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으로, 16일 총기난사 사건에 희생된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와 함께 일했던 신시아 홉킨스가 18일 버지니아공대 교정에서 그를 추모하고 있다. 블랙스버그/AP 연합
조씨 외할아버지·외삼촌 인터뷰
‘버지니아’라는 소리가 들렸다. 이민 간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총격사건을 저지른 아이의 이름이 들려왔다. 익숙했다. 외손주 ‘승희.’ 그러나 신문에서 본 손주의 사진은 낯설었다. 마지막으로 본 게 15년 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날 때였다. “달려와 한 번 안기는 일도 없고 워낙 말수가 적었던 아이”였다.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23)씨의 외할아버지인 김아무개(81)씨는 18일 “자식들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어렵게 미국까지 갔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다 “일찍 죽었어야 하는데 오래 살다보니 이런 모습까지 본다”며 한동안 말을 잃곤 했다. 사위 조씨와 딸은 서른 다섯, 스물 아홉에 중매로 결혼했다. 늦게 얻은 자식인만큼 두 부부의 자식 사랑은 각별했다. 김씨는 “사위는 그저 새끼라면 어쩔 줄 몰라 했던 사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딸 부부는 미국에 있던 사위 친척들의 초청으로 이민길에 오르기 전까지, 서울 홍은동에서 헌책방을 운영했다. 형편은 빠듯했지만 바지런히 일해 작은 집도 장만하고 잘 살았다. 하지만 당장 떠날 줄 알고 전 재산인 집을 팔았지만, 이민이 8년이나 늦어졌다. 조씨 부부는 결국 있는 돈을 솔솔 까먹다가 몇 푼 못 쥔 채로 비행기에 올랐다고 한다. 조씨 부부에게는 공부 잘 하는 두 자식이 자랑이었다고 외삼촌 김아무개(53)씨는 전했다. “큰 애가 프린스턴 대학에 갔다고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작은 애도 좋은 학교 들어갔다고 하고. 거기다 몇 해 전 자기 집을 샀다고 사진을 보내 왔어요. 얼마나 장하든지.”
조씨 부부는 전화요금이 아깝다며 명절이나 돼야 한번씩 짤막하게 전할 정도로 알뜰하게 살아왔다고 한다. “96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도 못 왔던 누나”라며 “여기서도 고생만 하다 미국에 가서도 일만 했는데….” 감정이 격해진 김씨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들은 조씨 가족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도 산 게 아니겠지.”
이정애 기자, 노현웅 신소영 수습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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