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처리에 관여한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일 구속됐다. 서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최고 책임자로 꼽힌다. 앞서 이 사건으로 구속됐던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이 잇달아 석방된 상황에서, 이들의 상급자이자 문 전 대통령 핵심 참모에 대한 검찰의 구속수사 승부수가 성공한 것이다. 다만 검찰은 구속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서 전 실장이 이 사건 “최종 책임자”라고 밝힌 상황이다. 애초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수사 수위를 크게 낮춘 셈이다.
김정민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4시55분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허위공문서작성 등 혐의를 받는 서 전 실장의 구속영장을 검찰에 내줬다. 김 부장판사는 “범죄의 중대성 및 피의자의 지위, 관련자들과의 관계에 비추어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라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전날 10시간 넘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던 서 전 실장은 바로 수감됐다.
검찰은 윤석열 정부 출범 두 달 뒤인 지난 7월 국가정보원을 시작으로 감사원, 국방부, 통일부 등의 고발과 수사의뢰, 자료협조 등 대대적 지원을 받으며 5개월째 이 사건 수사를 해왔다.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도 지난 9월부터 석달 가까이 진행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2020년 9월22일 서해 사건이 발생하자 이튿날 새벽 열린 관계장관회의에서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과 공모해 관련 첩보를 삭제하고, 대응 및 수사를 맡은 국방부‧해경 등이 월북 취지의 보고서나 보도자료 등을 작성하게 했다고 의심하며 수사해 왔다. 서해 사건으로 남북관계 개선 노력이 무산되지 않기 위해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려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최종 결정한 사안이기 때문에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물론,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수사 범위에 포함됐다. 대북관계는 극도로 예민한 안보사항으로, 대통령 통치행위에 가장 근접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앞서 이 사건을 수사의뢰한 감사원 역시 문 전 대통령 서면 조사를 시도하기도 했다.
당사자들은 혐의를 전면 부인해 왔다. 서 전 실장 쪽은 “관련 첩보를 여러 부처가 공유하고 있었고 200~300명이 넘는 인원이 이를 알고 있었던 상황에서 은폐 시도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을 상대로 당시 문 전 대통령 보고·지시 상황을 집중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 조사 필요성을 검토할 수도 있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서 전 실장 구속영장 청구에 반발하며 “서해 사건은 대통령이 최종 승인자”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검찰이 이미 이 사건의 “최종 결정권자이자 최종 책임자”로 서 전 실장을 지목한 상황이어서 수사 확대는 제한적일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 전날 이원석 검찰총장은 “안보 사안을 정쟁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문 전 대통령 비판에 대해 “수사팀도 충분히 절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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