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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범행 1주전 비디오 찍어 공들여 편집한 듯

등록 2007-04-19 19:31수정 2007-04-19 19:44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의 한 레스토랑 손님들이 18일 밤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씨가 정면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엔비시> 방송을 통해 보고 있다. 블랙스버그/AP 연합
미국 버지니아주 블랙스버그의 한 레스토랑 손님들이 18일 밤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 조승희씨가 정면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엔비시> 방송을 통해 보고 있다. 블랙스버그/AP 연합
언제, 어떻게 준비했나

범행동기 알리려 셀프카메라로 녹화
1차 살해 뒤 태연히 우체국서 소포 보내

16일 아침 시계가 오전 9시를 향하고 있는 시각, 버지니아공대 학생 조승희가 블랙스버그 우체국에 나타났다.

기숙사에서 총을 쏘아 2명을 살해한 지 1시간45분 뒤였다. 그는 14.40달러의 요금을 내고 우체국에 특급 소포를 접수했다. 수신처는 방송국 〈엔비시〉(NBC)의 뉴욕 사무실, 반송처에는 ‘A Ishmael’이라고 써 넣었다. 우편물이 접수된 시간은 9시1분.

45분 뒤 그는 공학관인 노리스홀로 가 출입문을 잠그고, 2층 강의실 4곳을 돌며, “한마디 말도 없이 단호한 표정으로” 총을 쏴 교수와 동료학생 30명을 살해한 뒤 자살했다.

18일(현지시각) 〈엔비시〉가 공개한 조씨의 소포는 병적인 ‘외로움과 증오’로 비뚤어진 조씨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준비를 거쳐 범행을 저지르게 됐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주고 있다.

버지니아 총격참사 재구성
버지니아 총격참사 재구성
‘무덤에서 보낸 편지’=‘무덤에서 보낸 편지’가 돼버린 이 소포는 애초 16일 당일 도착하도록 계산된 것으로 보이지만, 조씨가 우편번호와 거리 이름을 잘못 써넣어 그 다음날인 17일 오후에야 〈엔비시〉에 도착했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소포는 18일 조씨의 문신 글귀와 비슷한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고, 발신지가 버지니아공대 지역인 것을 발견한 우편물 관리 직원에 의해 뒤늦게 개봉됐다.

〈엔비시〉 쪽은 조씨가 이 우편물을 준비하는 데 적어도 엿새는 걸렸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혼자 카메라 앞에서 ‘셀프 카메라’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비디오에서 그는 때로는 나지막하게 때로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너희’를 향해 자신의 증오를 쏟아내고 있고, 녹화된 내용을 작은 조각들로 공들여 나눠 편집했다.

중간 중간 카메라를 끄기 위해 몸을 굽히는 모습도 보인다. 사진 43장 가운데 두 장은 평범한 학생처럼 웃는 모습을 담았으나 나머지 41장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칼을 목에 대거나 총을 머리에 겨누는 섬뜩한 모습을 담았다. 23쪽 ‘선언문’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수사 관계자는 미국 언론에 “기숙사에서 발견된 (부자와 특권층의 방탕을 비난하는) 메모와 거의 동일하다”고 말했다.


“치밀한 준비에 소름”=그가 3월13일 9㎜권총과 탄약을 구입했고, 이후 머리를 짧게 깎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친구들이 증언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는 적어도 5주 전부터 범행 시나리오를 짠 것으로 보인다. 범행 일주일 전부터는 여기에 맞춰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내면을 보여줄 선언문과 영상을 혼자서 치밀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사건 당일인 16일 아침 1차 범행에서 두 사람을 죽인 뒤, 수십명의 목숨을 빼앗은 2차 범행을 하러 갈 때까지 두시간 반 동안 이 우편물을 빈틈 없이 정리하고 태연하게 우체국에 보냈다. 애초 16일 도착되도록 한 것은 사건이 벌어진 직후 자신의 범행 동기를 세상에 알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버지니아공대 2학년생인 피트 휴즈는 19일 〈워싱턴포스트〉에 “끔찍하다. 이 소포는 그가 얼마나 치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고의적으로 이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2학년생인 크리스틴 플레밍 달은 “노리스홀에서 숨져간 희생자들이 봤을 범인의 모습과 비슷할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뺨을 정면으로 때리는 것 같다”며 〈엔비시〉가 너무 성급하게 조씨의 비디오와 사진들을 공개했다고 비판했다. 〈엔비시〉는 자신들이 이 비디오를 열어본 뒤 곧바로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했으며, 일부 내용을 발췌해 공개했다고 밝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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