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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다른 후보 ‘복지’ 알릴 길 좁아…노인들 ‘박정희 향수’ 못지워

등록 2012-11-01 20:18수정 2012-11-01 21:17

⑤ 경북 군위·의성군 노인들의 사회·정치 의식
“MB정부 기초노령연금 잘 실시”
실제 참여정부서 제정한것 몰라
SNS 아예 모른채 입소문에 의지
“문재인 지지” 2% “안철수 지지” 0%
“박정희때 의료보험 등 시작 탓에
그때 향수 박근혜에 그대로 쏠려”
“다른 세력서 진정한 복지 하면
보수로 일관된 인식도 바뀔 것”

* 세계 및 경북 군위·의성군 ‘노인 자살’ 현황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 군위·의성·청송군은 하나의 선거구를 이룬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이 이곳에서 당선됐다. 김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 명예 회복’을 전면에 내걸고 선거운동을 벌였다. 지난 9월23일 김 의원은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일을 사과하더라도 실제 속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가 논란 끝에 당 대변인에서 물러났다. 그를 지역 대표로 뽑은 군위·의성군에서 박정희의 존재감은 강력하다. 이는 그대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이장들이 요망하는 시골노인 정책
이장들이 요망하는 시골노인 정책
지난달 24~25일 <한겨레> 설문에 응답한 군위·의성군 65살 이상 노인 50명 중 72%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반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2%에 그쳤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를 꼽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노인계층은 국가 정책에 대한 순응성이 기본적으로 높은데다, (경북 노인들의 경우) 박 후보에 대한 투표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보은하려는 심리도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이들의 기억은 ‘성장과 복지에 대한 향수’와 관련이 깊다. 농촌경제가 붕괴한 이후, 노인들은 “나라가 보살펴 주던 때”로 그 시절을 회고했다.

“새마을 운동 때는 집도 새로 짓고 도로도 새로 닦고 뭐든 참 좋았지예.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그때로 돌아가겠지예.” 의성군 구천면 용사리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이점순(가명·72) 할머니가 말했다. 갖춰놓은 물건이 거의 없어 가게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허름한 곳을 지키는 할머니의 희망은 “박통을 닮은 박 후보”였다.

윤희웅 실장은 “박정희 시절 의료보험제도 등이 시작된 탓에 노인들은 그를 성장과 복지를 함께 달성한 인물로 여긴다”며 “박근혜 후보가 이런 기대를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 바탕에는 복지에 대한 농촌 노인들의 갈구가 깔려 있다. 의성군 다인면 가원2리 황말순(가명·82) 할머니는 박 후보가 지난 8월 대학생들을 만난 자리에서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여주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봤다. 황 할머니는 “아이들 공납금도 면제해준다고 해서 박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노인정책에 대한 평가를 보면 이런 정서가 더 분명해진다. <한겨레> 설문조사에 참여한 노인 가운데 44%는 “이명박 정부가 노인정책을 잘 운영했다”고 답했는데, 대다수는 그 이유로 ‘기초노령연금제도 실시’를 꼽았다. 2008년부터 시행된 이 제도 덕분에 일정 소득 이하의 65살 이상 고령자는 월 최대 9만4600원(부부는 월 최대 15만1400원)을 받게 됐다.

지난 10월12일부터 운영을 중단한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의 한 병원 응급실.
 의성/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10월12일부터 운영을 중단한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의 한 병원 응급실. 의성/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군위·의성 노인들 가운데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여야를 설득해 기초노령연금법을 제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박근혜 후보 말고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안철수 무소속 후보 역시 ‘성장과 복지’를 중요한 정책 방향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이곳 노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곳 노인들이 복지정책 등 정치 관련 정보를 접하는 경로는 제한돼 있었다. 이번 대선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점쳐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알고 있는 노인은 아예 없었고, 신문이나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는 노인도 드물었다. 이웃에게 전해듣는 입소문이 시골 노인들에겐 절대적이었는데, 경북 군위·의성의 입소문은 박 후보와 관련된 우호적 이야기만 옮기는 듯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보수적인 경북 군위·의성 노인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복지의 약속’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연구위원은 “가난한 보수층이라 해도 고른 정보 습득의 기회를 갖는다면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며 “가장 영향력이 큰 정보는 곧 ‘경험’인데, ‘진정한 복지’ 정책을 펴는 다른 정치세력이 이곳 노인들에게 복지 혜택을 경험하게 해준다면 보수로 일관된 이들의 인식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도움말 주신 분들>

구인회(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권용신(경북행복재단 정책연구팀장), 김동춘(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 김민경(건국대 축산경영·유통경제학과 교수), 김양이(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정주(건국대 국제무역학과 명예교수), 박기창(연세대 원주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박종수(충남대 동물시스템과학과 교수), 서복경(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송만강(충남대 축산학과 교수), 신율(명지대 정치학과 교수), 윤병선(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 실장), 이병오(강원대 농업자원경제학과 교수), 이장희(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근식(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정민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진현정(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한귀영(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한정란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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