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충남 서산시 갈산동 176-4 봉화산 교통호 현장에서 발굴된 한국전쟁 시기 부역혐의 희생자 유해를 30일 오전 언론에 공개했다. 2구역에서 발굴된 유해들이 2중, 3중으로 중첩되고 뒤엉켜 있는 모습이다. 진실화해위 제공
유해들은 전체 길이 60m의 교통호(참호와 참호 사이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판 호) 안에 머리를 한쪽 방향으로 두고 눕거나 고꾸라져 있었다. 양팔이 뒤로 꺾인 채 신발을 신은 상태로 발견된 유해도 있었다. 일부 구역에서는 유해 다리 사이에 다른 유해가 2~3중으로 쌓인 채 발견되기도 했다.
‘충남 서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에서 73년 전 집단 학살 정황을 보여주는 완전한 형태의 유해(유골) 60구 이상과 유품 등이 발굴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유해 수습을 앞두고 30일 오전 11시 유해발굴 현장을 언론에 공개했다. 진실화해위는 재단법인 동방문화재연구원(원장 이호형)과 함께 이달 10일부터 20여 일간 충남 서산시 갈산동 176-4 봉화산 교통호 인근 현장에서 유해발굴을 해왔다. 부역혐의 사건 관련 유해발굴은 충남 아산에 이어 두 번째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충남 서산시 갈산동 176-4 봉화산 교통호 현장에서 발굴된 한국전쟁 시기 부역혐의 희생자 유해를 30일 오전 언론에 공개했다. 사진은 1구역에서 발굴된 유해로 양 팔이 뒤로 꺾여 있고 교통호 바닥으로 고꾸라져 있는 모습이다. 진실화해위 제공
이번 유해 발굴과 관련한 ‘서산·태안 부역혐의 희생 사건’은 1기 진실화해위가 2007년 1월부터 조사를 시작해 2008년 12월 진실규명 결정한 사건이다. 조사 결과, 1950년 10월 초순부터 그해 12월 말까지 서산경찰서와 태안경찰서 소속 경찰과 치안대, 해군이 서산군 인지면 갈산리 교통호 등 최소 30여곳에서 적법한 절차 없이 집단 학살한 사건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의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은 977명이다. 1기 진실화해위는 최소 1865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갔던 20~40대의 성인 남성들이었으며, 여성들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지난 1기 진실화해위 조사 당시 참고인 다수는 읍·면 단위마다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서산경찰서의 ‘신원기록심사보고’를 통해 당시 총살 목격자와 주검 수습자 등과 함께 현장 조사 중 발견한 지역이기도 하다. 1기 진실화해위 보고서를 보면, 이곳 교통호에서의 총살은 서쪽 풍전리 방향에서 3회, 동쪽 갈산리 방향에서 5회 목격됐다.
60m 구간을 총 3개 구역으로 나누어 진행한 이번 발굴에서 유해는 60~68구 나왔으며 구역별로는 1구역 13구, 2구역 30~35구, 3구역 17~20구다. 유해는 폭과 깊이가 각각 1미터 이하인 좁은 교통호를 따라 빽빽한 상태로 발굴됐다. 굵은 다리뼈들뿐만 아니라 척추뼈와 갈비뼈까지도 완전하게 남아 있는 상태로 나왔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충남 서산시 갈산동 176-4 봉화산 교통호 현장에서 발굴된 한국전쟁 시기 부역혐의 희생자 유해를 30일 오전 언론에 공개했다. 2구역에서 발굴된 최소 30구 이상의 유해가 서로 뒤엉켜 있다. 진실화해위 제공
이들 유해를 감식할 예정인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는 발굴지의 유해 상태와 관련해 “유해의 머리뼈가 한쪽 방향으로 누워있는 걸로 볼 때 교통호 밖 산기슭에서 처형한 뒤 교통호 안에 집어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 교통호 안에서 M1 탄피들이 발견됐지만, 그 양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도 교통호 밖에서 총살이 집행된 정황을 보여준다고 했다.
“들개가 시신 물고 내려와 재매장” 증언 뒷받침
박 교수는 또한 “유해의 윤곽이 비교적 뚜렷한 편이지만 머리 안에 흙이 들어가 있어 수습 과정에서 많이 부서지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했다. 진실화해위는 일부 시신이 위아래 중첩된 상태로 발견된 것과 관련해 “당시 학살이 진행된 후 마을 들개가 시신을 물고 마을까지 내려와 마을 이장이 청년들과 교통호 주변 시신을 교통호 안에 재매장했다는 증언을 뒷받침해 준다”고 밝혔다. 이번 유해 발굴에서는 M1 탄피와 함께 흰색 4구 단추와 고무줄 바지 끈, 반지 등 유품이 발견됐다.
이날 현장에 온 정명호(74)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전국유족회 서산지역 회장은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다. 어떻게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사람을 개 끌 듯이 산에 끌고 와 죽여놓고 전부 짐승의 밥이 되게 만들 수 있느냐”면서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 후속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2기 진실화해위는 실효성 있는 유해발굴과 위원회 종료 이후, 유해발굴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유해매장 추정지 실태조사 및 유해발굴 중장기 로드맵 수립 최종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를 근거로 전국 6개 지역 7개소를 선정해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부역혐의 희생자들이 묻힌 아산시 배방읍 성재산과 염치읍 백암리 새지기2지점에서는 각각 62구와 2구가, 국민보도연맹 희생자들이 묻힌 경남 진주시 관지리 야산에서는 20구가 발굴된 상태다. 역시 국민보도연맹원이 희생된 충주 호암동과 안성시 보개면 기좌리에서는 유해가 발굴되지 않았고, 대구형무소 재소자들이 희생된 대구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에서는 지난 24일부터 발굴을 시작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충남 서산시 갈산동 176-4 봉화산 교통호 현장에서 발굴된 한국전쟁 시기 부역혐의 희생자 유해를 30일 오전 언론에 공개했다. 유해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3구역 유해발굴 전경으로 최소 17구가 발굴됐다. 진실화해위 제공
서산/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