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에릭 에릭슨은 하버드대 교수로 인간 발달 이론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정신분석가다. 그는 인생의 일곱 단계마다 넘어서야 할 발달 과제를 정식화했는데, 그에 따르면 초등학생 시기의 발달 과제는 ‘근면성과 열등감의 대립’이다. 이 기간에 아이들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매진하는 것과 자신은 뭘 해도 안 될 것이라는 열등감의 양극단에서 갈등을 겪는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냈는지에 따라서 근면성이 열등감을 이길 수도 있고 반대로 열등감에 의해 근면성이 압도될 수도 있다. 결국 인생 전체를 끌고 가는 엔진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질지가 이 기간에 결정된다.
부모가 아이들의 행동을 못미더워하고 실수만을 짚어내면서 꾸짖을 경우 아이들은 열등감에 휩싸이기 쉽다. 반면 아이에게 숨어 있는 능력을 발견해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부모를 만나거나, 기회를 주면서 재능을 조금씩 키우도록 하는 교사를 만난다면 아이는 높은 근면성을 획득할 수 있다. 초등학생 때 아이가 성취할 과제가 적지 않은데, 그 과정에서 아이는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며 능력을 만들어 가고 그 과정을 통해 기본적인 성격 경향을 형성한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다. 어떻게 실패를 경험하는지가 중요하다. 성공이 아니라 어떻게 성공을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지지를 받는 환경에서 실패하면 상처가 크지 않다. 반면 실패 뒤에 주어지는 가까운 사람으로부터의 비난은 실패를 열등감으로 변화시킨다. 성공을 경험하지 않는 아이는 없다. 다만 성공을 누구나 다 이루는 것, 별로 중요하지 않은 분야의 것이라고 치부한다면 아이는 더 강한 근면성을 키울 기회를 얻지 못한다.
요즈음의 학교문화는 아이들의 근면성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어린 시절부터 요구되는 과도한 지적 성취와 잦은 평가는 아이들의 자신감을 흔들고 있다. 아이들은 모두 발달 속도에 차이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평가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능력의 전체를 평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시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아이에게 반복된 실패의 경험을 갖게 해서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인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수학 문제를 실수 없이 풀어내는 것, 영어 단어 하나를 외우는 것은 너무나 의미가 작다. 초등학교 기간에 아이들은 인생을 살아갈 엔진을 만들고 있다. 그 엔진은 아이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서 얼마나 자신감을 가질지, 얼마나 열심히 해보려는 마음을 가질지를 결정한다. 아이에게 능력을 키워줘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능력은 억지로 우겨서 아이에게 집어넣을 것이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찾아서 먹어야 아이는 자랄 수 있다. 나무가 자라길 바란다면 물을 줘야지, 커지라고 잡아 뽑아서 될 일인가?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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