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논픽션 : 본헌터①] 나는 누구인가 어둠의 땅이 빛을 만나던 날, 쪼그려 앉은 채로 당신들을 만나던 날
어둠의 땅이 빛을 만났다. 2023년 3월10일 오전, 나의 머리가 땅 위로 솟았다. 이게 얼마 만인가. 몇십년 만의 햇빛인가. 사진 주용성 작가 제공
*편집자 주: ‘본헌터’는 70여년 전 국가와 개인 사이에 벌어진 집단살해사건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이야기다. 아무 데나 버려져 묻힌 이들과, 이들의 행방을 추적하며 사라진 기억을 찾아 나선 이들이 주인공이다. 매주 2회, 월요일과 수요일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다. 종이신문 <한겨레>에도 실린다. 극단 신세계가 글을 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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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앉아 있었다.
얼마 동안 앉아있었냐면, 아주 오래 앉아 있었다. 날짜로 말해야 한다면, 2만6440일 이상 앉아있었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63만4560시간 이상 앉아 있었다. 분으로 쪼개 말하자면, 3807만3600분 이상 앉아있었다. 22억8441만6000초 이상 앉아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숨 막혔는지, 의식할 수 없었다. 쪼그려 앉은 채로 숨이 끊어졌고, 머리 위로 흙이 덮였지만, 자세를 고치지 못했다. 한 번 고치지 못한 이상 내 힘으로는 영원히 고칠 수 없었다. 쪼그려 앉아 흙과 하나가 되었다. 땅과 하나가 되었다. 산과 하나가 되었다.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이 자세로 100년 더 있었을 수도 있다. 1000년 더 있었을 수도 있다. 1만년, 10만년, 100만년 뒤 불현듯 나타나 후대의 고고학자들에게 연구 거리를 제공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거대하고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두개골을 쑤시고 들어와 일찌감치 가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오르던 산 위에서 굴삭기와 덤프트럭, 타워크레인의 소음이 숲을 흔들던 시절이 있었다. 1996년 북쪽으로 340m 지점에 공장이 들어섰다. 2017년 남쪽 470m 지점에 공장이 들어섰다. 나는 두 공장의 가운데 지점에서 철근 아래 처박히거나 배려 없이 버려지는 운명은 피했다.
드디어 나의 전체 윤곽이 드러났다.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앉아있었다. 쪼그려 앉아있었다. 나는 서서히 드러나 바깥으로 나올 준비를 했다. 사진 주용성 작가 제공
기회가 왔다. 산에서 빠져나올 천금 같은 기회. 2022년 4월, 나를 찾기 위해 사람들이 왔다. 일본제 바이오35 4t 굴삭기를 앞세우고 왔다. 굴삭기는 내 옆을 지나 북쪽 산등성이 높은 곳에 올라, 불로초라도 찾으려는 심마니처럼 3일간 땅을 뒤지고 다녔다. 120m에 이르는 구간에서 너비 80㎝, 깊이 60㎝의 땅을 팠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산등성이 높은 곳에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게 문제였다.
굴삭기는 산 아래로 내려왔다. 이번에는 내가 있는 곳 아래 지점에서 35도 각도의 비탈을 올라왔다. 굴삭기 앞에 달린 버킷이 땅을 가볍게 파낼 때 나뭇잎 속에 감추어져 있던 무언가가 걸렸다. 두 개의 어떤 조각이었다. 사람의 조각인가 동물의 조각인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그 답을 얻기 위해 또 다른 사람들이 왔다. 그것은 사람의 조각으로 판명 났다. 두 사람의 허벅지 뼈와 정강이뼈였다. 그 옆에서도 계속 조각이 나왔다. 그들은 이제 나를 찾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하는 듯했다. 조각이 발견된 곳에 현장보전 조처가 내려지고 하얀색과 빨간색이 칠해진 폴대가 꽂혔다. 하지만 그들은 한동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절차를 기다려야 했다. 산에는 침묵이 찾아왔다. 300여일간 그 침묵은 지속했다. 자동차들이 산 아래 왕복 2차선 도로를 무심하게 달렸다.
굴삭기여, 나의 냄새를 맡은 기계여. 그대는 왜 산 높은 곳에 올라 헛물을 켜고 인제야 내려왔는가. 나는 이 낮은 산 아래 언덕에 있었노라. 사진 고경태
사계절이 순환하고 봄이 돌아왔을 때, 다시 그들이 왔다. 이번에는 작정한 듯 매일 왔다. 2023년 3월6일. 산 위로 오른 굴삭기가 내 북쪽 2m 부근에서 움직였다.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땅을 건드리며 45도 각도의 비탈 아래로 내려오는 데 무언가가 걸렸다. 반대편에서는 호미질이 한창이었다. 며칠 간의 작업 끝에 남쪽과 북쪽을 연결하는 어떤 라인이 포착되었다. 2023년 3월10일 오전 9시30분, 그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나는 ‘노출’되었다.
