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아이랑 부모랑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설 명절이 지나면 부모들의 걱정이 더 는다. 친척들이 아이에 대해 던진 말들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이가 고집이 세다거나 부산하다는 등의 말은 마치 부모에 대한 지적처럼 느껴져서 여간 부담되는 게 아니다. 그런 와중에 어느 집 아이가 공부를 잘한다거나 어떤 상을 받았다는 자랑이 나오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상을 받은 것은 아이인데 마치 그 집 부모가 받은 듯 느껴지고, 아이가 상도 받지 못한 자신은 문제인 듯 느껴지니 명절 뒤 부모들은 새삼 각오를 다지게 된다. 그 각오의 결과물은 물론 사교육과 잔소리의 강화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친척들끼리라도 좋은 일을 드러내는 것을 삼가게 되고, 어르신들도 덕담조차 하기가 조심스럽다. 우리들 마음이 불과 10여년 만에 이토록 각박해졌다.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느끼기에는 그 각박해지는 속도에 점차 가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점점 괴로워하고 부모들은 점점 힘들어진다. 이게 정말 사람이 사는 모습일까?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방학이라도 애들이 다 학원에 가서 같이 놀 친구가 없다고 하고,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둔 미용사는 내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아이가 특목고를 못 갈 것 같으니 필리핀이나 중국으로라도 보내야겠는데 괜찮겠냐고 상의해 온다. 가족이 함께 나누는 시간, 또래들과 함께 어울리는 시간의 추억은 그렇게 사라져도 좋은, 불필요한 것들인가? 멈추지 못하는 폭주기관차가 되어 버린 지금의 교육 현실에서 아이들의 행복을 고민하고 상담하는 일은 그저 액세서리처럼 느껴진다. 폭격이 가해지는 전쟁터에서 소독약 하나 들고 뛰는 의무병이 된 듯한 기분이다. 물론 소아정신과는 대호황이다. 그럼에도 지난 연말 송년 모임에서 만난 동료 소아정신과 의사들은 대부분 불황기의 그 시절로 돌아가더라도 이건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이엠에프 금융위기와 그 뒤의 신자유주의 분위기, 다시금 닥친 세계 금융위기. 이런 현실이 일으키는 공포는 결코 만만치 않다. 그러다보니 눈 밝은 부모들조차 눈이 흐려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자존감을 중심으로 교육하는 부모들, 경쟁을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교육적 성취를 이뤄내는 선생님들. 이런 사례들이 적지 않다. 이제는 동네에서, 학교에서, 지금의 교육은 아니라고 함께 말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공포와 불안을 이기려면 연대가 필요하다. 서로를 북돋우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지금의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나누자. 뜻이 맞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교육을 함께 실천하자. 이런 풀뿌리의 실천이 우리의 왜곡된 교육을 바로잡고 암흑 속에 빠진 우리 아이들의 행복을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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