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의 한 레스토랑 손님들이 18일 밤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씨가 정면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엔비시> 방송을 통해 보고 있다. 블랙스버그/AP 연합
언제, 어떻게 준비했나
범행동기 알리려 셀프카메라로 녹화
1차 살해 뒤 태연히 우체국서 소포 보내 16일 아침 시계가 오전 9시를 향하고 있는 시각, 버지니아공대 학생 조승희가 블랙스버그 우체국에 나타났다. 기숙사에서 총을 쏘아 2명을 살해한 지 1시간45분 뒤였다. 그는 14.40달러의 요금을 내고 우체국에 특급 소포를 접수했다. 수신처는 방송국 〈엔비시〉(NBC)의 뉴욕 사무실, 반송처에는 ‘A Ishmael’이라고 써 넣었다. 우편물이 접수된 시간은 9시1분. 45분 뒤 그는 공학관인 노리스홀로 가 출입문을 잠그고, 2층 강의실 4곳을 돌며, “한마디 말도 없이 단호한 표정으로” 총을 쏴 교수와 동료학생 30명을 살해한 뒤 자살했다. 18일(현지시각) 〈엔비시〉가 공개한 조씨의 소포는 병적인 ‘외로움과 증오’로 비뚤어진 조씨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준비를 거쳐 범행을 저지르게 됐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주고 있다.
버지니아 총격참사 재구성
“치밀한 준비에 소름”=그가 3월13일 9㎜권총과 탄약을 구입했고, 이후 머리를 짧게 깎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친구들이 증언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는 적어도 5주 전부터 범행 시나리오를 짠 것으로 보인다. 범행 일주일 전부터는 여기에 맞춰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내면을 보여줄 선언문과 영상을 혼자서 치밀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사건 당일인 16일 아침 1차 범행에서 두 사람을 죽인 뒤, 수십명의 목숨을 빼앗은 2차 범행을 하러 갈 때까지 두시간 반 동안 이 우편물을 빈틈 없이 정리하고 태연하게 우체국에 보냈다. 애초 16일 도착되도록 한 것은 사건이 벌어진 직후 자신의 범행 동기를 세상에 알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버지니아공대 2학년생인 피트 휴즈는 19일 〈워싱턴포스트〉에 “끔찍하다. 이 소포는 그가 얼마나 치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고의적으로 이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2학년생인 크리스틴 플레밍 달은 “노리스홀에서 숨져간 희생자들이 봤을 범인의 모습과 비슷할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뺨을 정면으로 때리는 것 같다”며 〈엔비시〉가 너무 성급하게 조씨의 비디오와 사진들을 공개했다고 비판했다. 〈엔비시〉는 자신들이 이 비디오를 열어본 뒤 곧바로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했으며, 일부 내용을 발췌해 공개했다고 밝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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