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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파서 ‘밥줄’인 마늘농사 접는데 지원 실종…“죽어삘라요”

등록 2012-11-01 20:11수정 2012-11-06 13:46

인구 39%가 65살이상 노인들
박정희 정권 시절 짧은 ‘부흥’
‘농촌 공동화’로 수십년째 쇠락
44% “우울증 앓아” 28% “자살고민”


군 재정자립도 10%…복지 ‘남 얘기’
MB정부서 ‘건강복지타운’ 예산 끊겨
중앙정부 탁상행정에 응급실 문닫아
“시골 보듬겠단 대선후보는 안보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전국을 발로 뛰며 바닥 민심을 듣는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의 다섯번째 목적지는 노인들이 많이 사는 경북 군위군·의성군이다. 10월 중순 사전 취재를 시작해 10월16일부터 26일까지 지역의 노인들을 만나 인터뷰했고, 50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전문가들에게 노인·농촌문제 등에 대한 자문을 들었다. ‘2012 대선 만인보- 국토종단 민심기행’은 주 1회 정도씩 연말까지 연재한다.

■ “가난한 노인한테 나라가 얼마나 야속하게 구는지…”

경상북도 군위군은 전국에서 가장 나이 든 곳이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전체 인구의 39.4%가 65살 이상이다. 고령화 비율에서 전국 1위의 기초자치단체다.

군위군의 어느 읍·면을 가도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은 더디다. 지난 10월23일 군위군 군위읍 한켠에 장이 섰다.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위천이 장터 앞으로 조용히 흘렀다. 쌀쌀한 강바람을 맞으며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나이 든 상인들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좌판을 지켰다.

김화정(가명·84) 할머니는 장터 골목의 쓰러져가는 집에 산다. 김 할머니는 더이상 장을 구경하러 나오지 않는다. 할머니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다.

한평 남짓한 방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품은 것은 전기장판이다. 기름값이 없어 보일러 대신 틀어놓았다. 새해 첫날인 1월1일 밤 9시께 할머니는 전기장판 위에 앉아 수면제 한 움큼을 삼켰다. 함께 사는 다섯살 손주와 아들 강아무개(50)씨는 건넌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목에서 피가 올라오는 식도정맥류에 시달리는 아들은 벌이가 없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근처 공장에서 가끔 버는 돈으로 식구들은 근근이 살았다.

“너무 고생스러버서 ‘죽어삐면 되지’ 하고 딱 눈 감고 먹었어.” 할머니는 한 시간 만에 아들 강씨에게 발견됐다. “어머니가 온몸에 땀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할머니는 다음날 병원에서 깨어났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격을 박탈당했능기라. (공무원이) 컴퓨터를 두들겨보더니 ‘사우(사위)가 퇴직금이 생겨서 안 된다’ 카대. 근데 딸내미가 재혼잉기라. 사우한테 눈치보이게 우째 이 노인네 생활비를 달라카긋노.” 아들 내외에겐 일정한 수입이 없지만 정부는 대구에 사는 사위를 부양가족으로 셈했다. “가난한 노인한테 나라가 을매나 야속하게 구는지 몰라.”

의성군은 전국에서 군위군 다음으로 노인 비율이 높다. 전체 인구의 38.5%가 65살 이상이다. 군위·의성을 통합 관할하는 의성소방서 통계를 보면, 지난 2년 동안 군위·의성군에서 자살을 기도해 응급실에 실려간 65살 이상 노인은 27명이다. 이 가운데 몇명이 사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전문가들은 “음독자살을 시도하면 70~80%가 죽는다”고 말한다.

한국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61살 이상 인구 10만명 가운데 자살자가 1989년 27.0명에서 2008년 61.4명으로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농촌 거주 노인의 자살률이 도시 거주 노인의 갑절 정도 된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 사람도 몬 봤대이.” 군위군 효령면 장기2리의 이광부(54) 이장이 말했다. “시골 노인들이 왜 죽을라 카는지 걱정하는 대선 후보가 하나또 없대이.”

경북 군위·의성군
경북 군위·의성군
군위군과 의성군은 위도·경도상으로 경상북도의 정중앙에 있다. 산 넘어 또 산이 나오는 골골마다 마을을 거느렸다. 안동 김씨, 풍산 유씨, 부림 홍씨 등 뼈대 있는 가문의 집성촌이 이 곳에 터를 잡았다.

