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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가난한 노인한테 나라가 얼마나 야속하게 구는지…”

등록 2012-11-01 19:58수정 2012-11-01 22:58

군위·의성군 지난 2년간
자살기도 노인 26명 달해
경상북도 군위군은 전국에서 가장 나이 든 곳이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전체 인구의 39.4%가 65살 이상이다. 고령화 비율에서 전국 1위의 기초자치단체다.

군위군의 어느 읍·면을 가도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은 더디다. 지난 10월23일 군위군 군위읍 한켠에 장이 섰다.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위천이 장터 앞으로 조용히 흘렀다. 쌀쌀한 강바람을 맞으며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나이 든 상인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좌판을 지켰다.

김화정(가명·84) 할머니는 장터 골목의 쓰러져가는 집에 산다. 김 할머니는 더이상 장을 구경하러 나오지 않는다. 할머니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

한평 남짓한 방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품은 것은 전기장판이다. 기름값이 없어 보일러 대신 틀어놓았다. 새해 첫날인 1월1일 밤 9시께 할머니는 전기장판 위에 앉아 수면제 한 움큼을 삼켰다. 함께 사는 다섯살 손주와 아들 강아무개(50)씨는 건넌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목에서 피가 올라오는 식도정맥류에 시달리는 아들은 벌이가 없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근처 공장에서 가끔 버는 돈으로 식구들은 근근이 살았다.

“너무 고생스러버서 ‘죽어삐면 되지’ 하고 딱 눈 감고 먹었어.” 할머니는 한 시간 만에 아들 강씨에게 발견됐다. “어머니가 온몸에 땀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할머니는 다음날 병원에서 깨어났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을 박탈당했능기라. (공무원이) 컴퓨터를 두들겨보더니 ‘사우(사위)가 퇴직금이 생겨서 안 된다’ 카대. 근데 딸내미가 재혼잉기라. 사우한테 눈치보이게 우째 이 노인네 생활비를 달라카긋노.” 아들 내외에겐 일정한 수입이 없지만 정부는 대구에 사는 사위를 부양가족으로 셈했다. “가난한 노인한테 나라가 을매나 야속하게 구는지 몰라.”

지난달 30일 오후 경북 군위군 우보면 어느 마을에서 한 할아버지(85)가 마을 입구에 앉아 볕을 쬐고 있다. 군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달 30일 오후 경북 군위군 우보면 어느 마을에서 한 할아버지(85)가 마을 입구에 앉아 볕을 쬐고 있다. 군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의성군은 전국에서 군위군 다음으로 노인 비율이 높다. 전체 인구의 38.5%가 65살 이상이다. 군위·의성을 통합 관할하는 의성소방서 통계를 보면, 지난 2년 동안 군위·의성군에서 자살을 기도해 응급실에 실려간 65살 이상 노인은 27명이다. 이 가운데 몇명이 사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전문가들은 “음독자살을 시도하면 70~80%가 죽는다”고 말한다.

한국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61살 이상 인구 10만명 가운데 자살자가 1989년 27.0명에서 2008년 61.4명으로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농촌 거주 노인의 자살률이 도시 거주 노인의 갑절 정도 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 사람도 몬 봤대이.” 군위군 효령면 장기2리의 이광부(54) 이장이 말했다. “시골 노인들이 왜 죽을라 카는지 걱정하는 대선 후보가 하나또 없대이.”

군위·의성/허재현 조애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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