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군위·의성군은 노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이곳의 노인들이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군위군은 39.4%, 의성군은 38.5%다. 전국에서 1,2위다. 이곳의 노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면 전국 시골 노인들의 삶이 보인다. 많은 노인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고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 이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 치료해야 할 병원의 응급실은 정부지원이 끊겨 재정난으로 모두 문을 닫고 있다. 우종두 의성군 다인면 용기5리장(55)는 “이러면 누가 귀농을 하겠냐”며 정부를 질타했다.
△이복례(가명ㆍ65)
이복례씨는 세달 전 왼쪽 무릎 관절 수술을 받았다.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다. 젊었을 때 오랫동안 부산에서 신발 밑창 만드는 일을 하며 하루 종일 서 있었다. 이씨는 이 때 무릎을 혹사한 것 때문에 지금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이 들어 이렇게 아플 것을 대비해 모아 놓은 돈은 없다. 이씨는 군위군 고로면 ㅎ리에 산다. 자식들은 도시에 나가 살지만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루 종일 방에 누워 텔레비전 보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다.
“새벽 3시까지 잠이 안와. 어떤 때는 병원에서 수면제를 얻어와서 먹어.텔레비전 없으면 못살아.”
이씨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다. 국가에서 기본적인 생활비는 준다. 하지만 곧 찾아올 겨울에 쓸 수십만원의 난방비가 걱정이다. 정부가 주는 약간의 생활비로는 역부족이다.
“객지 나가 있는 딸이 한달에 백만원 벌이 하고 있는데 어떻게 내 생활비까지 달라고 하노.” 이씨는 그냥 참고 살기로 했다.
2년 전 이웃 집에서 농약먹고 자살한 ㅇㅇ할머니가 가끔 이씨의 머릿 속에 떠오른다. “앞으로 20년은 이렇게 가난하고 병든 상태에서 살아야 할텐데, 차라리 ㅇㅇ할머니처럼 죽어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아무개(58)
이복례씨가 사는 마을의 이장 이아무개씨는 노인들이 계속 자살 생각을 하고 있는 게 걱정스럽다. 이씨의 마을에 5년 새 2명의 노인이 농약을 먹고 자살했다. 남겨진 노인들의 머릿 속에도 자살고민이 떠다니는 것을 이씨는 잘 알고 있다. 이 마을에 75세 이상 고령 노인 6명이 혼자서 살고 있다.
“정부에서 정말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시골 노인들이 몸도 아프고 가난하게 혼자 살고 있다보니 태반이 우울증 환자입니다.”
이씨는 마을마다 잘 갖춰져 있는 노인정을 활용해 정부가 시골 독거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가난하고 연세 많은 분들에게 정부가 요양사를 보내긴 하는데, 차상위 계층 독거 노인들은 그냥 방치 되고 있어요. 노인정에라도 가서 뭔가 하면 좋겠는데 아무 프로그램 없이 밥먹고 오는 게 다거든요. 노인정을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국가가 지원해주면 좋겠습니다.”
마을이장으로서 이씨는 독거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대선 후보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박정희 대통령처럼 확고한 목표를 갖고 정책을 추진하는 대통령이 나오면 좋겠는데, 요즘 대선 후보들은 말만 하는 것 같아요.”
△송아무개(군위군 우보면·83)
가난은 시골 인심마저 각박하게 만든다. 송아무개 할아버지(83)는 지난 7월 농약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인 송씨가 국가로부터 생활비 보조를 받는 게 동네 사람들은 부러웠다. 부러움은 때로 질투로 표현됐다. 송씨는 동네 사람들과 말다툼을 하던 중 홧김에 농약을 마셔버렸다. 송씨는 ‘죽어 없어지면 동네 사람들의 험담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송씨는 죽지 않았다. 지난 19일 의성군 ㅅ병원 병상에 송씨는 누워 있었다. 농약을 먹으면 식도가 모두 타들어가고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에 시달린다. 송씨는 고통을 고스란히 느낀 뒤 살아났다. 식도가 망가져 말을 할 수 없게 됐다. 어두운 눈빛으로 가만히 병원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송씨의 며느리 구아무개(53)씨가 짧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일도 안하면서 국가에서 생활비 받아먹는다고 동네에서 욕을 많이 먹었어요.” 그러나 구씨의 설명은 딱 거기까지였다. “시골 노인들 다 우울증 환자예요. 꼭 기사로 써주세요. 하지만 저희 아버지 얘기는 쓰지 말아주세요.”
자식은 아버지가 자살을 기도한 게 부끄럽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으로 노인들의 우울증 문제가 해결 됐으면 하는 바람 또한 갖고 있다. 드러내지 않는 상처를 정부가 알아채는 건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독거 노인들의 상처들이 시골 곳곳에 그냥 파묻혀 있다.
△유아무개 병원장(의성군 금성면)
의성군 금성면에는 제법 규모가 큰 ㅅ병원이 있다. 이 일대 주민들은 사고가 터지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돌아간다. 이곳의 병원장 유아무개씨는 정부에 화가 많이 나 있다. 정부의 지원이 끊겨 병원 응급실을 최근 폐쇄한 탓이다.
유 원장은 2006년부터 이곳에서 병원을 운영해왔다. 매일 밤 2~3명씩 찾아오는 응급 환자를 위해 응급실도 운영해왔다. 비싼 인건비와 장비를 감당하느라 매년 1억원씩 적자가 났다. 유 원장은 “어르신들에 대한 도리로 참아왔다”고 했다.
“심근경색과 음독자살 기도 등으로 찾아온 응급환자를 1년에 50명씩 살렸어요. 6년동안 300명의 노인을 살린 겁니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은 할 수 없어요.”
응급실이 폐쇄된 건 보건복지부의 지원 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지난 9월부터 당직 전문의를 두지 않는 병원에 대해선 응급실 운영 지원을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의 한명의 연봉은 1억이 넘는다. 시골 병원의 수익 구조로는 불가능한 금액이다. 하는 수 없이 유 원장은 응급실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홀가분 한 측면도 있어요. 더 이상 적자를 안봐도 되니까. 하지만 지역 주민들 생각하면 죄책감이 듭니다.” 윤 원장은 새로 들어서는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이 시골 병원 응급실 지원 정책을 바꿔주길 기대하고 있다.
허재현 조애진 기자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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