양반들이 살았어도 궁벽진 고장엔 이렇다할 산물이 없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0년대, 군위·의성은 부흥기를 맞았다. 수리시설을 갖추면서 의성군 서부 일대의 안계평야가 재정비됐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보급한 ‘통일벼’가 들판에서 자랐다. 마늘도 지역 특용작물로 활발히 재배됐다.

덕분에 촌로들이 돈을 제법 만졌다. 그 자녀들은 서울 등 도시로 유학가거나 그 곳에서 취직해 정착했다. ‘박정희 향수’가 이 곳에 뿌리내린 기원이다.

역설적이게도 짧은 황금기는 길고 긴 쇠락기를 불렀다.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면서 1970년대 중반부터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각각 25만, 8만까지 헤아렸던 의성군·군위군 인구는 현재 의성군 5만여명, 군위군 2만5000여명에 그친다.

이제 군위·의성 곳곳의 마을을 지키는 이는 일거리가 따로 없는 노인들이다. 약 40%가 65살 이상이다. 그들은 자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 “그냥 따라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지” 박정희 정권이 스러지면서 통일벼 열기도 사라졌다. 대신 마늘은 남았다. 한반도 최초의 화산이었던 금성산이 7000만년 전 이 지역 일대에 뿜어낸 화산 회토는 마늘이 잘 자랄 수 있는 영양분을 고루 갖췄다. 군위·의성의 촌로들은 마늘을 재배하며 1980~90년대를 버텼다. 앞으로도 이 고장에서 마늘을 키우는 사람이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난달 23일 밤, 의성군 금성면 만천1리에 사는 박선한(77) 할아버지는 집 앞 허름한 창고에 앉아 거친 손으로 마늘 껍질을 벗겨내느라 바빴다. 밭에 뿌릴 마늘 씨앗을 준비중이었다. 마늘 농사는 대개 10월 말 시작한다. 할아버지의 표정은 어두웠다.

“작년에는 1000평 지었는데, 할매가 몸이 아파가꼬 내 혼자 지어야 돼. 700평으로 줄이야 안 되겠나.” 700평 규모의 마늘 농사로 번 돈을 농사기간으로 나누면 월 90만원 정도다. 2인가구 최저 생계비 94만2000원에 겨우 근접한다. 마늘은 특용작물이라 인건비·비료값 등 투자비가 커서 경작 규모가 수천평은 돼야 이익이 남는다. 몸이 아픈 노인들은 대규모 경작을 할 수 없다.

자식들은 도시에 나가 있어 박씨 할아버지를 도울 수 없다. 농사는 온전히 박씨 부부의 몫이다. 최저 생계비에 불과한 소득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할아버지는 막막하다. 겨울이면 보일러를 틀어야 한다. 달마다 수십만원이 난방비로 쓰일 것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경북 군위군 우보면 어느 마을에서 한 할아버지(85)가 마을 입구에 앉아 볕을 쬐고 있다. 군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달 30일 오후 경북 군위군 우보면 어느 마을에서 한 할아버지(85)가 마을 입구에 앉아 볕을 쬐고 있다. 군위/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의성군의 마늘 생산 가구수는 2007년 5195가구에서 올해 3743가구까지 줄었다. 마늘을 빼면 딱히 내다 팔 것이 없는 고장에서 마늘 농사가 시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경북 산골의 농촌 경제는 큰 위기를 맞고 있는 상태였다.

지난달 18일 저녁, 군위군 우보면 ㅇ리 김필순(가명·77) 할머니는 캄캄하고 얼음장같은 방에 앉아 식은 밥을 떠먹고 있었다. 저녁 바람이 차가웠지만 창문을 열어뒀다. 누가 찾아오는지 살펴보고 싶어서였다. 저녁 내내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는 늘 혼자다.

“몸에서 지렁내 나는데 누가 좋다고 오겠노.” 자식들은 모두 도시에 나가 산다. 할머니는 도시에서 갑갑하게 살고 싶지 않아 시골에서 산다. 남편은 중풍을 앓았다. 2년 전 어느 날 할아버지는 방에서 농약을 마셨다. “몸도 아프고 농사도 못짓게 되니까 맨날 술만 먹고 그카더니 콱 죽어버리더라꼬. 성질이 못됐어.”

