년10개월까지만 일할 수 있다. 나이지라는 전문인력비자를 받으면 더 체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백방으로 비자 발급 요령을 알아봤지만 이 비자를 받으려면 높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사장님들은 월급을 많이 주지 않아요.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월급명세서에 온전한 월급액을 적지도 않아요. 법무부는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아요.”

나이지라는 한국이 좋다. 키르기스탄의 대학에서 역사학도 공부했지만 그곳에는 직장이 많지 않다. 여기 있으면 한국어도 더 공부할 수 있다.

“불법체류자 되고 싶지 않아요. 제발 한국에 더 있을 수 있는 비자를 주었으면 좋겠어요.”

나이지라는 4년 넘게 한국에 머물렀지만 아직 영주권은 커녕 한국에 더 머물 수 있는 비자조차도 없다. ‘새 대통령이 나오면 이주민들의 체류연장을 쉽게 해줄까.’ 나이지라는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에서 이날 관련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뚜렷한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다.

△마리아(가명·32·여·필리핀에서 귀화 )

마리아(32)씨는 2005년 필리핀에서 결혼 이민 왔다. 하지만 아직 한국어가 서투르다. 지난 4·11총선 때 주민센터 앞까지 가서도 투표를 하지 못했다. 한국에선 어떻게 투표하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그는 아직 한국말을 잘 모르는 이주 유권자다.

“투표하고 싶어서 주민센터 갔어. 물어보면 다 알잖아요. 근데 창피해서 그냥 갔어. 물어보기 창피해서. 한국말 잘 몰라서,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요.”

마리아씨는 수줍음이 많다. 한국말로 무언가를 물어보기 어렵다. 주민센터에는 다문화 담당 직원이 한명 씩 있다. “선거 전날 주민센터 직원이 선거 방법 알려주면 어떻겠나?”라고 묻자 마리아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달 14일부터 19일까지 <한겨레> 설문에 응답한 50명의 이주 유권자 중 62%가 이번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답했고 이중 ‘투표하는 방법을 몰라서’라고 답한 이는 9%였다.

△권숙희(가명·46·여·중국에서 귀화신청)

권숙희(가명·46)씨는 중국 요녕성에서 살다 왔다. 2008년 한국 남편과 결혼했다. 지금은 한국 국적을 따기 위해 대기중이다. 지난 달 13일 오후 그녀는 목포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이날 오전 순창시의 고추장 만들기 체험행사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얼굴이 동그스름한 권씨가 보름달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중국에 땅도 많아요. 그런데 그거 다 포기하고 그냥 한국인이 되기로 했어요. 남편이 내가 어딘가로 떠나버릴까봐 걱정하는 것 같아서…” 권씨의 남편은 목포시의 공무원이다. “그러니까 제가 결혼했죠.” 권씨의 얘기를 듣던 센터 직원들이 까르르 웃었다. 권씨도 함박 웃음을 지었다.

“미국에 가는 한국인은 미국사람처럼 살잖아요. 한국은 아직 안그래요. 다문화라는 말이 사라져야 해요. ‘너 어디 출신이야?’ 이런 걸 꼭 물어봐요. 대통령이 이런 거 신경 써줬으면 좋겠어요.”

권씨는 봄에 신청한 한국 국적 취득 서류만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도톰한 권씨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난정(18·여·중국에서 중도입국한 청소년)

교육과학기술부가 2012년 현재 파악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학생 비율은 전체 학생중 0.7%(46,954명) 정도다. 2014년 정도에는 1%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제 각 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자녀를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다. 각 학교에서는 다문화 가정 학생들을 위한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다.

하마터면 김정수(가명·51·목포시 산정동)씨의 딸 난정(가명·18)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할 뻔 했다. 김씨는 5년 전 한족 여성(48)을 만나 뒤늦은 결혼을 했다. 난정이는 아내와 재혼하기 전에 아내가 키우던 자식이었지만 이제 김씨의 자식이다.

난정이는 2010년 3월 한국에 들어왔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나이였지만 한글을 전혀 모르는 난정이는 목포시에 들어갈 수 있는 학교가 없었다. 가장 가까운 외국인 학교는 1시간여 거리의 광주에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김씨는 딸 난정이를 앉혀 놓고 1년 넘게 한글을 직접 가르쳤다. 다행히 난정이는 한글 공부에 열의가 있었고, 지금은 제법 한글을 읽는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고등학교 일반 교과서를 읽는 건 나정이에게 무리다. 난정이는 올해 초 집 근처의 ㅈ정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난정이 또래는 없고, 어렸을 때 학업을 마치지 못한 성인들이 다니는 일종의 대안학교다.

