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
교생 실습을 앞둔 대학 4학년 때, 전공 과목을 가르치던 선생님께서 교생실습 숙제로 ‘교단 일기’를 써오라고 했다. 쉽지는 않았지만 검사를 하지 않는 숙제라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하루 일기를 적었다. 처음 초등학교란 곳을 경험하면서 느낀 점이나 아이들과 만났을 때의 기쁨 등을 예쁜 일기장에 가득 적었다. 반 아이와 주고 받았던 편지도 일기장에 붙였더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3주 동안 실습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니, 선생님께서 “여러분이 쓴 교단일기가 여러분의 10년, 20년, 평생을 밝혀주는 등대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셨다.
그때 잘 들인 일기 쓰는 습관이 교직 생활 3년차가 된 지금도 나를 이끌어 주고 있다. 생각컨대 나는 글을 쓰면서 수없이 희망을 찾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부족한 나도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은 꼭 웃어야지.’ ‘그래, 아이들이 희망이다.’ 이런 마음들을 찾아서 계속 반성문 비슷한 글들을 한 인터넷 사이트에 적어 왔다. 그러던 중에 <한겨레>와도 연이 닿아 어설픈 글들을 신문에 싣게 됐다.
지난해 어느 날, 우리 교실로 구치소에서 보낸 편지 한 통이 왔다. 누군지 전혀 모르는 중년 학부모였다. 그 분은 예전에 한 건설회사를 운영했고 서울 어느 학교의 운영위원장까지 지낸 분인데, 우연한 사고로 구치소에 수감됐다고 했다. 그분에겐 꼭 우리 아이들 또래의 예쁜 딸이 있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됐다는 것을 비밀로 한 채 미국에 있는 누님께 딸 아이를 맡겼다고 했다. 혼자 구치소에서 변론서를 작성하고 있다가 딸아이 걱정에 별별 걱정을 다 하던 차에, 신문에 난 내 글을 읽고 용기를 내 글을 썼던 것이다. 편지의 요지는 미국에 있는 딸 아이에게 멋진 여성으로 자랄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전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뭉클해 그분께 답장도 보내고, 딸 아이도 우리 반 아이들과 친구를 맺어주고 학급 문집도 한 권 보내주었다.
너무 바빠 더 잘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겨울방학 때 학교로 전화가 왔다. 그분이었다. 덕분에 용기를 얻어 무죄를 선고받고 출소했다고, 아이와 함께 꼭 찾아뵙겠다고 하셨다. 전화를 받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내 작은 마음이 그 가족에겐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내가 더 고마워 어쩔 줄을 몰랐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일기 검사가 아이들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진실한 일기 쓰기를 강조한다. 만약 아이가 일기 쓰는 것을 누군가 지켜본다고 생각해 부담을 갖는다면 인권 침해가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가 진실되게 일기를 쓰면서 삶의 희망을 발견하고, 힘차게 살아나갈 에너지를 얻는다면 그 일기는 단순한 공책이 아니라, 살아있는 ‘희망의 기록’일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일기는 접어 두거나 다른 종이로 덧대서라도 꼭 쓰라고 격려한다.
오늘도 교단 일기를 썼다. 그 속에 아이들의 작은 마음과 나의 세상 사는 고민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리고 힘든 오늘에 희망 한 줌을 가득 채웠다. 이렇게 나도 누군가에게 하나의 희망이 된다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교사라고 생각한다. 나의 손을 거쳐가며 열심히 일기를 쓴 나의 아이들이 세상의 작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정여름/대구 용계초등학교 교사 ozoazoayo@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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