할머니도 몸이 편치않다. 허리는 굽었고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 만큼 관절이 아프다. 부엌까지 걸어가는 데도 몇 분씩 걸린다. 캄캄한 밤에 전등을 켜지 않는 건 전기세 때문이 아니다. 허리를 펼 수 없어 스위치에 손이 닿지 않는다. 할머니는 신체장애 3급의 장애인이기도 하다.

“그냥 할아버지 따라 죽어삐고 싶은 생각밖에 없지, 뭐.” 해가 지자 할머니는 몸을 담요 위에 뉘였다. 할아버지가 농약을 먹고 쓰러졌던 그 담요다. 추적추적 빗소리만 고요한 방안을 울렸다.

자살을 고민하는 김필순 할머니의 옆 마을엔 실제로 자살을 실행에 옮긴 노인이 있다. 군위군 효령면 ㄱ리 조상림(가명·70) 할머니는 온 몸을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을 달고 산다. 지난해 8월 어느날 아침, 할머니는 농약을 병뚜껑에 담아 수면제와 함께 들이켰다. 떼굴떼굴 구르던 할머니를 이웃 주민이 발견했다. 할머니는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농약을 마시면 열의 아홉이 사망하지만, 할머니는 살아났다.

“내 하나만 아프면 되는데 할배까지 둘 다 아픈기라. 하나라또 없어져뿌리야지.” 할머니의 남편(78)도 “온 몸이 쑤셔 누워 있지도 못한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할머니는 한 집에 아픈 사람이 둘이나 있는 게 싫었다. 농사라도 지을 수 있다면 복잡한 심사를 잊을 수 있을 텐데 몸이 아파 그것도 힘들다. 객지에 나가 사는 아들 셋은 어머니가 자살을 기도했던 사실을 아직 모른다.

노인들은 누가 자살했다거나 자살하려 했다는 소식을 용케 알아낸다. “나도 ○○할매처럼 죽어삐면 어쩔까 그런 생각을 맨날 해.” 군위군 고로면 ㅎ리 이순자(가명·65) 할머니는 자신의 집 차가운 평상에 걸터 앉아 말했다. ‘○○할매’는 2010년 9월 이 마을에서 농약을 먹고 자살한 독거 노인이다. “배고픈 건 참아도 사람 그리분 건 진짜 힘들대이.” 혼자 사는 이 할머니의 옷에 파리 한 마리가 달라 붙었다. 할머니는 파리를 쫓지 않고 가만 내버려뒀다.

■ “정부가 바뀌어도 약속한 정책은 지켜야” 군위군 고로면 ㅎ리 이아무개(58) 이장은 시골 노인의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참 큰일이라예. 자식들이 부모 봉양하는 걸 당연하게 알고 사신 분들이 이제는 혼자 덜렁 남겨진 거라예. 적응을 못하고 삽니더. 다 우울증 환자들이지예.”

<한겨레>가 지난달 24일과 25일 이틀 동안 군위·의성군 65살 이상 노인 5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응답한 이가 44%에 달했다. “자살을 고민한 적 있다”고 답한 이도 28%였다.

같은 나이의 노인이라 해도 도시보다 시골에 사는 이들이 더 많이 자살한다. ‘경북행복재단’이 최근 연구한 내용에 따르면, 군 단위에서는 지난해 10만명당 45.68명이 ‘고의적 자해’로 사망한 반면 시 단위에서는 36.96명이 자살했다.

권용신 경북행복재단 정책연구팀장은 “통념과 달리 시골에서도 공동체가 붕괴하고 있다”고 말한다. 농촌에는 인정이 넘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농촌도 변하고 있다는 게 권 팀장의 진단이다. 1년에 한두번 찾아오는 자식들도 그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한다.

권 팀장은 “정부가 도시와 시골을 구분하지 않은 채 노인복지 정책을 만들고 있는데, 시골의 특징에 맞는 노인복지제도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거리를 찾기 어려운 농촌의 특징을 고려해 노인정에서 간단한 부업을 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시골 독거노인들끼리 모여사는 공동 가정을 꾸리도록 지원하는 것 등이다.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게 국가의 의무이듯 시골 독거노인이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국가의 의무다. 현행 지방자치제도에선 그 의무를 기초단체가 주로 떠맡고 있다.