“난정이는 다행히 집에서 열심히 가르쳐서 고등학교를 보냈지만, 태반의 중도입국 아이들은 어디도 가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을거라예.” 16일 자신이 운영하는 허름한 전파상 가게 의자에 앉아 김씨가 말했다. “일반 고등학교는 너무 시험문제가 어려워서 진학을 못하능기라. 대학 진학하는 애들은 백명중에 한명이나 될랑가. 이런 애들이 나중에 커서 뭐가 되겠능교.”

인재근 민주통합등 의원에 따르면, 다문화 자녀의 올해 학교 취학률은 66.86%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체 취학률 96.1%의 3분의2 수준이다. 그러나 다문화자녀를 위한 예비학교는 2011년 3곳에 그쳤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닳은 교과부는 올해 들어 예비학교를 26곳으로 확대됐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다문화 자녀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련 정부 기관은 파악하지 않고 있다. 목포시교육지원청에서는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만 관리하고 있었고, 목포시내 22개 동 주민센터의 다문화 담당 직원 어느 누구도 학교를 다니지 않는 중도입국자녀 현황을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이주 자녀들이 폭동 일으키고 하는 게 괜히 일어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도 관리를 잘 해야 애들이 나쁜 생각을 안할거예요.” 김씨가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이혁철(가명·39·중국에서 귀화)

목포에 인접한 대불산업단지는 목포 노동자들의 밥줄이다. 하지만 입주업체 75%가 조선관련 기업인 대불산단은 선박 발주 물량이 1년 전에 비해 61%나 줄어 위기를 맡고 있다. 입주업체도 4년전에 비해 40여곳 줄었다. 대불산단을 바라보며 목포에 자리잡았던 귀화자들은 요즘 속이 탄다.

14일 밤 목포시내의 20여평 작은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혁철(39·가명)씨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그는 2008년 한국 여성과 결혼 해 한국에 들어온 조선족이었지만 이제 한국으로 귀화했다. 두돐 지난 아들과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요즘은 생계비 마련이 걱정이다. 그는 대불산단 조선소 하청업체의 용접공이다.

“경기가 너무 안좋아서 일감이 없어요. 다들 군산이나 울산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월 평균 200만원 이상 벌이를 하던 이씨는 요즘 수입이 불규칙해졌다. 최근에는 방광암을 앓아 힘든 일도 하기 어려워졌다.

이씨의 부인 오아무개씨는 지난 해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았다. 남편 이씨의 일자리 지원 등을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이주여성 중심의 프로그램만 있었다. “우리도 다문화 가정인데 왜 남편이 한국인 된 경우에는 별 다른 지원이 없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제 애들도 커가는데…” 오씨는 실망하고 돌아왔다며 한참을 하소연 했다. 다문화가정은 아이 유치원 전액이 무료라는 것에 대해 오씨는 아직 안내받지 못했다.

이씨에겐 나라가 해결해줬으면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아직 중국 국적인) 아버지(65)도 귀화해 제가 모시고 살고 싶은데, 나라가 허락을 안해줘요.” 이씨의 아버지는 현재 외국인 방문 비자를 받아 이씨 집에 머무르고 있다. 이씨의 밑으로 보험가입이 안돼 이씨의 아버지는 매달 의료 보험료 8만2천원을 따로 내야 한다. 이씨는 돈이 없어 몇달 전부터 아버지 보험료를 내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가 그래요. 아버지가 귀화하면 자식은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따는데, 자식이 귀화하면 부모님은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딸 수 없대요.” 사실이다. 우리 국적법은 아직 자식이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전통문화를 좇아가지 못하고 있다.

“저도 엄연히 세금 내고 사는 한국인이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중국인 취급받는 느낌이에요.” 이씨는 답답한 듯 가슴을 쳤다. “대통령 선거가 있지만 저같은 사람 신경 쓰는 후보는 한 명도 없는 것 같아요. 맨날 자기들끼리 싸움이나 하고…” 이씨는 한국인이 되자마자 정치적 냉소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비의 속을 모르는 어린 자식은 아빠의 무릎에 올라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 프로그램만 응시했다.

허재현 기자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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