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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나 만난 너희들, 억수로 복 받은거야

등록 2007-03-11 17:37

주순영/삼척 진주초등학교 교사
주순영/삼척 진주초등학교 교사
선생님이 말하는 교실 안팎

많은 소식통들이 ‘춥지 않은 겨울에 이어 한 달이나 빨리 봄이 왔다’고 알렸다. 그러다 덜컥 꽃샘 추위가 찾아왔다. 사위어가는 겨울 끝이 섣불리 봄에게 자리를 내주고 싶지 않았나 보다. 새출발을 하는 아이들에게 화사한 봄옷을 입혀 보내려고 했을 학부모들은 철없이 찾아온 추위가 마냥 야속했을터다. 그래도 봄볕은 따사롭다.

교실 남쪽으로 난 창에선 노란 봄 햇살이 들어온다. 미술 시간, 동무와 소곤거리는 아이, 그림에 집중하는 아이, 생각에 잠긴 아이 등이 밝고 환한 햇살 아래 드러난다. 이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골라 들려주었다. 노래가 교실 안 아이들 사이로 흐른다.

햇볕이 따끈/ 얼음장 풀리고// 졸졸졸 시냇물/ 고기들은 헤엄친다.

햇볕이 따끈/ 땅덩이 풀리고// 새파란 보리싹/ 싱싱하게 자란다.

햇볕이 따끈/ 추위 홱 풀리고// 아기들은 자꾸만/ 바깥으로 나~간다.


(권태응이 쓰고 백창우가 만든 노래 <봄날>)

올해 정라초등학교로 학교를 옮겼다. 작년까지 근무했던 진주초등학교는 내가 어릴 적 다녔던 곳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 아이들은 작고 초라했던 이 바닷가 학교 아이들을 ‘정라 꼴레미’라고 놀리며 쳐주지도 않았다. 물론 그쪽도 우리를 ‘진주 꼴레미’라고 놀렸지만 말이다. 그새 세월이 20년쯤 흘러, 낮은 땅에 지어진 진주초등학교와 그 주변 집들은 몇 번의 큰 수해를 입고 몇몇은 동네를 떠났다. 반면 지대가 높은 정라초등학교는 언덕에 있어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학교 주변으로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내년이면 삼척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학교가 될 것이란다.

이제 이곳에 새 둥지를 튼다. 바람대로 4학년 학급담임을 맡았다. 지난해 6학년에서 올해는 4학년을 맡으니 또 새롭다. 1·2학년처럼 여러 번 말하지 않아도 잘 듣고, 아직 내 몸짓과 소리에 눈길을 모아 보낸다. 순진하고 착하다. 이런 아이들이 왜 6학년만 되면 그렇게도 몸부림을 치는지. 자기를 찾아가는 용트림인지, 어린 아이의 허물을 벗는 성장통인지 모를 그 반항, 절규, 부정의 몸부림은 안타까우면서도 처절하기까지 하다.

올해는 사내 아이 열아홉과 계집 아이 열다섯을 품게 됐다. 일주일이 채 안됐지만 벌써 아이들은 저마다의 존재를 드러낸다. 아침마다 늦잠 잤다며 느긋하게 교실로 들어오는 넉살 좋은 아이, 편식이 심한 아이, 무릎을 꿇고 교실 바닥을 꼼꼼하게 걸레질해 나를 감동시킨 아이, 심부름이라도 시킬라치면 잽싸게 나서서 제가 꼭 해야겠다는 아이, 쉴 틈만 나면 운동장으로 달려가 땀 흘리며 놀다오는 아이, 별 말없이 눈으로만 대답하는 아이, 말도 안 되는 대답으로 나를 약 올리는 아이, 양말을 벗어 모둠 아이들에게 휘두르는 아이…, 대충 다 눈에 들어온다.

그래 알았어. 너희들이 누군지 알았다니까. 복도를 터서 만든 이 널찍한 교실에서 너희들과 맘껏 춤추고 노래하고 울고 웃으면서 올 한해를 살아나갈게. 나랑 같이 지내게 될 우리 반 아이들! 이거 비밀인데 너희들 말야, 나 만난 거 억수로 복 받은 거야. 그거 모르지? 주순영/삼척 정라초등학교 교사 wnejej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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