그러나 군위·의성군의 재정은 노인 복지사업을 펼칠 여력이 없다. 2009년 기준 군위군의 1인당 연간 지역 내 총생산액은 1902만2000원, 의성군은 1351만9000원에 불과하다. 가장 부유한 울산시의 1인당 총생산액 5400만원의 절반에도 훨씬 못 미친다.

세금을 납부할 젊은 사람들이 없으므로 의성군의 재정자립도는 10.5%, 군위군은 10% 정도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평균인 36%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재정자립도가 10% 미만이면 자체 재원으로 공무원 월급 주기도 벅차다. 군위군 복지담당 공무원은 “정부의 재정지원이 없어 사실상 차상위계층에 대한 복지는 손을 놓고 있다”며 “군 주민 2만5000여명 가운데 약 1000명 정도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의성군청의 몇몇 공무원들은 정부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2007년 5월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성읍에 국비 150억원을 들여 건강복지타운을 건설하겠다고 확정 발표했다. 고령화율이 높은 농어촌 지역에 맞춤한 복지정책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이명박 정부가 예산을 주지 않아 사업은 표류했다. 노무현 정부 때 의성군청 공무원들과 대화했던 복지부 공무원들은 다른 자리로 떠나버렸다. 의성군청의 한 공무원은 “정부가 바뀌더라도 이전에 약속한 정책에는 변화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악화된 것이 또 있다. 군위군 내에서 유일하게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었던 군위병원은 2011년 재정난으로 응급실 문을 닫았다. 지난 10월12일 의성군 3개 병원도 같은 이유로 응급실 문을 닫았다.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농촌 지역 병원들은 레지던트를 응급실 야간당직으로 배치해 정부 지원을 받아왔다. 응급실을 운영할 경우 월 2000만원 안팎의 적자가 불가피한데, 이를 정부 지원으로 메웠던 것이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는 ‘병원 응급실 운영지원 방침’을 바꿨다. 응급실에 당직 전문의를 두지 않는 병원에 대해선 응급실 운영 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응급실마다 전문의를 배치해 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였지만, 중앙정부의 ‘탁상 행정’은 농촌 병원을 오히려 궁지로 몰았다.

시골 병원들은 높은 임금의 전문의를 응급실에 배치하기도, 기존 전문의에게 추가 노동을 요구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시골 병원들은 응급실 문을 닫았다. 의성군의 모든 병원이 응급실을 폐쇄한 지난달 12일 이후 보름여 동안, 의성소방서가 의성군 내 응급 환자를 상주시 등 대도시로 이송한 건수는 87건에 달했다. 이중 몇 명이 이송중 숨졌는지 아직 통계조차 없다.

경북 군위·의성군 노인 정치·사회 설문조사
경북 군위·의성군 노인 정치·사회 설문조사
■ 내가 우째 일을 안 하노. 내 팔자는 와 이라노” 이번 대선에 출마한 유력 후보들은 저마다 청년 일자리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노인 복지, 특히 농촌 노인 복지를 논하는 대선 후보는 아직 없다.

전문가들은 노인복지가 잘 갖춰져야 지역균형발전과 국가경제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정란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인구가 높은 지방자치단체는 세금납부율이 떨어지고 재정자립도가 낮고 그 때문에 지역 투자와 복지 정비를 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며 “지역 발전을 위해서라도 중앙정부가 농촌 노인 복지를 위한 지원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활동인구 중심의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한 교수는 “부모의 복지가 안정돼야 자식들이 마음껏 생산활동에 참여해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고, 자식들 역시 노후에 대한 불안감 없이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하는 노인들이 속출하는 농촌을 방치한 채 지역균형과 경제발전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이야기다.

김양이 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독거 노인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확대 제공하거나, 도시로 나간 자식들이 부모와의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세금 정책 등을 개발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17일 오후, 군위군 고로면 ㅎ리에 사는 김행점(가명·76) 할머니는 마을에서 100여m 떨어진 텃밭에 호박을 캐러 갔다. 할머니는 작은 손수레를 끌었다. 수레를 끄는 할머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웃 주민 정아무개(54)씨가 할머니를 발견하고 말을 붙였다. “아이고 할매, 평생 일만 하다가 죽겠네. 좀 적당히 하소.” 할머니는 쓰게 웃었다. “나라에서 생활비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우째 일을 안 하노. 내 팔자는 와 이라노.”

