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아이랑 부모랑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아이들이 바라는 것이 뭔지를 살펴보면 요즘 아이들의 삶이 어떤지 분명히 느껴진다. 아이들에게 설날이 기다려지는 이유를 물어보면 첫번째는 세뱃돈이고 다음은 학원을 쉬는 것이고 세번째는 각종 인터넷 게임들의 설날 이벤트라고 답한다. 무엇보다 돈이 가장 중요하고, 공부 스트레스에 늘 시달리며 그 탈출구 중 으뜸으로 게임을 꼽는 것이 요즘 아이들 모습이다.
설은 새로운 해를 맞이해 가족이 모두 모여 조상님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한 해 동안 잘 지낼 수 있도록 기원하는 날이다. 함께 모여 차례를 지내다 보면 우리 모두는 뿌리가 있으며 여러 나뭇가지 중 하나로서 다른 가지들과 어울려 지내야 함을 느끼게 된다. 시대가 변했지만 아이들이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배우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자신을 깊은 뿌리를 가진 나무의 작은 싹으로 느끼는 아이라면 허공 속에 나부끼는 잎사귀처럼 느끼는 아이보다 더 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다.
이번 설에는 조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 집안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이야기해주자. 종중에 보관돼 있는 자료를 보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줄 재미있는 조상들의 이야기 한 두 가지쯤은 있기 마련이다. 족보에는 아이가 본보기로 삼을 만한 위인도 있다. 족보까지 보지는 않더라도 가까운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이도 흥미를 갖는다.
세뱃돈도 부모들의 고민거리 중 하나다. 돈의 주인은 누구이며 돈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물론 세뱃돈의 주인은 아이들이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경우 아이에게 온전히 맡길 수는 없다. 이 경우 주는 어른들이 미리 아이에게 잘 보관하고 나중에 필요할 때 쓰라고 말해주는 것이 좋다. 부모는 설날이 되기 전에 미리 아이에게 세뱃돈 중 얼마까지는 자율적으로 쓸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자. 아이가 자유롭게 쓰는 금액 외에는 아이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어 보관하는 것이 좋다. 이왕이면 아이와 함께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자. 저축한 돈은 미래의 어느 시점이 돼야 쓸 수 있다고 못 박아 두고 부모가 손을 대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키는 것이 좋다.
설날에 친척 집에 가는 것을 꺼리는 아이들이 많다. 대부분 부모가 친척집에 간 사이에 실컷 인터넷 게임을 하려는 속셈이다. 설날에는 이벤트가 많아서 레벨을 높이기에 적기이다. 게임회사의 상술에 넘어가지 않도록 미리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을 말해주자. 그래야 아이가 공연한 기대를 갖지 않는다. 평소보다는 조금 더 시간을 주되 가족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게임에 몰입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설날도, 어떤 세시풍속도 다 그저 그렇게 보내는 것이 요즘 세태다. 하지만 좀더 준비하는 부모라면 설이 지나고 나서 아이가 조금 더 자란 모습을 볼 수 있다. 거꾸로 엉망으로 보낸 설은 부모 자식 사이를 좀더 벌려 놓는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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