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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인간은 무엇을 보장받고 싶어하는가?

등록 2007-03-04 17:40수정 2007-03-04 17:47

마술사는 온갖 재주를 부려서 긴장감을 조성하고 무대 위를 첨예한 위기의 순간들로 가득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마술사의 통제 아래 있다. 진정한 마술사는 세계를 완전히 ‘제어’하고 있다는 신뢰를 준다.  
<한겨레> 자료사진
마술사는 온갖 재주를 부려서 긴장감을 조성하고 무대 위를 첨예한 위기의 순간들로 가득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마술사의 통제 아래 있다. 진정한 마술사는 세계를 완전히 ‘제어’하고 있다는 신뢰를 준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이은결의 <마술 콘서트>

청년 마술사 이은결이 올해 데뷔 10주년 콘서트를 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그리고 눈이 초롱초롱한 아이들까지 <마술 콘서트>는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을 제공했다. 아기자기한 마술도 있고, 몸을 오싹하게 하는 마술도 있으며, 경이로운 마술도 있고, 정말 신비로운 마술도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동심을 잃지 않은 어른들도 함께 즐긴 것은 아마 ‘새와 마술사의 동화’였으리라. 그림자 놀이의 아기자기함과 꿈꾸는 소녀의 신비로움과 공중부양의 경이로움 속에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멋지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마술’서 보고자 하는 것

온갖 재주로 긴장·불안 조성하지만

상황 완전히 제어하는 절대적 안정성


그런데 사람들이 마술을 보며 얻는 것은 무엇일까? 환상의 세계일까? 신비 그 자체일까?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마술사의 재주일까? 알면서도 속는 속임수의 극치일까? 아니면 모든 것을 태어나게 하고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해서 막강한 힘을 느끼게 하는 마법의 위력일까? 글쎄…, 나는 마술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편안함’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거의 절대적 안정감이라고 할 수도 있다.

뭐, 편안함과 안정감이라고? 아무 것도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새들이 뛰쳐나와 마구 날아다니고, 형형색색의 카드와 리본이 난무하며, 수평으로 누워 있는 사람이 수직 상승하고, 금방 무대에 있던 마술사는 사라지고, 천둥 번개와 함께 관중석 한 가운데에 마술사가 돌연 나타나곤 하는데, 편안하다니? 누군가 이렇게 되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종말이 온 건 아니지 않는가. 사라진 사람도 벼락 맞은 사람도 토끼로 변한 사람도 없지 않은가.(토끼로 변했더라도 마술사가 주문을 걸어 곧 사람으로 되돌려 놓았을 것이다.) 마술사는 그 놀랍고 혼란스럽기까지 한 세계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완벽하게 제어된 세계 말고 그 무엇이 안정감과 편안함을 주겠는가. 마술사야말로 자기가 하는 일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진정한 마술사는 세계를 완전 제어하고 있다는 신뢰를 준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환타지아>의 단편들 가운데 하나인 ‘마법사의 제자’(The Sorcerer’s Apprentice)는 마술의 이런 특성을 아주 잘 보여준다. 마법사의 문하에 들어간 미키 마우스는 마술을 제대로 배우기보다는 스승 밑에서 주로 허드렛일을 한다. 스승이 주문을 외어 오색 연기로 환상적인 생명체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무척 부러워한다. 그런데 자기는 오늘도 물을 길어 커다란 물통을 다 채워야 한다. 물긷는 일에 지친 미키는, 스승이 잠든 사이에 몰래 마법의 모자를 쓰고 스승이 하듯이 주문을 걸어 빗자루로 하여금 물을 긷게 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빗자루는 물통을 다 채웠는데도 계속 물을 길어 나른다. 미키가 아무리 말려도 전혀 그칠 기미가 없다. 미키는 할 수 없이 도끼로 빗자루를 산산조각 낸다. 그런데 한 번 물긷기의 주문에 걸린 빗자루의 조각들은 이제 ‘자기 복제’를 해서 수십, 수백의 빗자루가 되어 계속 물을 긷는다.

미키는 일단 마법을 거는 데는 성공했지만, 마법의 효과를 제어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마법을 제어하고 푸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스승의 흉내를 내 마법을 건 것이 애초 잘못인 것이다. 마법이 뭔가 해내는 능력이라면, 미키의 마법은 미완의 능력이다. 그것은 미키의 ‘기술’이 여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 마술사가 아닌 것이다. 마술사의 정체성은 ‘제어의 능력’에 근거한다.

마술사는, 아무리 이 세상을 뒤집어 놓을 것 같은 마술을 부려도, 모든 것이 자신의 통제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는 이은결의 <마술 콘서트>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은결의 마술은 그가 어디선가 말했듯이 왠지 모르는 ‘수줍음’을 담고 있어서 편안함의 정도를 상승시킨다.

이런 점에서 마술사의 능력은 모든 분야의 전문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특히 정치인과 경제인은 자기 분야에서 ‘마술사’가 되고 싶어한다. 자기가 실행하고 있는 일들, 자기가 책임지고 있는 일들을 완벽히 제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어의 마술이 그리 쉬운 일인가. 그래서 그들은 통상 자신이 맡은 바를 ‘제어하고 있는 척’ 한다. “걱정 마세요. 정치 잘 돌아가고 있어요”라고 한다든가, “염려 마세요. 경제 위기 오지 않습니다”라고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려 한다.

그러나 마술사는 오히려 온갖 재주를 부려서 긴장감을 조성하고 모든 것이 불안정해서 곧 무너질 것 같은 상황을 연출하며 마술이 창조하는 세계 자체가 곧 무슨 일이 일어날 듯 첨예한 위기의 순간들로 가득하게 만든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있는 척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마술사의 통제 아래 있다. 이것이 결국 역설적으로 제어의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마술 콘서트>의 진정한 마술은 각각의 마술이 아니라, 이런 마법적 상황이리라.

김용석/영산대 교수
김용석/영산대 교수
마법과 마술의 본질로서 제어의 능력은 또한 인간 삶의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과학, 기술과 매우 유사한 점과 동시에 아주 상이한 점을 보여준다. 마법은 전통적으로 ‘천체 감응력’을 가지려고 했다. 그 천체 감응력을 바탕으로 대자연을 제어하는 기술을 갖고자 했다. 그것을 함축된 상징언어로 나타낸 것이 주문(呪文)이다. 한편, 고대로부터 과학은 우주의 법칙을 수식(數式)에 함축하려 했다. 그러므로 상징언어로서 수학의 기호들을 개발했다. 수학 방정식으로 함축한 자연의 법칙과 그 기술적 응용은 자연에 대한 과학, 기술의 제어 방식이다. 여기까지는 마법, 마술과 과학, 기술이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과학, 기술은 그 자신의 엄청난 효과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작용’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반면 마술은 그 자신의 효과 자체를 제어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이 점에서는 두 분야가 아주 다르다. 현란한 ‘마술 콘서트’가 제공하는 역설적 편안함 속에서 관객은 바로 ‘자기 제어’라는 오늘날 그 무엇보다 소중한 철학적 화두를 얻는다.

영산대 교수 anemos@y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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