이번 대선을 치르고 나면 자신의 팔자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김 할머니에겐 없었다. 시골 노인을 보듬겠다는 대통령 후보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수천년간 마을을 지켜온 뒷산의 옥녀봉이 할머니를 내려다 보았다.

군위·의성/허재현 조애진 기자 catalunia@hani.co.kr

지난 10월12일부터 운영을 중단한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의 한 병원 응급실.  의성/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 10월12일부터 운영을 중단한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의 한 병원 응급실. 의성/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응급실이 사라진 마을

군위·의성군에는 응급실을 갖춘 병원이 사라지고 있다. 군위군 내에서 2011년 유일하게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었던 군위병원은 재정난으로 응급실 문을 닫았다. 지난 10월12일 의성군 3개 병원도 같은 이유로 응급실 문을 닫았다.

이때문에 군위·의성군 노인들은 사고를 당하거나 갑자기 병이 나면 대도시로 실려가다 죽을 수도 있다. 의성군 안계면 용기리의 김아무개(63)씨는 지난달 13일 밤 갓길을 따라 걷다 차량에 받히는 사고를 당했다. 김씨의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사고 지점은 의성군 ㅇ병원으로부터 불과 800여m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바로 전날, ㅇ병원 응급실은 문을 닫았다. 김씨는 구급차로도 1시간 걸리는 상주시의 어느 병원에 실려갔으나, 출혈이 심해 결국 숨졌다.

 사인은 뇌부종이었다. 나중에 소식을 전해들은 ㅇ병원장은 “뇌부종은 환자가 쇼크에 빠지지 않도록 빨리 지혈해야 하는데, 응급실에서 바로 처치를 받았다면 돌아가시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는 ‘병원 응급실 운영지원 방침’을 바꿨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근거로 응급실에 당직 전문의를 두지 않는 병원에 대해선 응급실 운영 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응급실마다 전문의를 배치해 의료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였지만, 중앙정부의 ‘탁상 행정’은 농촌 병원을 오히려 궁지로 몰았다.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농촌 지역 병원들은 3년차 이상의 레지던트를 응급실 야간당직으로 배치해 정부 지원을 받아왔다. 병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응급실을 운영할 경우 월 2천만원 안팎의 적자가 불가피한데 이를 정부 지원으로 메웠던 것이다.

 그런데 정부 기준이 바뀌면서 시골 병원들은 야간 당직을 맡을 전문의를 새로 고용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높은 임금의 전문의를 응급실에 배치하려면 그만큼 추가 비용이 드는데 새로 전문의를 구하기도, 기존 전문의에게 추가 노동을 요구하기도 힘들었다. 지난 8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응급의료기관 평가 결과’를 보면, 당직 전문의를 두지 않아 법적 기준에 미달한 지역 응급 의료기관은 전국 313곳 가운데 169곳(54%) 에 달한다.

 결국 시골 병원들은 응급실 문을 닫았다. 의성군 ㅅ병원도 지난달 정부 지원과 연계된 응급실 운영권을 보건복지부에 반납했다. 이 병원 원장은 “적자를 감내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응급실을 운영해왔는데 정부 지원마저 끊겨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며 “이명박 정부는 현장을 중시한다고 하더니 이게 무슨 현장 중시냐”고 말했다. 지난해 이 병원 응급실에 온 심근경색·자살기도 등의 긴급 환자만 300여명이다. 대부분 60살 이상의 노인이었다. 이제 그만한 수의 농촌 노인들은 멀리 떨어진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야 한다.

 의성군의 모든 병원이 응급실을 폐쇄한 지난달 12일 이후 보름여 동안, 의성소방서가 의성군내 응급 환자를 상주시 등 대도시로 이송한 건수는 87건에 달했다. 이중 몇 명이 이송중 숨졌는지 아직 통계조차 없다.

허재현, 조애진 기자 catalunia@hani.co.kr

※삶의 의욕을 잃고 자살하는 시골 노인들과 남겨진 노인들의 이야기, ‘경북 군위·의성 노인 약전’을 인터넷 한겨레(hani.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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