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서천석의 행복 비타민 /
왕따 문제를 다룰 때면 흔히 피해 아동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왕따로 인한 상처가 피해 아동들의 인생 전체에 걸쳐 영향을 주듯 가해 아동들의 왜곡된 인격구조 역시 그 아이들의 인생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왕따 가해 아동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왜곡되고 과장된 자존심을 가진 경우가 많다. 몸은 크지만 마음은 허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은 현실에 맞지 않게 부풀어 오른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왕따를 주도한다. 다른 사람과 마음속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그저 필요성에 의해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친구는 내가 심심하면 같이 놀아주는 사람이며, 아빠는 나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다. 이런 양상은 나이가 들어서도 지속되며, 자녀에 대해서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을 형성하지 못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만남 자체에 의미가 있는데, 왕따 가해 아동들의 대인 관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가 중심이다. 그런 의미가 없는 경우 이들은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지배하는 행위에서 만족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할 때의 쾌감을 통해 스스로의 허황된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왕따 가해자들을 만드는 데는 사회문화적인 가치관이 적지 않게 영향을 끼친다. 또한 기질적으로도 지배 성향이 강한 아이들이 왕따 가해자로 발전하기 쉽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성격이다. 왕따 가해자를 만드는 부모의 양육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애정과 관심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서 자유를 너무 많이 허용한 경우다. 연구 결과를 보면 왕따 가해 아동들의 70%가 생애 초기에 부모와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고 안정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체벌이나 심한 언어적 폭력을 통해 훈육을 한 경우다. 훈육에 폭력을 사용할 경우 아이는 폭력이 목적만 분명하면 정당하다는 것을 배우며, 폭력을 통해 문제를 푸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아이가 왕따를 시키고 있지 않은지에 대해 부모들은 좀더 진지하게 아이와 이야기해야 한다. 아이들은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잘난 척 하거나 다른 친구들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또는 툭하면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이르거나 내숭이 심하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이러한 친구의 모습이 좋은 모습이 아닌 걸 네가 알고 있어서 엄마는 기쁘다고 먼저 말해주자. 하지만 친구가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그 친구를 따돌리는 것은 좋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친구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자유지만, 다른 아이들과 함께 그 친구를 따돌리고 괴롭힐 자유는 없다. 만약 이런 충고에도 불구하고 왕따를 멈추지 못한다면 그때는 아이의 문제를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하는 시기임을 기억해야 한다.
서천석 소아정신과 전문의·행복한아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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