굴삭기의 무한궤도 소음이 잦아들면서 호미질 소리가 아득한 곳에서 점점 가까워졌다. 내 머리 위를 짓눌렀던 두꺼운 표토층이 벗겨졌다. 호미는 그 옛날 나를 덮었던 흙 사이로 부드럽게 침투해 들어왔다. 흙더미가 쓰레받기와 양동이에 실려 버려진 뒤 내 머리뼈가 삐죽 돌출되었다. 나머지 흙들도 떨어져 나갔다. 나의 전체 윤곽이 드러났다. 처음 목격한 사람들은 동굴 속의 불상을 연상했는지도 모른다. 호미는 더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정교한 기구들이 접근해 왔다. 대칼이, 스파출라라 부르는 주걱이 주변을 조심스럽게 긁더니 내 몸 사이사이를 헤집었다. 몸을 채웠던 흙과 모래가 조금씩 빠져나갔다.
멀리 산기슭을 찾아준 이들이여, 나와 내 동료들을 위해 땅을 파헤쳐준 이들이여. 나와 동료들은 당신들을 기다렸노라. 사진 주용성 작가 제공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나는 일어서지 못했다. 이 산을 함께 오른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어둠 속의 땅에 박혀 누운 채였다. 쪼그려 앉아있는 이는 나 혼자였다. 누워있는 이들도 하나씩 형체를 드러냈다. 그들을 가렸던 흙들도 밖으로 퍼 날라졌다. 얼마만의 달콤한 햇빛이던가. 그 빛을 어둠이 밀어낼 시간이 되면 사람들은 돌아갔다. 서너장의 신문지가 나와 동료들을 감쌌다. 그 위에 다시 두꺼운 방수포가 얹혀졌다.
아침 이슬이 맺혔다가 사라지면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왔다. 나와 동료들은 다시 밖으로 몸을 드러내고 작업 대상이 되었다. 낮과 밤이 반복되는 동안 누워있던 동료들이 하나둘 떠났다. 사람들은 그것을 ‘수습’이라 불렀다. 끝내 나 홀로 남았다. 3월28일 오전 11시. 기자들이 나를 만나러 왔다. 누워있다 수습되었던 동료들도 다시 나와서 그들을 맞았다. 카메라 셔터와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처음으로 내가 땅 밖으로 노출되자 사진작가는 조용히 카메라를 들이댔다. 사진 박꽃님 제공
산을 떠나는 날이 왔다. 2023년 3월29일 아침 9시. 나는 일어서는 대신, 분리되었다. 머리뼈가 먼저 내 몸과 이별했다. 두 팔이, 흉부가, 골반이, 척추가, 허벅지가, 정강이가 각자 떠났다가 한자리에 모였다. 나의 팔을 애초에 묶었으나 헐렁해진 전화선도 떨어져 나갔다. 하나였던 나는 플라스틱 모판 위에서 206개로 나누어졌다. 이제서야 누운 것인가. 아니다. 놓인 것이다. 붓의 솔이 머리뼈에서 발가락뼈 끝까지 마디 사이를 간질였다. 흙과 잔여물을 털고 목욕을 할 시간. 무색의 아세톤 용액 속에서 206개의 나는 하나씩 담가졌다. 세척을 마쳤다. 그늘을 찾았다. 바람을 맞았다. 물기를 털었다.
나는 측정되고 감식되고 분석되었다. 머리뼈는 어떠한가. 최대 길이는 170㎜, 최대 너비는 142㎜, 광대사이 너비는 145㎜…. 기초조사가 하나씩 진행되었다. 나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어른인가, 아이인가. 내 키는 몇㎝인가. 또 얼마나 성한 상태인가. 그보다 가장 중요한 질문이 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이렇게 묻기까지 몇년이 걸린 것인가.
73년.
나는 A4-5다.
<다음 회에 계속>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글쓴이 소개>
사회부 기자. 진실화해위원회를 맡고 있다. <유혹하는 에디터>, <굿바이 편집장>, <대한국민 현대사>라는 책을 썼다. 2000년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관한 미국 비밀문서를 최초 보도했고 <베트남전쟁 1968년 2월12일> 한국어판과 일본어판, 베트남어판을 냈다. 베트남전에 이어 이번엔 한국전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